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독교 역사 속의 한국 이민교회의 출구 (마지막회)
작금의 세계 기독교는 전례없는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유럽교회가 급속히 쇠퇴하고 북미교회 또한 최근 10-20년 사이에 급속히 세속화되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따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저출산과 불신앙으로 교회학교가 무너지면서 빠르게 서구교회의 쇠퇴의 길을 쫓아가고 있다. 제가 속한 해외한인장로회(KPCA) 경우에도 1976년 창립 당시 3개 노회, 48개 교회로 출발한 교단은 103명의 목회자, 47명의 장로, 5,862명의 교인수였다. 그런데 20년 사이에 빠르게 성장하여 1996년 5월 통계에 따르면 본 교단은 11개 노회, 263개 교회, 468명의 목사, 482명의 장로, 28,842명의 성도로 성장했다. 교회 수는 6배, 목회자 수는 4배, 장로 수는 10배, 교인 수는 5배가 성장하였다. 그런 본 교단이 2014년 이후로 세례교인 수 67,802명을 정점으로 한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여 2026년 3월 현재 세례교인수가 51,854명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에 480개의 교회이던 총회 산하 교회가 2026년 현재 423개 교회로 감소한 상태이다.
우리 민족이 가장 어두운 역사적 암흑기인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4-8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4-05년 러일전쟁에서 당시 세계 최강의 기독교 문화유산과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를 1년만에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초강국이 되었다. 이어 일본은 1905년 조선과 을사조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국 통감부를 설치했다. 이어 1907년 정미조약(한일신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내정권을 장악했다. 조선의 미래는 암울해졌고 시민들의 마음은 너무나 우울했다. 그러나 1907년에 한국교회사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1월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0일간 캐나다 의료선교사 로보트 하디(Robert A. Hardie)를 모시고 사경회를 하면서 영적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평양 시민은 4만 명에 불과했지만, 부흥회 새벽기도회 때에 6천 명이 모였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민족의 앞길에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였다. 사경회가 끝난 후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각기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 부흥의 불길을 전국 각처로 확산하였다. 1905년에 321개 교회, 세례교인 9,751명, 학습교인 30,136명이던 한국교회가 1907년에는 642개 교회, 세례교인 18,964명, 학습교인 99,300명으로 급증하였다. 여기에는 선교사들의 우월적 의식과 한인교인들의 위축된 의식 및 배타성을 서로 이해하고 자성함으로써 화해의 기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혼구원에 집중되었던 사역이 교회의 공동체성이 살아나면서 교회간의 연합과 사회적 책임을 깊이 인식하며 한국 사회에 빛을 발하는 선교적 교회로 전환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역사적 사회적 민족적 위기는 오히려 기독교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결코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다시 한번 ‘환골탈퇴(complete transformation)’의 정신으로 출구를 찾아나가야 한다. 먼저 교단마다 신학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복음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의 정립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핵심 가치를 무너뜨리면 기독교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나갈 때 기독교의 생명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동시에 세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야한다. 복음과 진리의 문제가 아닌한 형식과 제도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다문화(Muli-cultural)와 다인종(Multi-ethnic) 다세대(Mult-generations)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간의 죄성과 제도의 부작용은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나 동일하게 일어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배척하기 보다 화해와 평화와 희생의 정신으로 서로 세워주고 함께 연합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교회와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수도원적인 영성 회복이 절실한 시기이다. 시대마다 회복의 원동력이 있었다. 10세기 중세교회가 무너질 때 기독교를 회복한 공동체가 앗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너져 개신교회가 세상에서 빛을 잃을 때 독일의 경건주의, 프랑스의 위그노공동체운동, 영국 웨슬리의 성화와 성령운동, 미국 청교도들의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실천적 경건주의는 세상과 교회를 다시 온전히 세우는 통로가 되었다. 영적 지도자들이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세상이 산다. 저는 도시 교회가 잃어버린 영성과 묵상과 창조계시를 회복시키는 길을 숲속에 찾을 수 있었다. 위대한 역사는 작은 영성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박태겸 목사 (캐나다동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