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디모데후서 3:10-17)
노스쇼어 아름다운교회 이인한 목사
1 한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김춘화 성도님의 사연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피곤하고 갑자기 하혈을 해서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갔습니다. 의사와 상담 후 진료대에 올라갔더니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놓았는데 마취주사였고, 깨어보니 자신이 아픈 곳과 관계없는 수술을 해 놓았습니다. 의사에게 “왜 내가 요구하지도 않은 수술을 했습니까?”라고 항의했더니, 다른 사람과 착각했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치료해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더니 의사의 태도가 변하며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수술 후유증 때문에 눈에 이상이 생겨 안과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약도 너무 많이 먹어 위가 나빠졌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경찰에 고소를 했는데, 병원에서 진료차트까지 조작하여 고소마저 기각당했습니다. 다시 민사소송을 준비하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빨리 교회에 나가라.”고 세 번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주일 뿐 아니라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 말씀을 읽는 중에 시편 50편 6절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그날부터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니 제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을 계속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었던 과부에 대한 말씀도 읽게 되면서, 그 과부의 심정으로 금식까지 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재판이 시작된 지 6년 만에 의사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승리하여 결국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붙들어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긴 시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딜 수 있었다고 감사해하며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삶의 능력이 되고 이유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건들이 많이 생겨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막연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3 로마의 감옥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쓴 서신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신앙적으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뼈 속 깊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위해 무자비하게 크리스찬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폭주를 멈춘 분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기독교를 끝장내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늘로부터 빛이 임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질문하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는 두 번째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지 예수를 만난 적도 핍박한 적도 없었는데, 그 예수님이란 분이 예수믿는 사람들과 하나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4 예수님 말씀대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찾아왔고, 그에게 안수하매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첫째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유대인 그룹들이 배반자인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즉 그의 회심을 확실히 인정한 것입니다. 둘째 먼저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이 그의 회심을 의심해서 가까이하기 주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악명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던 예수님의 직계제자들조차 거리두기를 했습니다.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성경이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아라비아 광야에서약 3년, 그리고 고향 다소로 올라가 수리아 안디옥교회에 부임하게 된 바나바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약 10년간 은둔하며 지냈습니다.
5 바울은 마치 달리기 주자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리는 것처럼 자신이 낸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낸 길에 들어서자마자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온 시간 준비하고 훈련했던 모든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1년 동안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했는데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삶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성도들의 파송과 기도 가운데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을 시작으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지역을 비롯해 에베소에까지 교회를 개척했고, 세워나갔습니다. 그 일들 가운데 산 게 기적이라고 할 만큼 죽을 뻔한 위기도 많았습니다. 또 그가 세운 교회마다 문제도 생겨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서신을 보낸 것들이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성경이 되었습니다.
6 결국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찾아온 문제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문제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망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 문제를 통해 우리의 삶에 질서와 균형이 잡히며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바울처럼 하나님 앞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교회에 대한 문제를 들었을 때 그 교회를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읽은 신약의 상당부분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타이밍 참 절묘하게도 바울이 교회의 문제를 듣게 되었을 때 바울은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서신을 적게 된 것입니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문제가 터졌느냐에 집중하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며 이 일들 가운데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7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땅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분은 선하신 분이시며 완전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0-12절입니다.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 바나바와 함께 처음 방문했던 곳들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곧 갈라디아 지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루스드라에선 돌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해서 형제들이 끌어낼 정도로 심한 외상을 입었던 장소였습니다. 그걸 누가 아느냐? 디모데가 잘 알았습니다.
8 왜냐하면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에 다시 방문하게 되는데 이 때 그 지역 출신인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고, 그가 바울의 선교여정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 가야만 했던 루스드라, 고통의 트라우마가 가득한 그 장소에서 영적인 아들이라고 부르는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고통의 장소를 기쁨의 장소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겪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들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낭만으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고 고난길이지만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9 사도 바울은 말씀의 신비와 능력을 이미 많이 경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입니다.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진리 안에 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0 사람에게 언어란 매우 중요합니다. 언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언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도 언어를 통해 소통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소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글자의 힘 곧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들과 소통하십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은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 개의 입술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진학, 결혼, 직장 등 여러 가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이 찾아옵니다. 그 때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시렵니까? 또 감정의 상함을 경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무엇을 가지고 그 일을 감당하시렵니까?
11 질문을 풀고자 하는 간절함이 해답을 얻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의 말씀 앞에 비춰보시길 바랍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 삶의 문제가 하나 둘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다에 길을 내시고, 광야에 샘이 솟게 만드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온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시길 축복합니다.
12 ‘아주 잠깐 사라져버린 신뢰’라는 30초짜리 영상을 보았습니다. 한 가족이 산길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흔쾌히 내려 사진을 찍어주던 그 사람이 사진을 잘 찍어주기 위해 뒤로 물러가다가 갑자기 오토바이에 올라 타려고 했습니다. 딸처럼 보이는 한 여자가 급하게 달려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폰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 밖에 그 청년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밟고 위로 올라가 서서 가족사진을 찍어주려고 했습니다. 멋쩍지만 빠르게 다시 돌아갔고 사진을 다시 잘 찍고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영상이었습니다.
13 우리들도 알고 있고 경험했던 일들 때문에 때로 영상속의 여인처럼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워낙 그런 일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폰을 맡기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도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우리의 방식과 접근하는 법이 틀리기 때문에 때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잠깐 사라져버린 신뢰’라는 제목처럼 우리의 믿음도 잠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게 해주려고 했던 오토바이 청년처럼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선 디모데가 그렇게 좋아하고 따랐던 사도 바울을 2차 로마 감옥에서 살려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바울의 서신을 통해 디모데를 격려해 주셨고, 그가 정말 붙들려야 할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과 소통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뜻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그 분께서 그 분의 말씀을 통해 친히 이뤄나가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치유를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