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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세례, “하나님께 환대받는 첫걸음” 

세례, “하나님께 환대받는 첫걸음” 

세례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물 속에 담그다,” “푹 집어넣다,” “흠뻑 적시다,” 또는 “가라앉다”입니다. 이 낱말이 유래된 단어의 동사형 “밥티조”는 여러 흥미로운 배경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 속에는 밥티조가 다양한 상황에서 쓰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사용은 바다에서 적들이 서로 싸울 때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는 “밥티조”가 매우 자주 언급됩니다. 유대 군인들을 태운 작은 배들이 자신들의 땅을 침공해 오는 로마 군함과 맞서서 싸우기에는 너무 약했습니다. 로마의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는 무장한 수 많은 군인들을 지휘했습니다. 유대 군인들은 거대한 군함에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군함 주위를 돌거나 때로는 가까이 다가가면서 군함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 싸움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이 로마인들에게 던진 돌은 그저 소리를 내며 하나씩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갑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돌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군함이 유대인들의 작은 배에 충돌하자 배가 난파되면서 그들은 물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바다에서 뛰어든 사람들이 헤엄을 치면 로마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창을 던졌습니다. 창을 맞은 군인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물속에 가라 앉다는 단어는 희랍어 “ 밥티조”입니다. 밥티조는 한 개인의 육체적인 삶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는 이 단어가 다른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그달랴는 이스마엘과 그의 동료들을 자기 집에 초대합니다. 그달랴는 그들을 위해 호화스런 잔치를 베풀고 그들에게 선물들을 나줘 줍니다.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 그달랴는 술에 깊게 취해 쓰러지고 맙니다. 그달랴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게 되자 이스마엘은 그의 동료 10명과 함께 잔치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살육합니다. 이 곳에서 술에 깊게 취했다는 단어는 밥티조입니다. 밥티조는 술, 마약, 욕망, 질병, 그리고 마법에 “압도되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의지나 목적을 잃는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이뿐 아니라 고대 헬라 문화에서 “밥티조” 는 더러워진 몸을 물속에 넣어서 “깨끗하게 씻다” 혹은 “목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종교 예식에 앞서서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목욕하는 행위를 “밥티조”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세례에 관한 몇 가지 특징적인 사용례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첫째, 세례는 정결 예식입니다. 구약 시대에 시작된 이 정결 예식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기 전에 제사장과 모든 백성이 자신들의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육체적으로 불결한 자를 물로 씻는 예식을 통해 그를 공동체 일원 자격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이 전통은 유대인들의 손과 발과 그릇을 물로 씻는 관습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유대 지도자들이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고 항의했던 이유입니다. 세례는 더러워진 육체를 깨끗케 하는 정결 의식이었습니다. 

   둘째, 세례는 회개의 표시였습니다. 이 세례는 그리스도 이전의 것으로 세례 요한의 사역과 관련됩니다. 요한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언급할 때, 이 세례는 회개하는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한 예식입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적 과정의 출발점입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칩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요한의 세례가 진정한 세례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요한의 세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유아세례나 영아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 번째, 세례는 신자됨의 증거였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형태로 한 개인이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위대한 위임 The Great  Commission”으로 이해되는 마지막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증표로 삼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이 원칙을 신중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반응했던 3천 명의 사람들에게 초대교회가 먼저 했던 예식은 세례식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재무관이 복음 전파에 반응하자, 빌립이 우선적으로 했던 예식도 세례식입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과 실라가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반응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즉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 됨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 외에도 세례는 독특한 기능과 특성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세례로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잔과 세례는 단순히 성찬식과 세례 예식에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죽음이 포함된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는 물 세례이며, 예수님께서 하실 세례를 성령 세례라고 언급합니다. 성령 세례는 사람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때 오시는 성령을 뜻합니다. 오순절 날 이 성령은 불의 형태로 오셔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애매한 표현은 일종의 비유로,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와 같은 뜻입니다. 모세와 함께 할 때 바다에서 구원 받은 것처럼, 예수와 함께 할 때 바다 같은 인생 길에서 축복과 은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를 위해 받는 세례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언급들로 인해 세례가 오용되기도 했습니다. 세례가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세례의 유익이 한 영혼에게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자녀로서 얻게 되는 은총이 크기 때문에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마틴 루터는 “세례는 처절한 회개로 우리 안의 옛 아담이 익사하고 모든 죄와 악한 정욕이 멸망할 뿐만 아니라, 대신 날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서 의와 정결한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세례는 세상에서 배척당하나 하나님께 환대받은 길을 여는 고결한 행위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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