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작(요 21:1-14)
위니펙중앙교회 이기성 목사
첫째: 들어가는 말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우리 인생의 실체를 고독과 절망과 공허한 것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헤밍웨이 자신 역시 1952 년에 발표한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 그리고 부와 재물을 얻었지만 1961 년 7 월 2 일에 스스로 자결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비록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손에 넣었지만 그는 소설에 나오는 노인처럼 고독과 절망 그리고 공허함에 방황하는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없는 인생, 하나님을 외면한 인생이란 결국 이런 인생의 어둠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인생의 명암을 주목해 보면서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베드로의 삶을 구분 지을 수 있다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십자가 사건 이전의 삶과 그 이후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 절대 믿음을 고백하던 삶의 때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신앙은 어떠해야 할지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십자가 사건 이전의 베드로 1군중 속에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고독
베드로는 자기를 이해해 주고 따르는 동료들과 함께 있었으나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2 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들이 함께 있더니” 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마음을 파고드는 고독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없는 곳에 평안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의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폴투르니에가 <인간 치유>라는 책에서 그의 치료 경험을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법칙을 거역할 때 사람은 고독이라는 질병을 앓게 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은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어머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으며, 고향을 잃어버린 나그네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고독은 오직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만이 해결 뒬 수 있습니다.
2 죄책감으로 인한 두려움
7 절에 보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당황하여 바다로 뛰어들 정도로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 기쁨과 감격보다는 주님을 배신하고 등을 돌렸던 수치심과 죄책감이 그를 압도해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바로 우리 인간은 죄를 인식할 뿐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 선생일 뿐입니다. 오직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만이 해결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문제 앞에서 늘 절망하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께 나아가 나의 연약함과 죄악투성이인 나의 죄된 속성을 그대로 고백하고 주님을 믿으며 주님 안에 거할 때만이 진정한 자유함과 죄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3 끊임없는 삶의 공허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던져진 존재이며 절망과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 라고 했습니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고독이란 기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는 존재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밖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는 인간이란 철저하게 고독할 수 밖에 없고 절망과 공허란 늪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한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대답한 말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3 절 b)와 “대답하되 없나이다”(5 절 b) 라는 말이 바로 주님을 떠난 베드로의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의 그물을 던졌지만 예수님 없는 한 사람의 몸부림은 결국 빈 그물에 물고기 대신 ‘공허’만을 끌어올릴 뿐이었던 것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베드로
1 사랑에 붙잡혔습니다.
요한복음 21 장 15-18 절을 보면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베드로 마음속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사랑의 고백을 예수님께 드리는 순간 그 동안 베드로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고독, 절망, 죄책감 그리고 공허 등의 문제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충만한 사랑이 그를 덮어버린 것입니다. 훗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 잘 8 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누구인가?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누구인가? 잊혀진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불행이란 소유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주님의 사랑에 붙들린 것처럼 우리도 역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사랑 받음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2024 년 새 해에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든 분들을 할 수 있는 대로 더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사명에 붙잡혔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다시 신앙이 회복되고 참된 사랑에 붙잡힌 것을 확인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는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주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헬라어의 용법으로 볼 때 헬라어는 강조법이나 비교법이 없고 무엇인가를 강조할 때는 같은 단어나 말씀을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사용을 합니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단어와 함께 먹이고 치고 먹이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했다는 것은 최상급의 강조용법입니다. 즉, 사랑하는 일에 이제는 네 목숨을 걸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랑을 다 하라는 사명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사명에 따라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 때 총상을 입은 한 군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민족과 동족을 사랑하여 전장에 나가서 싸우며 전장을 누비는 일은 정말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랑 없이 사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이 주신 사명에 진정으로 응답하며 사는 2024 년이 되도록 합시다.
3 성령에 붙잡혔습니다.
사도행전 2 장 1-13 절에 에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초대교회의 초석을 놓음과 동시에 신약의 교회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을 가리켜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이룬 일을 기록한 책이라는 말입니다. 원컨대 여러분들이 바로 이런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도행전 2 장 4 절에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게 되면 언어가 달라집니다. 살리는 언어, 치유하는 언어, 용서하는 언어, 긍정하는 언어, 포용하는 언어와 같이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아름다운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4 년에는 여러분의 언어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실어서 타인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언어의 전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한번 실패를 경험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새롭게 변화시켜서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베드로처럼 실패한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2024 년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새 해에 베드로처럼 사랑, 사명, 성령에 붙들려 마음껏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