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전도서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4)

[칼럼: 희년 이야기] 전도서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4)

[희년 이야기] 전도서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4)

전도서는 개인 윤리뿐만 아니라 사회 윤리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곧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그리스도교 윤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전도서의 사회 윤리는 토지정의와 노동정의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대표적 본문이 바로 전도서 5:18-19이다.

전 5:18-19, “18.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본문에 대해 개역개정성경이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으로 번역한 구절은 “모든 수고의 열매(‘아말’) 안에서(‘베’) 선함(‘토바’)을 보는(‘라아’)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고,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으로 번역한 구절은 “제 몫을 받아 수고의 열매(‘아말’) 안에서(‘베’) 즐거워하게 하신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히브리어 ‘베’의 기본 의미는 ‘~안에’이며, ‘토바’는 ‘선함’이라는 뜻이고, ‘라아’는 ‘(눈으로) 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아말’은 ‘수고’, ‘수고의 열매’(시 105:44) 등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수고의 열매’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수고하는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그 선함을 볼 수 있는 것은 수고 그 자체가 아니라 수고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고하는 사람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 역시 수고 그 자체가 아니라 수고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전 5:18-19, “18.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의 열매 안에 있는 선함을 보는 것이 좋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9.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의 열매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본문에서 “몫”(‘헬레크’)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데, 18절의 ‘몫’은 노동정의와 관련되고, 19절의 ‘몫’은 토지정의와 관련된다. 

사람의 몫은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의 열매 안에서 선함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수고의 열매’는 노동생산물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기본적으로 노동생산물을 그 생산자가 향유하는 것이 그 사람의 몫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동정의이다. 곧 전도서의 노동정의는 각 사람이 정당한 자기 몫으로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향유하는 것이다.

“몫”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헬레크’가 가리키는 대표적인 대상은 바로 ‘땅’이다. 그래서 “제 몫을 받아”(전 5:19)는 구체적으로 “제 몫의 땅을 받아”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지파별로 세고 가족별로 세어서, 수가 많은 자에게는 많은 땅을, 수가 적은 자에게는 적은 땅을 분배하라고 명하셨는데(민 26:54; 33:54), 그 분배받은 땅이 바로 ‘헬레크’인 것이다. 또한 전도자는 이웃의 땅에 대한 탐욕으로 그 분배받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는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다(전 10:8-9). 곧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땅의 몫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서의 토지정의는 각 사람이 정당한 자기 몫으로 토지평등권을 향유하는 것이다. 

요컨대 “제 몫의 땅을 받아 수고의 열매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신 것”(전 5:19)에서 “제 몫의 땅을 받아”는 토지정의를 가리키고, “수고의 열매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노동정의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선후관계에서 “제 몫의 땅을 받아”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수고의 열매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 이어지는 것은, 토지정의가 실현되어야 비로소 노동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 몫의 땅을 받지 못하면, 생계를 위해 타인의 머슴이나 품꾼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지대(地代, 토지사용의 대가)를 평등하게 향유하지 못하면,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대가 전부를 결코 받을 수 없다. 토지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면 노동정의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토지정의는 노동정의의 기초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며, 헨리 조지가 탁월하게 논증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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