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포도원 농부 비유(21:33-46)_핼리팩스한인교회 최병필 목사

[설교단상] 포도원 농부 비유(21:33-46)_핼리팩스한인교회 최병필 목사

포도원 농부 비유(21:33-46)

핼리팩스한인교회 최병필 목사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가 공감하는 당시의 그림언어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 청중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미지와 상징들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타국으로 갈 일이 생겨 자신의 포도원을 소작농에게 세를 주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이렇게 포도원을 세를 주고 주인이 떠나는 경우는 익숙한 풍경인데요. 당시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 삼고 있었던 상황에서 포도원을 소유한 주인은 이렇게 소작농에게 위탁을 주고 떠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주인과 소작농 모두가 선한 사람들이면 전혀 문제가 없죠.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위 ‘갑질’이 일어나는 거죠. 선한 소작농이 악한 주인을 만나면 한 해 피땀흘려 수고하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일수였죠. 주인의 갑질에 피해는 고스란히 일꾼들이 받죠. 그러자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해서 소작농들이 머리를 쓰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주인이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에 교묘하게 소출을 빼돌리고 축소하죠. 선한 주인이 그런 악한 일꾼들을 만나면 그해 받아야 할 삯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죠. 오늘 비유가 바로 후자의 경우가 되겠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두르고, 포도즙 틀까지 만들며 몇 년 동안 정성스레 포도원을 가꿉니다. 주인의 신실함과 성실함이 느껴지죠. 자기 포도원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또 풍성한 소출을 기대하며, 만만의 준비를 갖춘 모습입니다. 이 포도원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포도원이죠. 그 상태로 일꾼들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망가진 포도원에 일꾼을 투입한 게 아니란 말이죠. 이 포도원은 조금만 신경써 관리해주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좋은 포도원입니다. 추수 때가 되어 타국에 있는 주인이 포도 열매를 받기 위해 자신의 종 셋을 농부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종들을 보자,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죽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돌로 칩니다. 끔찍한 폭력을 행하죠. 분명 이 사람들은 악한 일꾼들입니다. 정말 주인이 로마 지주였다면, 당장이라도 군대를 동원해 응당 책임을 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인은 참습니다. 더 많은 종을 보내죠. 그런데 그들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가합니다. 악질 농부들입니다. 또 다시 주인이 참죠. 그리고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보내기로 하죠. 참 인내심이 많은 주인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마가복음을 보면, 이 아들을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로 묘사합니다. 아들은 주인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주인이 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들을 보내면서 주인은 저들이 “내 아들을 존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악한 농부들은 반대로 생각하죠. “저 아들은 상속자이기 때문에 저를 죽여 이 포도원을 우리가 차지하자”며, 그 아들이 이르자 포도원 밖으로 데려가 죽입니다.

비유이지만 너무도 끔찍하고, 충격적인 내용이죠.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종들을 폭행하고 죽이고, 마침내 아들까지 죽인 이 악한 농부들을 주인이 와서 어떻게 하겠느냐?” 묻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대답합니다. “악한 농부는 진멸하고 선한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겠지…” 분명 이들은 비유를 제대로 알아 들었습니다. 당연히 악한 농부들은 응당 심판을 받아 마땅하죠. 하지만 지금 이 대목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 악한 농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시 118:22을 인용하시죠: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새로운 이미지가 더해지지만 의미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일꾼들이 아들을 죽이듯, 건축자들이 돌을 버리죠. 그런데 그 돌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됩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4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백성 곧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자주 포도나무 또는 포도원으로 상징하죠.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상징하는 대표적 말씀으로 시 80:8이죠: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한편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상징하는 대표적 말씀이 ‘포도원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사야 5장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주 정성스레 포도원을 가꾸며 아름답고 거룩하게 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포도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포도원 소출이 풍성한 것이죠. “소출이 풍성하다는 것”은 주인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선한 열매를 가득한 복된 나라가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일꾼들에게 그 포도원을 맡깁니다. 여기서 일꾼들왕, 제사장, 선지자들 같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하지만 구약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포도원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선한 열매가 아니라 도리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튼실한 포도원이 엉망이 되고 말죠. 악한 농부들, 게으르고 탐욕적이고 무엇보다 포도원 주인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존중히 여기지도 않는 악한 일꾼들 때문에 포도원이 망가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심을 채우는데 관심있었죠. 포도원 주인은 그래도 어떻게든 그들이 돌이켜 포도원을 잘 가꿔 주기를 바래 참고 계속 종들을 보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하나님은 당신을 떠나 우상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려 끊임없이 참 선지자들을 보내셨죠. 이스라엘이 타락하면 타락할 수록 더 많은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에게 가스라이팅 된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은 “괜찮다! 우리에게는 성전이 있다! 멸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더 많은 제물을 바쳐라!” 종교적 전통/형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가스라이팅하고, 보냄 받은 종들을 죽이고 공격하죠. 비근한 예로 디셉사람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드린 탄식을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하나님은 포도원을 망쳐놓은 악한 농부들, 종교지도자들과 망가진 포도원에 아주 오래동안 참으십니다.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보내고 또 보내시며 포도원에 희망을 놓지 않으시죠. 그래서 구약성경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주인이 마지막 결단을 내리죠. 포도원 상속자인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아들까지 죽여버리죠. 이것은 지금 본문의 예수님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시며 하시는 말씀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포도원 이스라엘에 보냄 받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고 계시죠.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응당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쳐야 심판을 면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그 아들을 철저히 거부하죠. 존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포도원 주인의 권위,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급기야 그 아들을 포도원 밖에서 죽이죠! 이스라엘 밖, 로마의 권세에 넘겨줘 십자가에 죽게 합니다. 아들이 그렇게 농부들/일꾼들의 손에 죽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구절 41절43절이죠. 41절은 종교지도자들 스스로가 한 말이죠: “(주인이 오면)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그리고 43절 예수님 말씀이죠: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그 악한 농부들은 종교지도자들이고, 그들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아 “포도원 열매를 제 때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주는데, 그 농부들은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지금 비유를 함께 듣는 제자들이죠. 교회입니다. 본문인 마태복음을 받아 읽고 들었을 일차 독자 초대교회 성도들이며, 오늘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이죠.

우리가 예수 믿고 제자가 되었다는 것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일꾼의 일꾼 됨, 부름받은 일꾼으로서의 가장 아름답고 명예롭고 훌륭한 삶은 무엇일까요? 신실하고 충성스런 일꾼으로 주인의 포도원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가꾸는 것이죠. 교회는 하나님 나라 포도원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가꾸는 일꾼으로 보냄 받습니다. 온 세상하나님의 것이죠.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그 포도원을 잘 가꾸는 것, 교회의 사명이죠. 여러분교회이고, 여러분의 삶의 현장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그 포도원을 어떻게든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가꾸,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가 가져야할 소명과 사명이죠. “내 인생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다. 나는 그 포도원의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 내가 해야할 사명은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이 포도원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 풍성한 포도원으로 가꾸는 것이다!” 그래서 일꾼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주인의 권위를 인정하고, 다시 말해 내 인생의 포도원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꾼으로서 성실과 충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포도원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비유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포도원을 어떻게 여기시는지 보면 알 수 있죠. 얼마나 열심이고 정성을 다하시는지,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을 그렇게 가꾸시고, 마련하십니다.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고 구입하신 포도원입니다. 모든 것은 갈아 넣으신, 마치 그 포도원이 전부인 것처럼 전심을 다해 마련하신 포도원! 그게 바로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포도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마치 사랑의 대상이 여러분 밖에 없는 것처럼 모든 열심으로 전심을 다해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의 포도원을 무가치하게 평가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포도원을 해치는 악한 것들로부터 보호하시려 산울타리를 견고히 두르시고, 망대를 짓습니다. 풍성한 결실을 확실히 기대하시며 포도즙 틀을 마련하시죠. 그리고 그 포도원을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너의 인생을 내가 기뻐할 포도원으로 한 번 잘 가꿔봐라! 필요한 것은 내가 다 지원해주겠다!”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고 거룩한 하나님의 포도원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쉬지 않습니다. 때마다 시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죠.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매일처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소원 단 한 가지, 여러분의 포도원이 건강하고 착한 열매를 많이 맺는 아름다운 포도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여러분 생애에 눈동자와 같이 동행하십니다. 여러분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 만들어 낸 소중한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빈번히 내 인생의 포도원의 주인이 “”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열매를 맺고 싶어 내가 주인 노릇을 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려 하죠. “하나님, 제가 이런 열매가 필요합니다. 그 열매를 맺어 주십시오… 하나님, 왜 열심히 일 안하십니까? 내가 필요하다니까요!” 그때 하나님의 두 번째 성품, 오래 참으심이 발동하죠. 당장에라도 “이녀석 봐라! 주인노릇하고 있네!”하시며 혼줄내셔도 할말 없는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참아주십니다. “아직도, 네 인생의 주인이 너 인줄 착각하는구나! 조금 지나면 내가 너의 인생의 주인임을 알거야!”라시며 참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으시는 것만큼, 내 인생이 하나님의 포도원이 멋져질 기회와 시간은 줄어들게 되죠. 하나님께서 여러분 인생에 주구장창 참으시고 계시다면, 그 인생을 참으로 불행한거죠. “언제쯤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네 인생의 포도원을 가꿔볼래! 내가 언제까지 기다릴까!” 이러신다면 그 인생은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자기가 포도원 주인이라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얼마나 참으시는지…! 내 기분 내키는대로 신앙생활하고, 내 감정에만 충실하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심정은 헤아리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무엇을 기대하시고 목적하시는지 아는 것은 뒷전이지는 않는지…! 여러분! 여러분 인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포도원이 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무성한 풀해충제멋대로 뻗어 자란 가지들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게으름의 김을 매시고, 악하고 세속적인 생각의 해충을 제거하시고, 불필요한 탐심과 욕망의 가지들을 열심히 치십시오. 어떻게든 건강한 포도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일꾼이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왜죠? 오늘 비유의 마지막 교훈! 주인이 반드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와서 악한 일꾼들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일꾼들에게 주죠.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겉만 화려하고 잎만 무성한 성전유대교가 새로운 예수 공동체 교회로 대체되었다. 하나님 나라 포도원을 가꿀 일꾼이 교회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한 번 뿐인 인생을 놓고 보면, 이것은 무서운 심판이 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매일처럼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을 잘 가꿀 기회죠. 매일 “내가 오늘도 너를 믿으려 한다. 내 포도원을 잘 가꾸어 주렴”하고 하루를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오늘 기회는 오늘 아니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내일 해야지~! “오늘”도 내 것이 아닌데 “내일”은 더더욱 내 것이 아니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오늘, 여기서, 하나님이 여러분에 요구하십니다. “내 포도원을 잘 가꾸어라!” 그렇게 매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기회, 내 인생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가꿀 기회, 하나님을 닮을 기회, 나로 하여금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가꿀 기회, 그렇게 영광스럽고 멋져질 기회를 매일 은혜로 받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이 되면, 인생은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내어드릴 열매없이, 무성이 자란 잡풀만 가득하고, 온갖 병충해에 포도나무는 앙상하게 잎만 무성하게 자라 있다면, 그것은 수치요, 절망일 겁니다. 포도원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열매를 요구하실 때, 내어드릴 열매가 있는 성도의 거룩한 삶! 하나님의 포도원을 위해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리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물질, 건강, 재능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신실하십시오. 충성스런 일꾼으로 그 포도원을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 채워 드리는 거룩한 성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