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AI 코파일럿과 인간의 고유성
어느 밤,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목사님, 잠깐만요. 지금 너무 힘들어요.” 예전 같았으면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먼저 떠오르는 유혹이 있다. ‘이 상황에 맞는 문장’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도구. 문장은 준비되지만,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두 가지 유혹: 두려움과 게으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교회가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였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 콘텐츠가 아니라 공동체. 그렇다면 AI 시대의 핵심도 결국 같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고유성은 더 소중해진다. 그리고 그 고유성은 놀랍도록 단순한 것들에서 드러난다. 눈맞춤, 침묵, 이름을 부르는 것, 손을 얹어 축복하는 것.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이다.
AI가 우리의 손에 들어온 지금, 교회는 두 유혹 사이에 서 있다. ‘이제 목회가 대체되는가’라는 두려움, ‘이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게으름. 그러나 미래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는 둘 다가 아니다. 분별이다. AI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도구는 언제나 방향을 가진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코파일럿은 조종사가 아니다
AI는 설교 개요와 주석 요약, 문장 다듬기, 행정 정리 같은 영역에서 유익한 코파일럿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코파일럿은 조종사가 아니다. 조종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설교는 문장 생산이 아니라, 하나님과 회중 사이에서 삶을 붙드는 일이다. 그 책임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더 민감한 영역은 상담이다. AI는 공감하는 말투를 흉내 낼 수 있지만, 위로는 말투가 아니라 존재에서 나온다. 고통을 함께 견디는 시간, 말 사이의 침묵, 눈물이 멈추지 않는 순간에 함께 앉아 주는 사람. 이 ‘함께 있음’은 대체되지 않는다. AI는 조력자일 수 있어도, 영혼 돌봄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울타리와 함께 서는 힘
그래서 교회는 ‘금지’와 ‘무비판적 도입’이라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울타리(관할권)는 인간의 책임을 지키기 위해 세운다. 무엇을 AI에 맡기지 않을지 분명히 정하는 것. 함께 서는 힘(통합권)은 기술을 선한 목적에 연결하기 위해 세운다. 자료 제작, 일정 관리, 교육 콘텐츠 보조, 접근성 향상 같은 영역에서 AI를 선용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AI를 ‘답 기계’로 사용할 때, 금지와 방임은 모두 교육이 되지 못한다. 교육은 질문을 바꾸는 일이다. “답은 금방 얻을 수 있는데, 질문을 만드는 건 어렵지?” 이 한 문장이 아이를 답 소비자에서 분별하는 사람으로 옮겨 놓는다. 미래교회는 정답을 더 주기보다 질문을 더 잘 만들게 해야 한다.
168시간은 대체되지 않는다
AI는 주일 한 시간의 준비를 빠르게 할지 몰라도, 167시간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 신앙은 결국 삶에서 증명된다. 월요일의 선택, 화요일의 말투, 수요일의 정직, 목요일의 불안을 다루는 방식, 금요일의 관계를 복원하는 용기. 이 168시간의 리듬이 흔들릴 때, 어떤 도구도 신앙을 대신할 수 없다.
939주의 둥지 안에서 교육은 더 절박해진다. 아이들은 부모의 스마트폰보다 부모의 눈을 더 오래 기억한다. 화면의 밝기보다 얼굴의 온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가정 안의 기술 사용’은 윤리 규정이 아니라 신앙 전수의 구조가 되어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식탁에 앉고, 함께 읽고 질문하는 시간이 무너지면 전수는 멈춘다.
리셋: 시간을 사람에게 돌려주는 기술
교회가 지켜야 할 약속은 ‘사람을 대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문지방에 선 사람을 붙잡는 것은 자동화된 문장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는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술은 두려움이 아니라 재배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반복 행정에서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 회의 시간을 줄이고, 식탁 시간을 늘리는 것. 이것이 리셋(RESET)이다.
이번 주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자. 가정에서는 하루 한 번, 화면을 내려놓고 서로의 눈을 보는 것. “오늘 너는 어땠어?” 그 질문에 답이 짧아도 괜찮다고 허락해 주는 것. 그 허락이 사람을 살린다. 미래교회는 더 똑똑한 교회가 아니라, 더 인간적인 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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