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김치남 목사의 하나님의 교육명령 제10회 줌(Zoom)으로 잇는 초연결 D6 랜드

[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제10회 줌(Zoom)으로 잇는 초연결 D6 랜드

제10회 | 줌(Zoom)으로 잇는 초연결 D6 랜드

국경을 넘어 연결된 시대, 기술은 보조 수단일 뿐이다. 핵심은 168시간의 동행과 939주의 전수다.

한 화면에 모인 여러 시간대

  화면이 켜지면, 시간들이 먼저 모인다. 토론토의 저녁은 아직 식탁의 설거지 소리가 남아 있고, 서울의 새벽은 커튼 틈으로 빛이 얇게 스며든다. 누군가는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이어폰을 꽂는다. 누군가는 출근 전 셔츠 단추를 잠그다가, 잠깐 손을 멈춘다. 기도 제목이 채팅창에 올라오고, 서로 다른 발음의 “아멘”이 한 화면에서 겹친다. 국경은 화면 안에서 잠깐 접힌다. 마치 세계가 작은 기도방 하나로 줄어든 것처럼 이 장면은 분명 아름답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 같은 설교를 듣고, 같은 본문을 붙잡고, 같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팬데믹이 남긴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를 배웠다. 모일 수 없을 때도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연결을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그 가능성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다시 공동체의 문 앞까지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면을 끄고 나면 고요가 더 크게 남는 날이 있다. 사각형들은 사라지고, 방 안에는 다시 혼자다. 기도는 끝났는데 마음은 정돈되지 않았고, 말씀은 들었는데 삶은 여전히 분주하다. 어쩌면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을 만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기술은 길을 열어주지만, 길 위에서 사람을 붙잡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 링크는 손가락으로 누를 수 있지만, 동행은 손가락으로 만들 수 없다. 공동체는 접속으로 생기기보다 기억으로 생기고, 기억은 시간이 쌓여야 생긴다.

링크와 체온의 거리

  그래서 국경을 넘어 연결된 시대에 교회가 가장 먼저 되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연결되는가.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인가, 더 깊이 서로를 책임지기 위해서인가. 화면은 사람을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여전히 관계의 체온이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내 아이의 사정을 아는 사람, 내가 무너진 주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 그 한 사람의 기억이, 때로는 수백 명의 접속보다 더 단단한 복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해야 한다. 

“국경을 넘어 연결된 시대, 기술은 보조 수단일 뿐이다. 

핵심은 168시간의 동행과 939주의 전수다.”

  핵심은 화면 안에 있지 않다. 월요일의 식탁, 화요일의 차 안, 수요일의 숙제 옆, 목요일의 불안한 밤, 금요일의 관계를 복원하는 말투. 그곳에서 신앙은 ‘시청’이 아니라 ‘살아냄’이 된다. 168시간은 단지 긴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파송하시는 시간표다.

초연결의 빛과 그림자

초연결은 두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가능성이다.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다시 연결되고, 언어와 국경을 넘어 서로의 사정을 듣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위험이다. 연결이 쉬워질수록 연결의 의미가 가벼워질 수 있다. 클릭 한 번으로 들어왔다가 클릭 한 번으로 사라지는 관계. 화면 속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내 삶을 아는 사람은 줄어드는 역설. 초연결 시대의 교회는 이 사이에서 분별해야 한다.

다리는 어디로 이어지나

  여기서 D6 랜드의 관점이 또렷해진다. 집·교회·학교는 서로 다른 울타리(관할권)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의 168시간을 위해 함께 서는 힘(통합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기술은 이 연결을 돕는 다리일 수 있다. 그러나 다리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리는 어디로 건너가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화면이 공동체의 광장으로 데려가더라도, 그 광장에 선 사람을 가정의 식탁으로, 교회의 품으로, 삶의 예배로 다시 데려오는 길이 없다면 초연결은 오히려 고립을 키운다.

  초연결 시대에 교회가 붙잡아야 할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기억”이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한 가정의 사정을 알고, 한 아이의 한 주를 마음에 담는 기억의 습관이 공동체의 체온을 만든다. 그 체온이 살아나면 질문이 살아나고, 신앙은 자연스럽게 들으라–질문하라–반응하라–기록하라의 리듬으로 굴러간다. 또한 가장 중요한 예배의 공간은 화면 속이 아니라 화면 밖의 부엌과 식탁, 침대 옆, 현관이다. 온라인은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가정이 다시 함께 앉도록 돕는 보조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리셋해야 할 것은 접속률이 아니라 동행률이다.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가보다, 누가 누구의 삶을 실제로 기억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은 실험 하나면 충분하다. 온라인 모임의 끝 3분을 ‘가정으로 돌아가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집에서는 식탁에서 다시 묻는 것이다. 그 질문 하나가 초연결을 가정의 연결로 바꾸는 스위치가 된다. 939주의 전수는 화면이 꺼진 뒤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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