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 (23) 뵈뵈를 찾아서
“내가 갱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로마서 16:1)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며 거론한 여러 동역자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뜻밖에도 한 여성, ‘뵈뵈(Phoebe)’이다. 바울은 그녀를 교회의 일꾼이자,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후원자로 소개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고대 사회의 가부장적 편견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며, 뵈뵈와 같은 여성 리더들의 역동적인 사역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제한해 오곤 했다.
수전 E. 하일렌(Susan E. Hylen) 교수의 저서 《뵈뵈를 찾아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의 틀을 대담하게 깨뜨린다. 낯선 타향살이와 문화적 격변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이민교회 성도들에게 깊은 신앙적 통찰과 도전을 던져준다.
이 책이 선사하는 가장 큰 유익은 1~2세기 로마 제국의 역사적·고고학적 1차 사료를 바탕으로 1세기 여성들의 ‘진짜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고대 여성들은 재산권도, 교육의 기회도 없었고 오직 남성에게 종속되어 침묵해야 했다”는 단편적인 통념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1세기 고대 문헌, 비문, 법률 기록 등을 추적하며, 당시 여성들이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했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엄연히 사역했음을 입증한다.
이 책은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현실 속에서 신앙을 살아가던 초대 교회 여성들의 삶을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조명한다. 재산과 직업: 고대 여성들은 단순히 가사에만 머물지 않았고. 법적 권리를 바탕으로 재산을 관리하고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직업을 가지며 경제적 주체로 활동했다. 사회적 영향력과 교육: 여성들은 후견인(Patron)으로서 지역 사회와 교회를 후원했고, 일정한 교육을 통해 공동체의 리더십을 발휘했다.전통적 덕목과 조화: 정숙, 근면, 충실 등 당대 사회가 요구한 덕목을 지키면서도, 그것에 파묻히지 않고 신앙적 주체성을 발휘했다. 말과 침묵: 초대 교회 여성들은 공식적인 기도와 예언, 가르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로 쓰임받았다.
저자는 우리가 고대 여성들의 삶을 일차원적으로 오해해 왔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늘날 성경 해석자들은 신약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그림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기본적인 생각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초대 교회의 여성들은 제국의 한복판에서 유연하면서도 강인하게 자신의 직분과 삶을 이끌어갔다. 저자는 성경이 다루는 여성의 역할이 결코 하나의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저자는 역사적 맥락을 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성경 속 여성들의 주체적인 신앙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낯선 문화에서 교회를 섬겨온 오늘날 이민교회 성도들의 삶과 깊게 닮아 있다. 먼저는 ‘주변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이다.1세기 로마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 주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뵈뵈와 같은 여성들을 교회의 든든한 기둥이자 복음의 전수자로 사용하셨다. 이민자들도 삶의 정황 속에서 때로는 소외감과 한계를 느낄 때가 있지만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의 당당한 주역이자 동역자이다. 또 삶의 터전 전체를 ‘사역의 현장’으로 바꾸는 삶의 예배이다. 책에 등장하는 고대 여성들은 자신의 일터, 재산, 가정, 인맥 등 삶의 모든 자원을 복음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다. 이민 생활의 고단한 현장은 단순한 생계의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뵈뵈처럼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치유하는 거룩한 후견인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교회 안에서 다양한 헌신과 리더십을 격려하는 포용성을 발휘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문화적·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여성들의 기도와 예언, 봉사와 리더십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오늘의 이민교회 역시 남녀노소, 세대와 계층을 넘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와 리더십을 발굴하고 바로 세워주는 포용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강인하고 다채로운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타국살이의 고단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교회를 묵묵히 받쳐 모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미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믿음의 사람들을 축복한다.




![[칼럼: 책향] (18) 겸손, 그리스도의 숨결을 따라](https://i0.wp.com/toronto.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books06192.jpg?resize=324%2C160&ssl=1)
![[칼럼: 책향] (21) 다시 만나는 교회](https://i0.wp.com/toronto.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books0710.jpg?resize=324%2C160&ss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