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2), ‘거짓과 참’
세상에 가치 있고 선한 것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그것을 흉내 낸 모조품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명품 가방에서부터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조품은 진품의 권위를 빌려 대중을 현혹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적인 영역, 특히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 운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예언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참 선지자”의 기록인 동시에, 그들과 끊임없이 대립하며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렸던 “거짓 선지자들”과의 치열한 전쟁 기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고대 성경이 제시하는 “거짓과 참”의 분별법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는 아예 여호와가 아닌 이방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는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의 거짓됨을 질타했습니다. 이세벨이 바알 숭배를 들여왔을 때 나타난 “바알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처럼 독자적인 견해를 표명했다기보다 권력의 비호 아래 활동한 종교적 도구에 가까웠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려는 외부의 적이었습니다.
둘째는 더욱 교묘한 부류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짓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적 수사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악한 통치자들이 경건한 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후원한 “관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등장하는 아합 왕의 선지자 400명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아합 왕이 듣고 싶어 하는 승리의 소식만을 전했습니다. 반면 참 선지자 미가야는 왕의 노여움을 살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가감 없이 선포했습니다. 위선적인 다수의 외침 속에서 진실은 종종 외로운 소수의 목소리로 남습니다.
셋째는 변질된 자들입니다. 선지자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완전한 죄인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발람이나 벧엘의 늙은 선지자처럼 한때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전했으나, 이후 악한 행위에 빠지거나 거짓 메시지를 전하게 된 사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분이 직접 전하시기로 선택하신 순간에만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인간 대리자의 도덕적 결함은 언제든 메시지를 왜곡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참 선지자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세는 신명기를 통해 몇 가지 실제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갖추는 데 필수적인 지표가 됩니다. 1. 참 예언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참 선지자는 반드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해야 합니다. 다른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거나 이방의 출처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섞는다면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자입니다. 참된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계시에 근거합니다.
2. 참 예언은 표적과 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자신의 사자를 확증합니다. 모세나 엘리야의 사역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적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자들을 확증하기 위해 이러한 특별한 능력을 드물게 사용하셨으며, 여대다수의 선지자는 기적보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사건들을 통해 일하였습니다.
3. 참 예언은 그것의 성취입니다. 모세는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라고, 그 기준을 명확히 알렸습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바빌론으로부터의 즉각적인 평화를 예언했던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해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때로는 예언이 먼 미래를 가리켜 당대에 확인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이사야가 100년 후의 고레스 왕을 예언한 것처럼 역사는 결국 참 선지자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4. 이전 계시와 일치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언의 가장 중요한 시험입니다. 설령 기적을 행하고 예언이 적중할지라도, 그 가르침이 이전의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된다면 그는 거짓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계시의 일관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들을 적용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제시한 시험들은 많은 사기꾼을 걸러낼 수 있었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가 운 좋게 미래를 맞히거나 교묘하게 기존 말씀을 인용하여 모순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참 선지자 중에도 기적을 행하지 않거나, 먼 미래만을 예언하여 당대에 검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참된 하나님의 계시라 할지라도 이전 선지자와 다른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여 외견상 모순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바울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각기 다른 강조점으로 사용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야고보는 실천을 포함한 온전한 믿음을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내면적 믿음을 강조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경건한 백성들은 100년 전 이사야의 “예루살렘 보호” 메시지를 그대로 반복하는 하나냐와, “예루살렘 멸망”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꼈을 것입니다.
결국, 누가 참 예언자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구약의 선지자들이 참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증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으라”고 선포하시며 구약 성경의 권위를 직접 승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책들을 보존한 성경 저자들의 손길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확증을 통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신뢰하게 됩니다.
거짓이 참보다 더 달콤하고, 다수의 위선이 소수의 진실을 압도하는 풍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대의 선지자 분별법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묻습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본래 뜻과 일치하는 말씀 앞에 서 있는가?” 참과 거짓의 구별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겸손하고 순전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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