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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선한 일, 선한말에베소서 4장 28-29절밴쿠버이레교회 정성일 목사

선한 일, 선한말_에베소서 4장 28-29절

밴쿠버이레교회 정성일 목사

‘선한 일, 선한 말’ 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8절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로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본성에 도둑질 하는 것이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도둑질을 합니다. 문제는 도둑질을 하면서도 이게 도둑질인가를 모르는 거죠.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먹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는 먹지 마라. 그러면 이 선악과는 누구의 것이라는 뜻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죠. 하나님의 특별한 관리 속에 있다는 뜻 아닙니까? 

선악과는 먹지 마라. 손도 대지 마라. 이건 내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습니다. 이게 바로 도둑질 아닙니까? 하나님의 선악과를 도둑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아담과 하와, 그 이후로, 이 땅의 모든 아담의 후손들에게는 도둑질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능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면서도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죠. 이 세상이 전부 하나님의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의 것을 허락도 안받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면서도 이게 도둑질인지를 모릅니다.

말라기 3장 8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도둑질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울해서 펄쩍 뜁니다. 아니, 우리가 언제 도둑질을 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의 십일조와 봉헌물이 증거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내 것 중의 일부를 떼서 드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십일조가 사실은 얼마나 큰 돈입니까? 그런데 나는 십일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봉헌물, 오늘 식으로 하자면, 주정헌금, 감사헌금등이 되겠죠,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나는 사실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 정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것을 지금 내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어린양의 피로,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라고 주신 제도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열매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머지가 전부 거룩해 진다는 의미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유월절,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의 날 아닙니까? 하나님의 죽음이 다가올때, 처음 태어난 어린양의 죽음으로 나머지 모두가 거룩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를 통해서, 내가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고, 어린양의 피로 거룩함을 받았고,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것을 무상으로 누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내 것인데, 그중의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니, 하나님께서 그래? 그러면 너희는 도둑이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내 자녀가 아니고, 내 자녀가 아니니, 이 세상의 것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는 너는, 내 것을 훔친 도둑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의 표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십시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바로 이것이 십일조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내게 보내주셨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할때, 이 고백이 나와야 하는 것이고, 십일조를 하지 못할때도, 이 고백이 나와야 하는 거죠. 

하나님 제가 이렇게 돈을 사랑합니다. 지금 당장 써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연약한데, 나는 이렇게 나를 더 사랑하는데, 예수님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십일조라구요. 

이 고백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해도 너는 내 것을 훔치는 도둑이다. 그러면 이제 생각해 보십시요. 비단 십일조만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에 메여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죽음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누구의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이죠.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누구의 것인가요? 예수님의 것이죠. 그러면 이제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이 내게 은사 주셨습니다. 물질의 은사, 혹은 다양한 어떤 재능의 은사를 주셨는데, 사실은 이 은사 내 것이 아니죠. 예수님의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 모든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기 원하시고, 함께 덕을 세우길 원하시는데, 이 은사를, 나에게만 주셨다 자랑하거나, 나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이것도 도둑질이 되겠죠. 

내 마음이 이제는 예수님의 것인데, 내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지 않고,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내 생각을 예수님께 드리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고, 내 삶이 예수님의 것인데, 내가 게으름을 피운다면, 이것도 도둑질이 되겠고, 

지금 이 상황과 환경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는 것인데, 내가 내 상식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를 훔치는 도둑질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도둑질을 하고 있나요? 안하고 있나요? 우리는 날마다, 거의 매 순간마다 도둑질을 하고 있죠. 우리는 늘 내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밥 한끼 먹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먹으려고 하는, 우리는 도둑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28절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는데, 다시는 도둑질하지 마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되겠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요?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의미는, 에수님의 피를 의지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도둑질은 더 이상 도둑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칭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나는 연약하여 오늘도 내 생각에 사로잡히고, 오늘도 내가 판단하고, 오늘도 게으름을 피우고, 오늘도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런 나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이제 영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나의 옛 모습이 나올때마다 나의 옛 사람 벗겨 내시고, 새 사람을 입혀주십니다. 이 믿음과 이 신앙이 도둑질하지 않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나는 여전히 내가 나의 주인입니다. 저는 도둑입니다. 고백할때, 이런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품고 계시는 예수님이, 아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너의 주인이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 니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너를 의롭다 칭했다.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복음입니까? 그래서 성경이 누차 반복하고 강조하는 메세지가, 그러므로 하늘에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성도들아, 믿음의 주요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어지는 본문 2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 여기서 가난한 자라는 단어는, 어떤 것이 필요한 자, 라는 뜻입니다.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을 가난한 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라 라는 단어는 나누어 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보십시요. 도둑질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됩니다. 하나님이 자녀가 되어서,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무엇을? 예수님을, 

이 세상 사람들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뿐,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 무엇을?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러니 도둑질하지 마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욱 확실해 지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땅에 선한 일이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는 것, 이것 말고 선한 일은 없죠. 

우리가 아무리 윤리 도덕적으로 선하고 옳은 일을 해도, 그건 우리가 정했고,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지, 하나님의 선이나, 하나님의 옳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옮음은,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 28절의 말씀을 정리하자면, 예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도둑질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거든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구원이 필요한 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일,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기 손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에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맡기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증거는 자기 손으로, 우리 각자의 사명입니다. 

29절은, 28절의 연장선에서 해석을 하시면 됩니다. 28절의 말씀이 결국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하라는 뜻 아닙니까? 그래서 이어지는 29절이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더러운 말이 뭐겠습니까? 상대방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대방을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말이 더러운 말이 되겠죠. 이건 단순히 욕이나 음담패설,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좋은 말도 더러운 말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좋은 말 아닙니까? 그러나 공부하라는 이야기로 인해서 자녀가 예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이게 바로 더러운 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더러운 이라는 단어가 썩은, 부패한 이라는 뜻입니다. 

썩은 말, 부패한 말, 썩어있고 부패한 이 세상을 목표로 하는 모든 말들이 다 더러운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 안에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더러운 말들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번에 집을 샀어, 하나님의 은헤로 이 문제가 이렇게 좋은 방식으로 해결이 되었어, 이런 이야기들, 흔히 말하는 간증, 정말 아름답고 복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여기 어디에 예수님과 십자가가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나로 하여금, 나도 기도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고, 나도 기도해서 저런 은혜를 받고 싶고, 나도 하나님이 복 주셔서 이렇게 저렇게 성공하고 싶고, 온통 세상의 욕망을 자극하는, 어디를 봐도 에수님과 십자가는 없는 더러운 이야기가 마치 복음처럼 흘러가는 교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죠. 

마태복음 12장 33절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뭔가요?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거든요.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흠없이 지켜내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속에 이 세상이 가득하니까, 너 그래서 복 받겠니? 신앙생활 그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복 주시겠니? 하나님의 말씀, 신앙의 이름으로,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바리새인. 그래서 예수님이 그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열매로 아느니라.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수 있겠느냐,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곧 그 사람의 열매다 이겁니다. 내 속에 세상이 가득하면, 내 입술에서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만 나오겠죠. 이게 더러운 말입니다. 반면 내 속에 에수님과 십자가가 충만하면, 내 입술의 열매는 예수님과 십자가가 되겠죠. 

그러니 더러운 말을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말씀은,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십자가의 예수님인가? 아니면 이 세상인가? 

우리는 속에 있는 것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남의 잘못을 보면 지적하고 싶고, 좋은 일이 생기면 자랑하고 싶고, 내 속에 가득한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렇게 터져 나오는 내 속 마음은 대부분이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그러니 사실 지금 내 속에는 이 세상의 더러움이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싶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고, 좋은 차를 가지고 싶고, 좋은 집을 사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고,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내 속의 더러움이 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누군가와 대화할때, 예수님께 사로잡혀, 오늘 본문 29절의 말씀처럼,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소서. 이것이 성도의 기도 제목입니다. 

여기서 덕을 세우다는 단어는 건축하다, 건물을 세우다 라는 뜻으로, 보통 성전을 짓다 라는 뜻으로 사용이 됩니다. 소용되는 이라는 단어는 필요한, 이라는 뜻입니다. 선한 말은 예수님과 십자가죠. 이 땅에 선한 말은 오직 복음 뿐 입니다.

그러니까 29절은, 더러운 말을 하지 말고, 성전을 짓기 위해 필요한, 말, 곧 예수님과 십자가의 이야기로,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라. 

자. 그러면 이제 큰일 났습니다. 여러분 오늘 친교 시간에 무슨 이야기 할 겁니까? 괜히 한 마디 했다가 아이고, 저 집사 세상 이야기 하네, 저 속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가 보다. 이럴 것 아닙니까? 

큰일났죠. 이제 친교시간에 눈치게임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말 해도 되나? 안되나? 고민되실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 말씀들은 율법이 아닙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 말씀이 율법이 되면, 말씀으로 서로를 때리고 패고 죽이는 흉기가 되어 버립니다. 

이 말씀은, 서로를 지적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헤와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고 놀랍고 복된 은혜와 사랑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말라 했지만, 우리는 입만 열면 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주식이야기, 코인 이야기, 지금 내 형편,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아시죠. 그래서 이런 나를 예수님의 보혈이 덮고 있는 겁니다. 너는 너의 마음이 이 세상에 사로잡혀 있다 말하지만, 아니다. 너는 이미 나에게 사로잡혀 있다. 너 안에서 옛 사람이 나올때마다, 내가 그거 벗겨 주고, 새 사람을 입혀 주니 담대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너는 나에게 사로잡힌 나의 자녀다. 그러니 오늘 친교 시간에 눈치게임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즐겁게 이야기 하십시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이런 나를 예수님이 품고 계신다.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은혜인지, 내가 이렇게 세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예수님 떄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누리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이 좋은 복음을 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선한 일이고, 선한 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의 성숙이란, 이런 나를 예수님이 품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날이 갈수록, 내 입술에서 예수님과 십자가의 복음이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묻어 나오는 것, 이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이야기에 상처받거나 정죄하지 마시고, 이런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에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함께 복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교회와 가정,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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