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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양자, “종에서 아들로”

양자, “종에서 아들로”

애굽의 공주는 나일강에 떠내려 오는 갈대 상자 속의 아기를 건져냅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히브리 사람의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그를 불쌍히 여겨 왕실로 데려와 키웁니다. 아이가 성장하자 공주는 그를 자신의 아들로 삼고 모세라고 이름지어 주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가는 노예를 양자 삼았습니다. 

   입양 제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양자는 대체로 자연적 후사가 없어 가문을 보존하고자 할 때 시행되었습니다. 또는 어떤 관계 속에서 깊은 애정을 품게 된 젊은 남아나 혹은 종교적 이유에서 양자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양부는 생전에 혹은 유언을 통해 양자에게 자신의 가문이 지닌 모든 특권을 영구적으로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은 양자는 새 아버지에 관한 법적 의무와 종교적 책임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입양을 통해 가족과 가족 의식의 연속성이 유지되었습니다. 

   부권이 강한 로마 사회에서 양자 제도는 매우 엄격했을 뿐만 아니라 구속력이 강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로마에서 양자의 지위는 거의 노예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연적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새 가족으로 통합된 입양으로 일종의 “매매”나 “속량”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몸값은 지불하고 양자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양자는 단순한 가족 편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절대 권력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또 다른 경우 황제와 같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찾아 양자로 삼았습니다.

   히브리 사회에는 제도화된 양자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율법에는 양자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고, 히브리어에도 이를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지파의 기업과 상속을 위한 규정과 자녀가 없을 위험은 계대결혼이나 일부다처제가 부족 소유를 보존하는 입양을 보완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선언한 사건이나, 르우벤의 죄 때문에 그의 권리가 요셉에게 넘어간  것도 가족의 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양자권” 부여의 수단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에스더의 경우는 양자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팔레스타인 밖에서 율법의 일반적 틀을 벗어난 상황에서 일어난 사례들입니다.

   “양자”로 번역되는 희랍어 “휘오데시아”는 기본적으로 “아들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양자란 어떤 사람이 (일반적으로 아들) 새로운 가족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결정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 행위를 통해 그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되는 동시에, 그 가족 구성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됩니다. 동시에 이전 가족 관계에 속해 있던 모든 권리와 의무는 완전히 소멸됩니다. 양자는 단순한 신분 변경이 아니라 삶의 소속과 정체성 전체가 옮겨지는 사건입니다. 이 제도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적응하여 발전되어 왔습니다. 양자는 특정 문화나 종교에만 국한된 제도가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양자는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관계를 나타낼 때만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 관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흠 없는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바라보시고 또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아버지입니다. 피조물을 향한 아버지의 근본은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잠재적으로 영원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입양하시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본성의 표현은 이미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첫째, 양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행위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됨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전부터 바라던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공로에 의한 확정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의존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아들 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고 언급합니다.

   둘째, 인간은 이전의 종살이에서 값을 치르고 구속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옮겨진 것입니다. 양자 삼는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존재들에게 종되었던 우리를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존재란 당시에는 제우스나 헤르메스와 같은 신들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의 영혼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모든 것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을 자기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유업을 주실 것입니다.”

    셋째,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아들 됨을 깨우쳐 주시고 확증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관계로 이끄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양자 됨의 신비는 구원의 질서에서 다른 개념들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중생(Regeneration)이 성령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양자 됨은 그 생명이 새로운 “가족 관계” 안에서 누리는 법적 신분과 의식적인 경험을 강조합니다. 칭의(Justification)가 재판장 앞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법정적 선언이라면, 양자 됨은 법정을 벗어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가락지를 끼고 잔치를 벌이는 회복의 사건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가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면, 양자 됨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제적인 삶입니다. 이 삶은 언제나 도덕과 윤리와 관계합니다. 

   양자란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지는 대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법적 선언을 넘어 한 개인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한 양자 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보내심을받은 생명의소리교회: 전화 (604) 315-7988, 이메일: thesentnamg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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