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상과 실상 (행 4:32-37)
토론토밀알교회 박형일 목사
사도행전을 보면, 4장은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눕니다.
행 4:32-33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서로 아무도 자기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누구랄것없이 재산을 내놓고,가난한 사람이 없었고, 부활을 증언하고 은혜를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교회 있었으면 좋겠다 할만한 그런교회인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그 말은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영적인 힘으로 이끌어져가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움직여질때는 그 힘을 움직이는 영적인 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적인 뿌리가 어디였는가? 이것을 볼려면 오늘 행 4장을 봐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절부터 저희가 한번 다 살펴보려 합니다. 오늘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 때문에, 오늘 공회에 끌려갔습니다 사람들이 가득차있습니다.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곳에서 오늘 사도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행 4:19(개역개정)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이상한게 하나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가득차있는게 누구입니까?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뭐라고 말해요? 우리는 하나님앞에 서 있다.
이말은 뭡니까? 보이는자리는 공회앞입니다. 그런데 실제자리는 어디라는거예요? 하나님앞이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미래에 볼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실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행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보고들은것을 말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증인이지요! 그런데 죽일듯이 노려보는 사람들앞에서, 이러한 담대함이 어디서 나오는겁니까? 소심한 분은 이런말 못하는겁니까? 담대하고, 말 잘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사람만 담대함이 있는게 아니예요
담대함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예요 무엇을 실제로 보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은 담대해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게 되는게 뭐예요? 믿음이자나요. 그래서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담대해지는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보면,
우리에게는 현상이 있고 실상이 있습니다. 현상(phenomenon) 은 무엇입니까?
• 눈에 보이고, 감각으로 인식되는 것
• 현재 드러난 상태, 상황, 조건 우리는 보통 현상을 보고 결정을 하지요
실상(reality / substance)은 무엇입니까? 이게 reality 입니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
• 하나님의 약속, 뜻, 계획, 언약
내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현상의 진짜 본질, 이 현상이 실제 무엇을 말하는지가 실상이예요. 믿음이라는것은 뭐냐?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는 힘이예요. 눈앞에 사건이 터졌어요 일이 터졌어요 그건 현상이지요. 그런데 이 현상뒤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지..
하나님이 이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겠지.. 이게 실상이예요
그래서 앞에 보이는것은 내 질병이고, 어려워지는 사업장이고, 내 가벼워지는 은행 어카운트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뭐냐?
먹이시는 하나님이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믿음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봐야되요
그래야 현상이 안보여요. 제가 목회를 하자나요 목회는 현상을 보고는 목회 절대 못합니다. 사람을 보고는 못해요 실상을 보는겅요. 제가 부목사님들과 시간을 내서목회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을 60,70%의지해서는 목회를 할 수가 없어요 전적으로 의지해야 그 때 부터 일하십니다.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봐야 되는것입니다. 기도가 왜 중요합니가? 기도는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게 해요.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세요? 미래에 나를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일하실것이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세요? 지금 나에게 기도하게 하세요? 미래에 일하실것이 실상이예요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현상이예요 그러니까 지금 실상이 보이게 하는것이 기도자나요
그래서 기도하면 담대해지는거예요 보이니까…이게 실상이예요
현상과 실상은 매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양면성의 원리입니다. 현상을 보면 실상이 안보여요. 앞에 있는 내눈앞에 있는 현상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안보여요 그래서 우리가 걱정이 시작되는거지요
그런데, 실상을 보면, 현상이 안보여요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 실상을 보는 상태..그것을 뭐라고 말하냐? 그래서 나는 항상 하나님앞에 서 있다 이것을 뭐라고 말해요? 코람데오라고 말하지요. 코람데오 = 코람(앞에서)+ 데오(하나님) : 하나님앞에서
코람데오가 무엇입니까?
코람은 “~앞에서”, 데오는 “하나님”입니다 “나는 항상 하나님앞에 서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영적인 힘의 뿌리였어요 초대교회의 힘은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았다.
행 4:29(개역개정)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 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대주재여(헬, 데스포테스): 노예들이 말하는 주인
어느 책에 보니까 이 내용을 정확히 얘기하십니다
당시는 노예를 물건처럼 사고팔았습니다.
돈만 가지고 시장에 나가면 노예를 살 수 있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면,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 됩니다.
자기 생각이나 입장이 있을 수 없어요 자기 생의 존재와 세상의 전부가
내 주인이 됩니다
그상태가 데스포테스예요
예전에 말씀드렸죠.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누구예요? 세상의 전부예요. 그러니까 부모가 짜증부리고, 부모가 가혹한 말을 하면 세상전체가 나를 버린것같은 느낌이 들어요
기독신문 칼럼에 나온 내용입니다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라는 책이 있어요 사람들이 왜 고양이 보다 강아지를 더 선호하는 지 그 이유를 소개한다.
고양이는 자기중심적인데, 강아지는 주인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주인이 자기를 기쁘게 해주기를 원한다. 열 번 잘해줘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은 싹 잊어버려요
그리고 잘못한 것 때문에 토라져서 주인과 거리를 둡니다.
마치 우리들 같지요. 열번 잘해줘도, 한번 응답안해주신것만 기억합니다….그런데 강아지는 어때요? 강아지를 보면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힘쓴다.
강아지는 주인이 열 가지를 잘못해도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가지를 기억해요. 그래서 주인을 졸졸 따릅니다. 주인이 전부인거예요
하나님이 내 삶의 전부가 되셔서 하나님만 보이는 상태, 현상이 아니라 실상만 보이는 상태..
이상태가 데스포테스입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가장 높은대상으로 인정하는 것, 성경에서는 이것을 뭐라고 말해요? 경외하심..이다…
경외하심에 대해서 정말 많은 부분에서 얘기합니다. 여기서 “경외”라는 말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경외(히, 야레): 하나님의 높으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이 너무 크셔서,
그분만 보여지는 상태….
현상이 아니라 실상만 보이는 상태… 이게 경외입니다. 그 경외함이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달라집니다. 사도행전 4:29 절을 보십시오
행 4:29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오늘 이 기도의 특징이 뭡니까?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구하는 기도예요
어려움이 생기면 어려움을 없애달라는 기도를 해야지요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이 이걸 없애달라는 기도입니다. 현상을 없애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뭐라고 말해요? 고난을 없애달라고 해야되는데, 핍박을 없애달라는 기도는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초대교인들은 실상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겁니다 주님의 일하심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주님이 이 핍박받는 상황을 알고계시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바꾸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겁니다 우리가 하는기도가 달라져여한다.
현상을 없애주십시오도 중요합니다 실상이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어느 설교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여러 선교사님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었는데 강사로 한 분이 초청을 받은거예요. 다른 분들 어떻게 하나 볼라고 첫날부터 참석을 했대요
첫날 분이 너무 은혜롭게 하셔가지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는지, 그래서 덜컥 겁이 나더라더는 거예요. 걱정이 된거죠.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바깥에서 선교사님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는겁니다.
오늘 저녁에 참 좋았죠? 어떤 분이…그러는 거예요. 근데 나는 오늘 은혜받은게 무서워.
내가 은혜받아서 선교사로 왔자나… 은혜 받은건 좋은데, 정말 고생이야. 이 험난한길 지긋지긋해 선교후원도 안오고 기도도 안하고. 이제 지쳤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목사님이 겁이 나는 거예요. 엄청난 은혜를 받고도, 이정도인데, 얼마나 불이 떨어져야하나… 그러면서 답답해지더래요
그래서 기도로 밤을 새웠대요. 그런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것 같더래요. 그 선교사들 이야기가 인간들편 이야기니? 내편에서의 이야기냐?
그리고 그 생각이 드니까,, 정신이 바짝 들더라는 거예요 지쳤다…은혜 받은게 무섭다… 하나님 반응이 아니자나요. 그러니가 하나님은 아니자나. 그러면서 생각을 해봤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칠 가능성이 커요? 사람이 지칠 가능성이 커요?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시는거예요. 그래가지고 이말씀가지고 설교를 했어요. 저는 인간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지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겁니다.
사람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을 바라보는것… 성경에서는 이게 경외이예요. 우리삶에서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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