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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하늘향한책읽기]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김남준)

하늘향한책읽기_김남준_[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김영사, 2021

이 책의 저자 김남준 목사는 21세기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확보된 독자층이 두터운 데다가 편향되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저자의 글은 그가 내놓는 책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저자는 기독교 출판사가 아닌 김영사에서 책을 냈다. 김영사는 자회사인 포이에마 출판사를 통해 기독교관련 도서출판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김영사에서 직접 출간을 하였다. 

소위 잘 나간다고 하는 종교인들처럼 시대 기류에 편승한 전철을 밟는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에서의 의구심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나만의 기우였다는 것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라고 했던가. 일반 출판사를 통해 종교 색채를 빼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핵심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저자의 간절함이 보였다.  

일반 출판사를 통해 한 명이라도 이 책을 접하기에 더 편한 상황을 저자는 만들어 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무게에 대해 계급장 다 떼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 누구에게는 인생의 초반에 일찍 찾아오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인생의 후반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누구라도 인생의 무게는 나누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저자 자신은 그 무게를 초등학교 4학년 때에 경험하게 된다. 그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나름대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정이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를 탐독하며 죽음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저자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 절망의 깊이 속에서 죽음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인생의 무게야 말로 혼자서는 버텨낼 수 없는 것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저자는 남들보다 일찍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무게가 한없이 버거운 사람들, 인생의 벼랑 끝이라 삶을 끝내 버리고 싶은 사람들, 혼돈 속에 내팽개쳐져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저자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에 앙심을 품고, 결국에 자신을 황폐케 하고, 마음마저 거칠어져 가시나무처럼 된다. 새 한 마리 날아와 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을 던진다. 자신이 걸어온 그 길을 또한 걷고 있는 이들에게 슬쩍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온다. 

저자는 그리고 1,500년전의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보통 성 어거스틴으로 알려진)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는다. 처절했던 고뇌와 사랑, 외로움과 두려움의 의미에 대해 먼저 경험한 선배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할 용기’라는 무기를 살짝 보여준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이제까지 120독 이상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이 터져 나온다며 이것에서 생각할 용기가 생긴다고 설레발 친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탐독하며 지적 황홀경과 함께 영의 경계선 상에서 하나님께 귀의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들려준다. 여덟 개의 문장을 선별한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오르듯, 옥석을 가려내고 주춧돌을 찾아내듯,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가운데 뒤지고 고르고 정리한 문장을 소개해 준다. 

이 여덟 개의 문장은 족집게 강사가 짚어주는 것처럼 핵심이나 초점을 강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찍혀진 발자국의 역할을 한다. 제한된 지면관계상 그 발자국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여덟 번째 발자국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삼위일체] 마지막 장에 나오는 기도문이다. ”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발견되게 하셨고, 우리가 당신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주셨 사오니 또한 그렇게 찾아갈 힘을 주소서” (삼위일체 15.28.51)

믿음직한 저자로부터 여덟 구절의 엑기스를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초대하여 함께 걷기를 원했던 발자국이라면 함께 발자국을 따라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니체를 탐독하여 하나님이 없다고 했고, 헤르만 헤세에 매료되어 자살을 선택하였던 그 사람이 이제는 온전히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아무래도 천재 같다.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글이기에 가져올 지난한 논쟁거리는 시구(詩句)와 같은 문장에 감춘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각할 용기”로 도전하는 문장들은 시구(詩句)처럼 쏟아낸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불 꺼진 방에 홀로 있는 것을 무서워하였던’ 저자는 이제는 앞서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가라고 우리들 앞에서 등불을 들어준다. 그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떼어 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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