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 generation (마 12:38 – 45)
크로스한인교회 이홍건 목사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 산탄데르 델 마르에 가면 “알타미라 동굴” 이 있습니다. 이 동굴은 약 1만 5000년전의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동굴 벽에 남긴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동물들의 그림들과 수렵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과 함께 글자처럼 보이는 문양들이 나와서 많은 고고학자들이 그 문양을 연구하고 해석했는데 알고보니 “요즘 애들 버릇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의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라는 글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세대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1만 5천년전이나 3000년전이나 100년전이나 오늘날이다 어른 세대가 볼 때는 젊은 세대는 버릇없어 보이는 것은 비슷한가 봅니다. 세대간의 차이, 세대간의 갈등은 늘 존재해 왔었다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그 나라의 역사 속에서 여러가지 변화에 따라서 세대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같은 경우는 전후세대, 6.25전쟁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있었고, 그 이후에 베이비부머세대, 지금 교회의 어른들의 세대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 386세대 경제적 부흥과 함께 컴퓨터를 배우며 자란 세대이고, X세대는 경제적 풍요속에서 자유를 누린세대 그리고 M세대(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최근에는 MZ 세대라 불리는 세대들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간의 특징과 차이로 인해서 곳곳에서 세대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세대의 차이는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각 세대별로 자신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세대의 변화와 차이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38-3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대의 차이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세대간의 갈등과 차이는 아닙니다. 시대적인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달라지는 것에서 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세대를 살아도 세상과 악의 영향을 받아서 변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X 세대냐? MZ 세대냐? 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정의를 내리신 것입니다. A wicked and adulterous generation 오늘날과 같이 표현하면… WA 세대, WA generation 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시는 세대차이입니다. 영적인 세대차이입니다. 창세이래로 계속해서 세대가 거듭되면 거듭될 수록 점점 더 악해지고 음란해지는 세대로 변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악하고 타락하고 음란했다고 말하는 로마시대나, 폼페이사람들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일텐데… 사실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를 보면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억울해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악과 타락과 음란함으로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그들보다 훨씬 더 악하고 음란함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억울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악하고 음란한 WA 세대, WA generation의 특징을 디모데후서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우리는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악화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악하다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악” 입니다. 음란은 사랑의 대상이 바뀐 것이 “음란”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악하고 음란” 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바뀌면 기쁨과 즐거움의 근거도 바뀝니다. 자신의 배우자로 인해서 기쁘고 행복하던 사람이 다른 이성을 보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음란”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던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다른 것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는 것이 악하고 음란한 것입니다. 이런 세대를 살아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스럽습니다. 경건하게 살아가려는 성도는 아프고 힘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런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우리가 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1.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요나의 표적입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38-39)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sign 을 보여주십시요”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 사인을 보여주십시요’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정말 깨닫고 싶습니다 라는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어떤 사인 sign 을 보여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마음을 정확히 아시기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순수한 믿음을 잃어버린 세대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 A wicked and adulterous generation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말은 표적을 구하는 너희의 내면에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마비가 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지 못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듣지 못해서 믿음이 없는 것 아닙니다. 수 많은 기적과 능력을 보고 가르침을 들어도 그들의 마음에는 세상의 악한 것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세대를 가리켜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6-17)
예수님 당시의 세대의 변화는 마치 친구가 즐겁게 피리를 불어도 반응하지 않고 슬픈 일로 울어도 함께 아파하지 않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것에 반응하지 않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세례요한이 심각하고 엄중하게 “회개하라” 고 외쳐도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모습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금욕하면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외쳐도 반응하지 않고 그의 행색을 보고 ‘그가 귀신들렸다’ 한마디로 ‘미친놈’ 같아서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하니 그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 라고 ‘너무 세속적’ 이어서 싫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고장이 난 것입니다. 영적으로 반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대를 WA 세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영적인 감각은 고장이 났는데 자극적인 것, 재미있는 것, 선정적인 것, 신기한 것에는 “와~ wah~” 하고 반응합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sign 을 보여주십시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표적입니까? 좀 더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 자극적인 것, 더 강력하고 확실한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대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표적은 오직 한가지 표적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0) 요나는 선지자 중에 한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을 경험하며 회개하고 물고기다 뭍에 뱉에내 다시 순종했던 선지자입니다. 그의 인생을 통해서 보여주는 표적은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으로 거부하고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아서 핑계거리를 찾아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요나가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나의 죄악된 자아, 악한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 회개의 표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해야 할 표적입니다. 하나님~ 종교적인 위선의 가면을 벗고 주님의 십가자 앞에서 자신의 추악함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를 허락해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는 말씀에는 그들에게 회개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을 함께 기뻐하고,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퍼하는 그 마음을 회복하라 는 말씀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은혜를 누렸지만 정작 니느웨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니느웨 사람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주신 은혜와 자비에 원망했습니다. 그리고는 뜨거운 햇볕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그 니느웨성을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고 앉았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도록 박넝쿨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요나선지자는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박넝쿨로 인해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나는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기쁨으로 피리를 불어도 그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통하고 슬퍼해도 함께 슬픔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금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또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고 구하는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 공동체를 이루에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의 인생에 수 많은 표적과 이적들로 예수만이 주되심을 깨닫게 하셔서 주께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고난을 지나면서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통해서 주를 바라보게 하시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또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 삶에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역사가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고 구하고, 내가 투자한 주식과 부동산과 코인에 오병이어와 같은 대박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문제에 놀라운 기적과 같은 능력이 일어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일에 무관심하게 된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 회심의 역사가 너무 희귀해지고 있고… 누군가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보다 지금 당장 내 문제와 필요가 해결되는 기쁨이 더 크고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기쁨을 피리로 불어서 함께 춤을 추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며 애통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이 너무 달라져 있습니다. 주님의 슬픔과 우리의 슬픔이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1). 니느웨 사람들은 복음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메세지를 듣고 통곡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무엇이 죄인지 알지 못해 죄를 범하던 그들이 자신의 삶이 요나 선지자의 죄에 대한 심각성을 선포할 때에 죄에 대해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표적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표적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실 표적입니다. 교회는 이 표적이 일어나야 살아납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이런 표적이 나타나도록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2)
지혜의 왕이라 하면 솔로몬 왕을 떠올립니다. 그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이 온 세상이 퍼져서 솔로몬 시대에 남방의 여왕인 스바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싶어서 그 먼거리를 배를 타고 엄청난 비용과 선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왕상 3:9-10) 솔로몬이 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는 똑똑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부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이 기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지혜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에서 찾는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사람들의 리뷰를 잘 살피고 확인해서 좋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선택하고 구입할 수 있는 것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세상의 경제적인 흐름과 변화를 잘 캐치해서 미리 투자하고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면 참 지혜롭다고 합니다. 미리 미리 젊을 때에 노후를 준비해서 편안한 노후를 대비할 수 있으면 지혜롭다고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그런 지혜를 찾고 배우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라도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에게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왔던 스바여왕은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의 원천을 더 잘 알고 가까이 있는 우리가 그런 세상의 지혜를 찾아 헤메며 살아간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원천을 여호와 하나님 바로 그 분에게서 흘러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솔로몬보다 더 크신 주님의 기적을 보고 능력을 경험하고 그 말씀을 듣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지혜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2-3)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줄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이 지혜로 우리가 살아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이미 우리는 그 지혜를 소유하고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지혜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인데 그 지혜를 의지해서 이 악한 세대를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10년을 내다보며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가치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노후보다 영원한 사후를 준비하는 지혜를 추구하는 성도입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참된 지혜를 구하고 얻고 누리고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그리스도인이 구해야 할 것은 오직 성령충만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43-45)
마치 회개를 청소한 집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한번 청소한 집에 주인이 없이 비어있는 집을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번의 회개로 우리의 심령을 악한 것을 버리고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히 치웠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주인인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청소를 해 놨는데 주인이 없는 집에는 더 악한 귀신이 들어와 점점 더 악한 일을 하며 죄악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가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집회를 통해서 일시적인 회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되고 죄의 심각함을 깨달아 회개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심은 지나온 삶에 대한 애통함과 후회가 아니라 내 안에 오직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그 분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삶입니다. 단지 어떤 영적인 깨달음과 체험으로 자신의 영혼의 집만 깨끗히 치우고 살아가다보면 다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그 집을 가득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전보다 더 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예전에 그런 경험 다 해봤어… 나도 예전에 그렇게 열심이 있었어…” 라는 말로 거부하는 것처럼 나중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강팍해지고 악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에는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에서 보여지는 작은 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아버지 품으로 달려오는 작은 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옆집에서 가출한 아들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 오는 그런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잔치가 벌어져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큰 아들이 필요로 한 것은 자신을 위한 소를 잡아 친구들과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는 기쁨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입술로 고백해서 믿을 때에 우리의 죄를 다 씻으시고 깨끗한 의의 옷 세마포 옷을 입혀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늘 더러운 것이 오염되어 살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다시 깨끗이 씻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깨끗해진 집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무엇을 구하라고 하십니까? 성령을 구하라고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다스림 가운데 나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