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향한책읽기, 조은아, [은혜 입은 자의 삶], 두란노, 2021]
이 책의 저자인 조은아 교수는 순교자 가정의 4대째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특히 캐나다 밴쿠버 유학생들의 아버지라는 별명과 함께 캐나다 이민교회의 대부이셨던 조영택 목사의 막내 딸이기도 하다. 2020년 10월 19일에 소천 받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평생 아낌없는 칭찬으로 자신을 격려해 주시고 깊지만 단순한 진리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깊지만 단순한 진리가 무엇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러시아권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저자는 선교를 위해 10년을 더 준비한다. 그리고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에 ‘마침내 나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이제 카자흐스탄 선교사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은아야, 네가 헌신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은혜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음성에 펑펑 울며 일기장에 써 내려간 글이 찬양의 가사가 되었고, 너무나도 유명해진 찬양이 바로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다.
저자는 자신이 20년 전에 작사한 찬양 가사의 총 여덟 구절을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으로 정한다. 그리고 역량 있는 선교학자 답게 하나의 책으로 엮어냈다. 선교(Mission)는 라틴어 ‘mitto’에서 왔는데 이는 ‘보내다’라는 뜻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시작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시고, 성령님이 교회를 보내시어 보내심을 받은 교회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동참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선교에 하나님께서 동참시켜 주셨다는 것이 바로 은혜를 입은 것이다.
보통 우리가 은혜 입었다 라고 말할 때 정말 평온하고 장밋빛으로 산 인생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저자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와 관심을 독차지하며 살았던 삶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목회사역 때문에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면서 15살이었던 저자는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이상한 영어 발음과 문법이 틀릴까 봐 아무 와도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얼른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어 치우고, 왕따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괜히 바쁜 사람처럼 교정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토론토 대학 수학 후 러시아권 선교사가 되기 위해 러시아 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른다. 유학 동기와 목적이 선교였기에 시간을 아껴 쓰다 보니 하루 한끼만 먹고 죽어라 공부하였고 러시아 대학생들에게는 영어로 성경 공부를 인도했다. 또한 현지 한인 선교사들에게는 러시아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섬김과 노력 끝에 결국 남은 것은 영양실조에 걸려 힘없이 방구석에 누워 있던 초라한 자신이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남편과 함께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현지 형제자매들과 교회를 개척해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10년 동안 준비하며 자신의 꽃다운 20대를 온전히 드려 일궈온 선교사역을 남편의 건강악화로 단 5년 만에 비자발적 선교사역 후퇴를 하게 되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가장 사역적으로 충만하고 준비가 완벽히 갖춰진 상태였고 빨간 벽돌의 교회 건물도 건축이 완공되어 청년들과 일상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 바로 그 때였기 때문에 실망은 더 컸다. 언어적으로도 문화 적응 면에서도 이제는 최고의 선교사역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그 때에 왜 선교지에서 후퇴하게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는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라는 이사야 49장의 말씀을 듣게 된다. 갈고 닦인 화살이 있을 곳은 화살통 안이 아니라 화살통 밖이어야 하지 않은가. 화살이 화살통 안에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왜 하나님은 그분의 그늘에 숨기시고 화살통 안에 화살을 넣어 두시려고 하시는 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던 상황에서 저자는 평생 구두를 닦으셨던 분이 “구두가 자꾸 망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이지 구두 탓을 해 봐야 소용없어.”라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선교가 자꾸 망가지는 이유는 구두 탓이 아니라 우리의 걸음걸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야 말로 하나의 명령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이기에 하나님께서 화살을 화살통에 그냥 두시거나 꺼내어 쓰시는 모든 결정도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데 자신이 주도하려고 하였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다루심’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때로는 갈등으로, 때로는 위기로, 때로는 고립으로 이끌며 그 사람의 존재의 핵심을 다루신다. 저자 자신이 15살 때 몰래 화장실에 숨어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경험이나, 몸이 으스러지도록 봉사와 섬김을 다한다고 하였지만 결국 남은 것은 영양실조 걸려 탈진했던 경험이나, 잘 나갈 때 어쩔 수 없이 자발적 후퇴를 해야 했던 그 모든 경험이 하나님의 다루심이었다. 이 화살통의 경험이야 말로 하나님의 다루심이었고, 이 다루심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는 고백이야말로 10점 과녁에 온전히 박힌 화살이 된다. 이제 자신도 하나님의 화살통의 화살로 다루어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