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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칸트의 인식론과 신학

(3)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 칸트의 인식론과 신학

칸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의 인식론(epistemology)은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다. 그의 인식론을 모르고 그의 종교 사상을 논하는 것은, 지도 없이 낯선 도시를 헤매는 것과 같다. 이번 회에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칸트의 인식론이 신학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최대한 쉽게 풀어보려 한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에서

칸트가 살았던 18세기 유럽 철학계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쯔, 스피노자로 이어지는 대륙의 ‘합리주의(rationalism)’였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이 확실한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하나는 로크, 버클리로 대표되는 영국의 ‘경험주의(empiricism)’였다. 이들은 모든 지식은 감각 경험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처음에 합리주의의 전통 안에서 공부했다. 특히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와 경건주의를 결합하여 당대 독일 대학 철학의 표준을 만든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의 체계가 그의 학문적 토대였다. 볼프는 ‘실천적 이성’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킴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완성하려 했다. 그러나 칸트는 볼프가 이성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형이상학을 전개하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간파했다.

흄이 칸트를 깨우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을 통해 찾아왔다. 칸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흄은 그를 ‘독단의 잠(dogmatic slumber)’에서 깨웠다. 흄은 우리가 감각과 경험으로 얻는 모든 지식은 사실 단순한 ‘관습과 정신적 습관(custom and mental habit)’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성과 경험으로는 사물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모두를 뿌리째 흔들었고, 경건주의적 확신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칸트는 이 충격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신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나섰다. 그 결과가 바로 그의 독창적인 인식론이다.

칸트의 인식론: 우리는 현상만 알 수 있다

칸트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사물 자체에 대한 앎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시간(Zeit)’과 ‘공간(Raum)’이라는 선험적(a priori) 형식을 통해 인식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현상(phenomenon)’일 뿐이다. 사물 그 자체, 즉 ‘물자체(Ding an sich, the thing-in-itself)’는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다.

이것이 왜 신학적으로 중요한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이론 이성(theoretical reason)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존재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딪힌다.

알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의 위험

이러한 인식론적 통찰에서 칸트는 중요한 신학적 결론을 이끌어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종교적 망상(religious illusion)’을 낳는 가장 위험한 행위라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선입견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각자 제멋대로의 신을 만들어내게 된다. 칸트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종교적 폭력과 분쟁이 발생한 근본 원인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칸트는 기도에 대해서도 놀라운 발언을 했다. 기도는 ‘하나의 미신적 망상(a superstitious illusion)’이며,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소원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도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 기도 방식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칸트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명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하나님에게 이르는 다른 길, 즉 ‘도덕의 길’을 찾아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존재이고,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다. 그 인간을 만든 존재 역시 도덕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논리에 따라 칸트는 하나님을 ‘최고의 존재(the Supreme Being)’이자 ‘최고의 선(summum bonum)’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도덕적 입법자(the Moral Governor of the World)’, 즉 세계의 도덕적 통치자가 된다.

결국 칸트의 인식론은 신학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신앙의 고유한 영역, 즉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지키기 위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성으로 알 수 없다’는 선언이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칸트 신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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