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생명과 자비의 날”
고대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대가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들은 산속 동굴에 피신해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투항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는 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안식일을 더럽히지도 않겠다”고 답하자, 군대는 곧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돌을 던지지도 않고 자기들의 피신처를 봉쇄하지도 않고, “우리는 모두 깨끗한 채로 죽겠다. 너희가 우리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증언해 줄 것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공격을 받아 아내와 자녀와 가축과 더불어 죽어 갔습니다. 죽은 이는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유대법에는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안식일 규율보다 생명 보존을 우선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BC 2세기에 기록된 『희년서』에는 안식일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께서는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안식일에 쉬고 일하지 않으며 거룩하게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을 금하셨다. 무릇 이 날에 어떠한 일이든 행하는 자, 혹은 이를 더럽히는 자, 혹은 자기 마음의 생각대로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은 성문을 닫아 걸고 외국 상인들의 출입을 금지했고, 일체의 상업과 농경 활동을 완전히 정지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규정된 이동 거리를 초과하여 행군하거나 무기를 지니는 것 조차 “노동”이자 계명 위반으로 여겨 완전히 멈췄습니다.
유대력으로 일곱 번째 날을 가리키는 “안식일”은 “그치다,” “멈추다,” 그리고 “휴식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형 “샤바트”는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피로를 풀기 위한 수동적 쉼이 아니라, 진행하던 모든 창조적 그리고 생산적 노동을 능동적으로 “중단함”을 뜻합니다. “샤바트”를 음역한 헬라어 “사바톤” 역시 이러한 구약적 멈춤의 개념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구약 율법에서 안식일은 십계명의 핵심 조항으로 명시되며, 이를 위반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엄격한 중죄로 다루어졌습니다. 노동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다층적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그들의 종들 그리고 가축까지 휴식을 얻게 하는 인도주의적 배려였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 후 안식하신 거룩한 패턴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기억하고, 여호와의 특별한 언약 백성임을 증명하는 거룩한 표징이었습니다. 안식일은 경건한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참된 기쁨의 날이었지만, 세속적 사업에 몰두한 이들에게 이날은 귀찮은 장애물이었습니다.
B.C. 515 ~ A.D. 70에 이르러 서기관 등 율법 학자들은 계명을 어기지 않도록 안식일에 관한 구체적인 금지 행위 목록을 세분화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날에 불을 피우거나 짐을 나르는 행위나 파종과 추수가 금지되었고, 여행의 범위를 제한하는 “안식일 길 Sabbath day’s journey”의 개념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 상황에서는 안식일 규율보다 생명 보존이 우선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으며, 성전 봉사나 할례 등은 안식일 노동 금지보다 우선시되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는 매우 독특한 그들의 정체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필로는 유대인의 안식일 관습이 외부에 경이로움과 찬사를 불렀다고 기록하면서도, 때로는 게으름의 핑계로 조롱받았음을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기 소지나 행군을 거부했기에 외국 군대 복무를 면제받기도 했습니다. 당대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기도와 성경 낭독과 교훈적 강론을 나눴습니다. 안식일 법의 세분화된 세칙들은 마음이 약한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중압감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안식일은 예수님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 간의 치열한 신학적 충돌 무대가 됩니다.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하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자신을 고발하려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은 안식일 추수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었던 성경적 선례를 인용하며, 율법의 경직된 조항보다 인간의 생존과 유익이 우선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는 대선언과 함께, 자신이 “인자로서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며 안식일의 핵심이 엄격한 의식 준수가 아닌 “자비와 동정심”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는 것처럼, 거룩한 날에 사람을 치유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의 본질에 부합하다는 것을 실례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허리가 굽어진 여인을 안식일에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속 일하시듯 자신의 치유 사역 역시 신적 권위에 기반한 생명 역사임을 밝히셨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안식일 논쟁의 핵심은 계명의 폐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의 회복”입니다.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어 율법을 완성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참된 뜻임을 삶으로 입증하셨습니다. 이에 비해 바리새인을 비롯한 당대의 종교 권위자들은 안식일을 제약과 정죄의 굴레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이나 율법의 정신보다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일 work”의 법률적 정의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하는 안식일은 규율에 갇힌 정죄의 수단이 아닙니다. 대신 타인을 향한 자비와 선을 실천하고, 억압된 삶의 굴레에서 서로를 풀어주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회복과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제약의 날이 아닌, 생명과 자비가 넘쳐나는 기쁨의 축제 날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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