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Ephraim)
이스라엘에 유일한 기독교 마을이 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한 타이베(Taybeh)라는 마을로, 구약성경에서는 오브라(수 18:23), 신약성경에서의 이름은 에브라임(Ephraim)이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할 때 잠시 피신하신 장소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잠시 머무셨던 장소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요 11:54)
‘타이베’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동쪽으로 30km 떨어져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있는 라말라에서 12km 북동쪽에 있다. 이곳은 해발 850미터에 위치해 있어서 유대광야, 요단계곡, 여리고, 사해까지 바라볼 수 있으며, 유대와 사마리아 산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타이베 가까운 곳에 우리에게 친숙한 곳인 벧엘과 아이가 있다. 타이베는 4500년전 가나안의 도시 중 하나였지만 여호수아에 의해 땅 분배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에 속하게 된다. 12세기 이후 이슬람 술탄 살라딘(Saladin)이 ‘좋고 친절하다’란 의미로 타이베란 이름이 마을에 붙여져서 성경의 에브라임 동네는 현재까지 타이베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해있지만, 예수님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마을 주민 모두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기독교 마을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과실과 연관된 비유의 말씀을 주셨다고 하는데, 석류의 달콤한 씨앗들은 쓴 막으로 감싸여 있으며, 부활의 달콤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의 쓴맛을 경험해야 된다는 설명을 하셨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목적은 1세기 고대 팔레스타인의 전통 가옥의 형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베에 들어서면 비잔틴 교회의 흔적 위에 지어진 성 조지(St. George) 교회를 찾아간다. 교회에 들어서면 우측에 250년된 팔레스타인 전통가옥이 있다. 나무문 둘레에 돌로 양각된 다섯개의 다윗의 별 문양이 보인다. 이것이 1세기의 흔적이고, 집안은 비록 250년된 것이지만 전형적인 팔레스타인 집의 구조를 예루살렘 근방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집은 ‘비유의 집(Parable House)’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 가운데, 집에 대한 비유를 여러 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집은 가족을 위한 방과, 작은 가축 그리고 큰 가축을 위한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작은 집같이 보이지만 실제 집 안에 들어가서 보면 가축을 두는 공간이 그렇게 좁지 않다. 양과 염소를 둔 공간에 동물들의 먹이통인 돌 구유도 놓여져 있다.
성지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가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이다. 그 곳을 방문하면 그리스 정교회 아래쪽 예수님이 태어나신 동굴이 잇는데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입장하게 된다. 짧으면 30분에서 두 시간까지 기다려 동굴에 놓여있는 돌 구유를 보고 나오면, 어떻게 이런 곳에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구유에 누이셨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2천년 전의 전통 가옥의 모습이 전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베를 방문하면 그 의문이 풀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안에 가축을 위한 공간을 두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낮에는 풀을 먹이러 집 밖에서 가축들을 돌보고, 저녁이 되면 집 안으로 가축을 들이는데, 문 가까운 작은 공간에는 양과 염소 같은 작은 동물들을 두었고, 집 안쪽의 큰 공간에는 나귀와 같은 큰 짐승을 두었다. 유대인들에게 집은 히브리어 베이트(בַּיִת)로 ‘울타리’ 혹은 ‘피할 곳’이란 뜻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영어의 ‘home’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시편 119편 19절과 같이 ‘유리하고 방랑하는 나그네와 같은 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시119:19)
베두인의 전통을 갖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광야생활에서 사람과 가축이 한 공간에 거주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돌로 만든 그릇은 정결한 식기이다. 질그릇에 부정한 자가 접촉하면, 깨끗하지 않다고 깨어 버려야 되었지만 돌그릇이나 돌항아리는 언제나 깨끗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장의 유대인의 정결례를 위해 사용되던 물을 담아두던 항아리는 질그릇 항아리가 아니고 돌 항아리였던 것이다.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 11:6)
히브리 민족의 최초의 직업이었던 목자는 양과 염소를 돌보는 자이다. 고대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양이 새끼를 낳았을 때 어미 양이 잘못해서 갓 태어난 양을 밟아 죽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자는 어린양을 돌 구유에 누였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신 후 어린양이 구유에 누이듯, 강보에 싸여 정결한 돌구유에 누였던 것이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7)
모리아산에서 10km 남쪽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면서 성전에서 희생되는 양들을 조달한 곳이었다. 사도 요한과 바울은 그들의 책에서 줄기차게 예수님을 ‘어린양 예수’로 비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희생되는 양들이 베들레헴으로부터 와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희생되었듯이,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어린양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셨던 것이다.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글, 사진_ 이호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