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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예배 (3), 일상의 경건

예배 (3), 일상의 경건

거대한 변곡점에는 언제나 구질서의 중력과 신질서의 원심력이 충돌하는 긴장의 공간이 존재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역시 이러한 역사의 파고 (波高)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도들과 초기 교회 신자들은 유대교라는 유구한 전통의 모태 안에서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자유와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형화된 형태로 향유하는 “기독교 예배”는 사실 예루살렘 성전의 장엄함과 회당의 치열한 논쟁, 그리고 이름 없는 성도들이 내어준 거실 식탁의 온기가 교차하며 빚어낸 혁신의 산물입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기성 종교와의 단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한 유대교 신앙인처럼 보였습니다.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을 경험한 뒤에도 여전히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축복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된 이를 치유하며 복음을 선포한 장소도 성전의 미문 앞이었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일상적 교제 또한 매일 성전에 모이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는 이 역사적 현상을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이방 선교의 기수였던 바울조차 선교 여행 중에도 유대 절기를 지키려 애썼으며,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성전 정결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율법이나 성전에 대해 결백함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동행은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확산하면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지상의 성전”을 신앙의 유일한 중심으로 여기는 유대교적 배타주의는 이방인 선교에 거대한 장벽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 직전의 설교를 통해 지상의 성전이 가진 유한성을 고발하며,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만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는 초기 교회가 성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영적 예배”로 나아가는 중요한 신학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회당에서의 사정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든 가장 먼저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성경을 강론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움, 데살로니가에서 회당은 복음 전파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성경 해석은 필연적으로 기존 유대 공동체와의 갈등을 야기했고, 회당은 곧 논쟁과 분열의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회당 전체가 기독교 공동체로 개종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며, 유대 지도자들의 적대감이 심화함에따라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전과 회당에서 밀려난 그리스도인들이 향한 곳은 화려한 종교적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자들의 “가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 세워진 교회와 같은 “가정 교회”는 건물 중심의 종교를 삶의 현장 중심인 신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전이는 예배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으며, “떡을 떼는 행위”를 통해 주님과의 특별한 교제를 재현했습니다. 이 떡을 떼는 행위는 때로 일반적인 식사였고, 때로 성찬식이었으며, 종종 이 둘이 결합된 형태의 독립적인 예배로 발전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는 당시 예배의 구체적인 양식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몇몇 구절을 통해 그 편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일 첫날 저녁에 모여 사도의 설교를 듣고 떡을 떼는 모임이 정착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사례처럼 시편 찬송, 교리 교육, 방언과 계시, 통역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예배가 행해졌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바울은 이러한 자유로운 예배 분위기 속에서도 “공동체의 덕을 세움”과 “질서 유지”라는 핵심 원칙을 강조하며 기독교 예배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이러한 공동체적 혁신을 지탱한 것은 성도 개개인의 깊은 경건 생활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아있는 본보기였습니다. 그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사역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며 성도들을 위해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구약과 유대교의 전례적 언어를 자유롭게 차용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의 확신이 결합된 “위엄과 열정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또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경 연구와 자기 절제, 금식을 경건의 필수적인 도구로 삼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기 수양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해지며 더 나은 봉사를 위해 몸을 쳐 복종시키는 훈련이었습니다. 개인의 예배가 공동체의 예배로, 그리고 다시 세상 속에서의 올바른 행실로 통합되는 유기적인 신앙 체계가 이 시기에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초기 교회는 과거의 유산을 무조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가 가진 풍부한 전통을 계승하되, 그것을 “그리스도의 성취”라는 관점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고착된 성전 의식보다 성령의 역동적인 인도함을 신뢰했으며, 회당의 박제된 율법 조문 대신 복음이 지닌 가공되지 않은 생명력을 삶의 현장에 채워 넣었습니다. 새로운 신앙과 기독교 정신은 단순히 형식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고, 옛 형식을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담을 그릇을 만들어내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다시금 건물과 형식의 비중이 커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성전의 마당을 나와 가정의 식탁에서 주님을 만났던 그 혁신적인 정신은, 우리의 예배가 화려한 의례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성도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약동하고 있는지를 준엄하게 되묻습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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