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자녀 이해
지난 글에서 청소년기 자녀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변화는 곧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변화, 곧 성장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은 ‘혼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이 변화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부모와 자녀는 모두 혼란을 경험합니다.
자녀들이 겪는 혼란은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체적 측면, 정서적 측면, 심리적 측면, 지적 측면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기인합니다. 신체적인 측면의 변화와 함께 경험하는 기대감과 불안감, 정서적 측면에서의 예민함과 강렬함, 심리적 측면에서는 자아정체감 형성 과정에서의 불확실성, 지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분석력과 비판력 등은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살기 위해 준비하는 청소년기 자녀들에게 불안감을 가져다 줍니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부모 밑에서 부모를 의지하면서 편안히 안주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 수 없고 새로 펼쳐지는 세상을 이제 곧 자신만의 힘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며 자신의 무력함에 맞서 싸워야 하는 시기가 청소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부모가 어린 자녀를 대하듯이 통제하고 지시하는 방식의 양육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청소년기 자녀는 그런 부모와 맞서 싸우느라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이런 자녀들의 혼란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종적이던 자녀가 반항하기 시작했다고 힘들어하지만 정작 가장 힘든 당사자들은 청소년들 자신입니다.
이 시기는 또한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세상을 접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자기 너머의 세계, 가정 밖의 세상에 대해 보다 폭넓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입니다. 이 시기에 또래 친구들은 자녀들에게 ‘중요한 타인’들로서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친구들과 공동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이란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말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타인으로 손꼽힐 만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는 부모와 교사들이지만 책이나 그 밖의 통로를 통해 자신의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중요한 타인이 될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상호관계를 나누는 친구도 중요한 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자녀들이 종종 부모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부모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시기 반항은 부모를 거부하는 반항이 아니라 부모의 지시적이고 통제적인 양육방식에 대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나 그룹 (The Barna Group) 같은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여전히 부모입니다.
많은 아이들은 이 시기에 음악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아이돌 가수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아이들은 문학에 심취하면서 폭넓은 세상을 만나고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 관심을 가집니다. 반면에, 전자게임과 같은 가상현실과 온라인 상의 인간관계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현실 상황에서 부모나 교사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 부모의 지나친 간섭에 극단적으로 반항하는 아이들,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은 온라인 게임과 포르노 영상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중독에 빠지기 쉬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청소년기 중독 현상은 한편으로는 자아정체감이 잘 세워지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아정체감이 잘 확립되고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미래의 자아상 등이 건강하게 세워지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혹은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 등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방황하는 가운데 그 방황의 공백 기간에 온라인 상에서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소년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자녀들이 겪는 변화들을 이해하면서 그들이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소화하면서 다음 단계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자신을 스스로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녀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부모는 지시와 통제의 방식이 아니라 안내와 지지를 통해 자녀를 지원하고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기는 신앙에 있어서도 자기 주도적인 신앙을 탐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부모에게 의존해서 수동적으로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던 단계를 뛰어 넘어 신앙의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능동적인 신앙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 잠시 지금까지의 신앙에 대한 회의와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지적으로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기도 합니다. 그런 시기를 거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자신 스스로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면 청소년기의 방황이 안정을 찾게 됩니다.
부모가 청소년기 자녀들의 이런 특성들과 부모인 자신의 역할 변화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들 뿐 아니라 부모들도 혼란을 경험하면서 자녀들과 마찰 및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장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자녀에게 밀착되어 있었던 과거의 모습을 벗어나 자녀의 성숙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미숙한 모습들을 보여줄 때 자녀를 비난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녀를 격려하면서 신뢰해 준다면 혼란과 방황 중에 있는 자녀들에게 든든한 닻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inquiry@familyalive.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