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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 – 정경조 목사

제목: 모험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 

말씀: 마 14:22절-33절

밴쿠버예수비전교회 정경조 목사

서론

여러분 송골매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송골매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제 323호)로 날개가 30cm, 부리는 3cm 이며 부리와 발톱이 갈고리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송골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대략 70년가량 수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골매는 처음 40년 동안은 가장 왕성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이후에 40년의 삶이 넘어가면서 점점 더 몸에 털이 많이 자라 그 털 무게로 인해 제대로 날지 못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냥을 할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리와 발톱이 많이 무디어져서 더 이상 사냥이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이때부터 송골매는 40년 이후의 삶을 더 강하게 날아오르기 위해 새로운 변화를 위한 모험을 감행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산 정상에 올라가 무거운 털을 부리로 뽑아내고, 바위에 무뎌진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마저 다 뽑아버립니다. 이렇게 고통이 따르는 모험을 통해서 다가오는 30년의 인생을 멋지게 날아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송골매가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송골매가 털을 뽑고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을 뽑는 고통이 수반되는 모험을 감행 할지라도 앞으로 펼쳐질 멋지고 아름다운 30년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그때의 고통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송골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 그리스인들의 삶도 송골매처럼 “모험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모험의 삶입니다. 결혼생활도 사실은 모험의 삶이지 않습니까?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 사귐의 시간을 갖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더 긴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모험을 겁 없이 시작합니다.

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 의학자인 폴투르니에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주옥같은 책을 썼습니다. 그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모험정신 즉 모험의 유전자(DNA)를 우리 모두에게 심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실 때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모험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직접적으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마음의 소원함을 강하게 주셔서 모험의 삶을 시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부터 스릴 넘치는 모험의 삶을 시작하면서 우리 마음에 꼭 새겨야 할 말씀의 교훈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제일 먼저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의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의 모험에 있어서 주도자는 내가 아닌 바로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믿음의 모험을 해 나갈 때 그 주도자가 베드로라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맞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군중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예수님이 아시고 오늘 본문 마태복음 14장 22절 보시면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도록 명령하십니다. 

또한 14장 28절 보시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그런데 여기서 만약 베드로가 먼저 예수님께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고 명령해 주소서” 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 지금 정신이 있니? 없니? 여기가 어디라고 배에서 뛰어내리니? 너 미쳤니?” 하면서 “물위로 오라”고 명령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베드로는 물위로 뛰어내리는 믿음의 모험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를 생각해 보세요. 노아가 자기 스스로 방주를 타는 모험을 시작 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 지으라고 해서 120년간 지었고 그 방주에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 간지 칠일 후에 40일 밤낮 주야로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지내는 동안 그 방주를 전혀 운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그 방주 안에는 운전할 수 있는 운전대가 존재 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노아로 하여금 방주 안에서 믿음의 모험을 잘 마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험의 중심에서 제자들이 모험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 보시면?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캐나다 밴쿠버에 정착하셔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이곳 해외로 나온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험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저와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세밀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험의 주도권자는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모험의 주도권자가 되십니다. 따라서 믿음의 모험을 시작하게 하시고 그 모험의 여행을 온전히 마치게 하실 분도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이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대로만 이루어질 그때가 바로 위험한 때임을 기억하고 인생의 모험 속에서 그 모험의 주도권자 되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인정하는 승리의 삶이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모험에서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의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주도하시는 믿음의 모험에도 여전히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대학원 동기들 15명과 함께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지역을 중심으로 함께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무엇보다, 갈릴리 호수에 떠 있는 배안에서 선상예배를 드리는 일정이 잡혀져 있었습니다. 호수로만 생각했던 갈릴리 호수가 생각보다 굉장히 컸습니다. 실제로 배에 올라가서 현지인들이 노를 저어주는 가운데 우리 동기들은 함께 순서를 맡아서 찬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찬양을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순간 거세게 흔들리는 파도로 인해서 찬양을 부르다 멈추기 시작했고 각자 각자의 얼굴들이 새파래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왜 이러지?”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럽게도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큰 파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두려움이 확 몰려 왔습니다. 

저는 그때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워진 새벽에, 그것도 육지에서 멀리 떠나온 상태에서 바람과 물결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설상가상으로 바다 위에 유령 같은 존재가 제자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면 그 두려움이 얼마나 더 크게 엄습해 왔을까? 많은 사람들이 모험의 삶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래서 “위험하지 않을까?” 저래서 “위험하지 않을까?“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 두려움의 공포로 인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모험의 삶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 모험의 삶을 살아갑니다. 

처음에 저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험의 삶에는 실패나 고난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푸른 청운의 꿈을 안고 대략 6년간 유학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통해서 강도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고, 같은 동족으로부터 배신감을 당하기도 했으며 또한 유학 자금으로 준비해 온 전 재산을 도둑질 맞기도 했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아주 초라하고 가난한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내 인생이 땅바닥에 내 동댕이 쳐진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닌 연단과 훈련의 시간이었으며 내 인생의 진짜 주인님이 하나님이심을 온몸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모험의 삶에도 여전히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 보시면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마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마태복음 14장 26절 보시면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마태복음 14장 30절 보시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이끄시고 진두지휘하시는 인생의 모험에도 수많은 고난의 바람과 두려움과 실패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배에서 뛰어내려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가 넘실거리는 모험의 삶으로 그의 자녀들을 초대하실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안전한 곳에 그의 자녀들이 머물러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모험의 삶을 살아갈 때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의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불순종 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제자들은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백을 마태복음 14장 33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님으로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배안에 있었던 제자들은 인생의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 가운데 예수님의 능력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감겨져 있었던 영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 겪었던 사건 이후로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물으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시는 주님께 베드로는 전혀 주저함 없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진정한 축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평생 안전지대에 머무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의 모험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고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온 몸으로 체득해 나가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지금 누군가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가 넘실거리는 인생의 모험을 경험하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때입니다. 이제 인생의 모험에서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의 뒤안길에 펼쳐질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견딜 수 없는 은혜가 여러분 가정 가운데 폭포수처럼 부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전혀 고난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이나, 혹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이나,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과연 누굴까요? 그 사람들을 제가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편안히 누워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호흡이 끊어져 죽은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두려움도 전혀 없습니다. 그것뿐인가요? 그들이 공동묘지에 누워 있는 동안 전혀 실패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실패가 있다면 정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호흡하며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한 가지 더 질문 드리겠습니다! 바닷가에 가셨을 때 한 점의 파도와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던 날이 혹시 있으셨나요? 저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바람과 파도가 항상 불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는 담대하게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의 시선을 바람과 파도를 향해 바라보자 즉시 두려움이 다가왔고 동시에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베드로에게 “너 물 맛좀 보거라!” 하면서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잠시 내버려 두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은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향해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즉각적으로 사랑의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하여 실패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는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바람과 파도가 불어올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람과 파도만 바라보시겠습니까? 

이시간 우리 다함께 선포합니다. 나는 예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시선과 눈을 날마다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야말로 “모험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모험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절대로 독생자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죄악과 불신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보내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불신으로 인해 지옥 구덩이에 던져져야 할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시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 구원의 모험을 감행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경을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공격을 온전히 감당하는 모험을 시작 하셨고 마침내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비참히 죽임을 당하는 모험을 감당하셨습니다. 죄 없는 의인이신 예수님 한분의 모험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갈릴리 호숫가의 바람과 파도처럼 고난과 두려움과 실패의 파도와 바람이 2021년 올해에도 어김없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우리의 시선을 “복음 되시는 예수님”께  올려드릴 때 놀라운 주님의 “보호하심”과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송골매처럼 털과 발톱을 뽑는 고통의 모험을 통해 30년간 더 높이 비상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믿음의 모험을 통해서 주님을 향해 더 하늘 높이 비상하는 인생을 살게 할 것입니다. 2021년 올 한해! 그렇게 역사하실 전능한 하나님을 기대하며 바라보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자들임을 고백합니다. 모험의 삶을 통해 진리를 더 갈구하기보다 오히려 우리들의 삶이 더 안전하기를 원해서 믿음의 모험 시작하기를 주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순종한 제자들이 인생의 모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진짜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한 보석 같은 진리를 깨닫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희들도 인생의 모험을 통해 복음의 진수되시는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고정하지 않았을 때 인생의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처럼 이제는 삶의 순간마다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담대함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모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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