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재합니다.
금주부터 격주로 연재되는 김 카리스 교수의 ‘구약의 베일을 들추며’ 칼럼이 연재됩니다. Wycliffe College, University of Toronto에서 구약학 철학 박사학위(Ph.D)를 받은 김카리스 박사는 한국의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은혜’라는 뜻의 헬라어 이름을 지어 주시고, 항상 원어로 성경을 읽으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건국대학교 히브리학과를 졸업한 후 이스라엘 Tel-Aviv University에서 성서학과를 수료하였고, 미국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상담과 구약학을 전공하였다.
고린도후서 3장14절의 “For to this day, when they read the old covenant, that same veil remains unlifted, because only through Christ is it taken away.”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구약의 베일을 들추며>라는 섹션에서 독자들에게 쉽게 구약 본문을 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려 한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시편 2편을 쇼츠(shorts)로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요즘 숏폼(short-form) 영상이 많습니다. 3분 이하 길이의 영상들을 저도 손가락으로 올려가며 보다 보면 훌쩍 몇십 분이 흘러갑니다. 최근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쇼츠는 성경 인물들이 카메라 들고 스스로 브이 로그를 찍거나 마이크를 들고 지금 시대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삶을 간증하는 내용으로, 마치 고대의 성경 인물들이 현대의 문화에 익숙한 듯하게 행동해 우리가 친근하게 느끼게 만든 창작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광야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나도 고객센터 라도 있으면 내 불평을 접수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다가 화면이 바뀌어 지면을 덮은 만나를 보며 결연한 얼굴로 오늘 걱정 내려놓고 발걸음을 다시 내디뎌 보겠다고 믿음의 선택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짧지만 꽤 감동적이었습니다. 복음의 전달 매체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더 광범위한 대상과 연령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구현된 동영상은 없지만, 성경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줄거리 말고도 독자나 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한 도구들을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시편 2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주목하고자 하는 기재는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時制/tense)’입니다. 사실, 성서 히브리어 동사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떤 시간적 위치인 ‘언제’에 고정되기보다는 동작의 모습인 ‘어떻게’를 표현하기에 ‘시상 (時相/aspect)’이라는 말로 구분됩니다. 보통, 성서 히브리어에서 카탈(qatal) 형태의 동사는 완료나 과거 사건을 나타내고, 익톨(yiqtol) 형태의 동사는 미완료, 현재, 미래, 습관, 반복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산문에서는 보통 이렇습니다. 그러나 시편 같은 운문에서는 이 구분이 훨씬 느슨합니다. 익톨 형태의 동사가 과거의 사건을 더 자주 가리킵니다. 산문에서처럼 익톨 형태가 과거로 쓰이게 해주는 연계형 접속사를 동반(waw-consecutive)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시편 2:1에 그 예가 나옵니다. 개역개정 한글 성경에서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로 번역되어 동사는 “분노하며”와 “꾸미는가”로 현재 시제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두 동사를 현재 시제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서 전자는 카탈 형태 רָגְשׁ֣וּ (rā·ḡə·šū)이고 후자는 익톨 형태 יֶהְגּוּ (yeh·gū)입니다. 그래서 직역을 한 영어 성경 (YTL)은 “Why have nations tumultuously assembled? And do peoples meditate vanity?”라고 번역해서 히브리어 본문의 동사 시상에 가깝게 앞에 동사 assembled는 과거로, 뒤에 동사 meditate는 현재로 적어 원문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효과를 위해 시편의 저자가 이렇게 다른 형태의 동사 형태를 썼을까요? 역사 드라마를 생각해 보도록 하죠. 여러 나라의 왕들이 몰래 모여 제국에 반기를 드는 장면입니다. 첫 장면에서 내레이터가 말합니다. “그들이 반역을 일으켰다.” 그러고 이어진 장면에서 카메라가 현재 왕들이 회의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겁니다. 속삭이는 입술, 손으로 잡은 지도 등을 클로즈업하면서요. 말하자면, 내레이션이 현실이 된 상황을 말한 것은 카탈 형태 동사의 역할이고, 하나하나 동작을 보여준 것은 익톨 형태 동사인 것이죠.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그들이 모반하는 모습을 실감이 나게 표현해 줍니다.


과거인 듯, 또한 현재인 듯 표현된 이 절들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던 그 밤에 예수님 제자들에게는 현재로 펼쳐집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다 모였고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 칠 증거를 찾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막14:53; 15:1). 그들에게 시편 2편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성취되고 있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습니다. 시편 2편의 익톨 형태의 동사가 카탈 형태의 동사와 병치되면서 “지금화/현재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과거를 구분하는 시제가 아니라, 사건을 요약하는 컷과 재생하는 컷이며, 현재의 독자가 시편에 참여하게 해줍니다.
시제는 시간의 좌표를 찍어 주는데 이렇게 시상은 사건을 바라보는 카메라 각도를 보여줍니다. 일어난 사건의 내부를 보여주는 거지요. 시편 2편을 쇼츠(shorts)로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김카리스(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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