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2), “원시 교회의 유산”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두 번의 예언을 듣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 중에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는 부활 후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유언 모두 제자들과 헤어지는 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내용은 동일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보내심을 받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이제 제자들에게 승계됩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원시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원시 교회가 전한 복음의 중심은 종교적 교훈이나 도덕적인 삶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라는 진리였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도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전형적인 신앙의 형태였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했고, 바울은 회심 후 우선적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 힘을 얻어 회당에 들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헬라 세계에 들어가서도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전도는 단순히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전도란 자신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 자체였습니다. 말로만 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표적과 기사도 복음의 증언을 뒷받침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때로는 스스로 천막을 만들어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이것은 전도가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당했던 그 고통을 소상하게 기록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에게 전도는 선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무였습니다. 복음 분배를 맡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 안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엄숙하게 명령합니다.
신약 성경 이후의 고대 기독교 자료들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음을 보여 줍니다. 1세기 말 또는 2세기의 사도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교사들의 사역을 기록한『디다케』는 전도가 그들의 일상이었음을 것을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된 가르침을 가지고 와서 전달하는 자는 누구나 사도나 순회 지도자로서 환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 교사가 변질하여 올바른 의로움과 주님을 아는 지식을 깨뜨리는 다른 가르침을 전한다면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의로움과 주님을 아는 지식을 더해주는 자라면 주님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전도 여행자가 생계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초기 교회가 복음 전파를 매우 실제적인 삶의 문제로 받아들였음을 보여 줍니다.
2세기 초의 로마 플리니우스가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비두니아와 본도 지역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하면서, 그들이 정해진 날에 모여 그리스도께 찬송하고, 자신들의 삶을 바르게 살겠다고 서약한다고 기록합니다. 더욱 주목할 내용은 기독교 신앙이 도시뿐 아니라 시골 마을까지 퍼져 있다는 보고입니다. 이 사실은 사도시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복음이 특정 지역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계층과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2세기 중엽에 활동했던 저스틴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진리를 세상 앞에서 가르치고 있음을 변증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분으로 설명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단순히 개인적인 종교적 취향이 아니라 세상에 증언해야 할 진리로 제시합니다. 또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민족이나 특정한 지역에 갇혀 있지 않고 그리스와 야만인의 여러 도시 가운데 살아가면서 독특한 삶을 보여 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분리된 종교집단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3세기에 이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오리겐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도시뿐 아니라 마을과 시골까지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했다고 기록합니다. 전도자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유세비우스 역시 4세기에 기록한 『교회사』에서 사도들이 박해로 흩어진 뒤 여러 나라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자기들끼리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전도를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직무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직분과 역할에는 차이가 있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은사가 아닙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원시교회로부터 오늘의 교회에까지 이어져 온 신앙의 유산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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