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교회의 핵심 가치,” 선교 (3)
우리 말에 “원조 (元朝)”가 있습니다. 이 낱말의 의미는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 혹은 맨 처음 창시한 사람입니다. 또 최초로 만들어진 사물이나 물건도 원조라고 칭합니다. “원조 갈비,” “원조 순두부,” “원조 족발,” 등처럼 음식점 이름에서 이 단어는 쉽게 발견됩니다. 어떤 식당의 간판에는 음식 이름 앞에 “원조의 원조”를 붙인 곳도 있습니다. 너도나도 원조라는 라는 낱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진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원조를 찾는 이유는, 원조는 짝퉁이 모방할 수 없는 진한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는 사람의 내면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 기능뿐만 아니라 영혼 깊은 곳까지 최상의 감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조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교회도 원조교회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생활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약속된 것은 성령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에 머물렀을 때, 오순절이 되자 그들의 모임 가운데 성령이 임합니다. 12 제자들의 대표였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자 곧 바로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그 때 3천명이 세례를 받게 됩니다. 자연스레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신학자인 F. F. 부르스는 이 공통체를 “기독교의 첫번째 교회”라고 말합니다. 원조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과 성취,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물건을 서로 통용해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급격히 성장하자, 위기를 느낀 유대교가 교회를 향해 격한 공격과 함께 핍박을 가해옵니다. 핍박은 점점 가시화되어 결국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 핍박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 때 상황을 역사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교회 성도들이 고향과 조국을 버리고 모든 땅으로 흩어진 사실은 핍박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핍박자의 대표였던 사울은 공회의 허가를 얻어 무장한 상태로 교회의 잔멸을 시도합니다. 잔멸이란 사나운 야수가 달려들어 온 몸을 물어 뜯어 생명을 죽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막 시작한 교회는 큰 위기에 직면하고 교회 성도들은 흩어집니다.
그런데 대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흩어짐은 자신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피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흩어진 이유는 그들 스스로의 의지나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짜인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즉 그들의 삶에서 증명됩니다. “흩어지다”는 헬라어 “디아스페이로”는 생명이 있는 씨를 전 지역에 뿌리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는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 멀리까지 흩어져 종족을 번식할 때 사용되는 낱말입니다. 흩어진 상황을 묘사한 문체는 수동태입니다. 스스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흩어지게 했습니다. 핍박이 무서워 사람들이 도망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목적은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였습니다. 원조교회가 흩어진 것은 핍박 그 자체도 아니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의 약한 믿음도 아닙니다.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행위였습니다. 교회의 선교 활동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원조 교회의 태동을 기록하는 사도행전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우선적으로 예루살렘 전도부터 시작해서유대와 사마리아 전도그리고 땅 끝까지 전도하는교회의 활동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12장은 베드로와 빌립과 스데반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전도를 나타내며, 13-28장은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선교를 표시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난 환난으로 인해 흩어진 모든 사람들은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그 때 개척됩니다. 담임 목회자 바나바와 부교역자 바울이 이끌던 안디옥 교회는 급하게 성장합니다. 세력이 커진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이 있었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때에, 성령님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성도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보냅니다. 두 사람의 리더십 아래 교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서 안디옥 교회는 두 핵심 지도자들을 선교지로 파송합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선교지로 떠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원조 교회의 활동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집중됩니다.
선교는 원조 교회의 중추적 활동이며 심지어 본질입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성령이 오셔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높은 권위에 대한 순종도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아니며, 또한 미래에 있을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의무도 아닙니다. 핍박을 받아 흩어진 원조교회 성도들은 성령에 이끌려 전도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지배는 선교의 시작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