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과 사랑을 누리는 삶으로 초대합니다_히브리서 10장 19-25절
토론토 영락교회 전대혁 목사
담임목사로서 첫 설교의 자리입니다. 늘 설교하던 자리지만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부담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더 큽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는 모든 사역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가장 두려운 동시에 가장 기대되는 사역입니다. 바라기는 매 주일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 앞에 저와 온 교회가 겸손하게 반응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와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매주 풍성하게 있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담임목사의 첫 설교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을 포함해서 한 달 정도 저는 2025년 표어와 관련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2025년 표어는 이미 익숙하게 아시듯이 “복음과 사랑을 누리는 교회”입니다. 2월 한 달 동안 저는 매주 설교를 통해 이 표어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 시작점으로 오늘은 복음과 사랑을 누리는 삶으로 먼저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한 해 담임목사로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목회를 감당할지에 대해서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자, 설교를 시작하며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 생활이 즐거우십니까? 다소 도전적인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질문을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처럼 주일 예배에 나오시면 행복하십니까?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 대부분은 그럴 거라고 믿고 계속 그렇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통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약 1년 전 자료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방금 질문을 갖고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응답자들 가운데, 교회에 오가기만 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14%, 그래도 자신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37%, 합쳐서 약 50% 정도의 출석 교인들 만이 교회 생활이 행복하다고 답을 했다는 겁니다.
물론, 한 가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이 시대 많은 사람이 심각하게 ‘행복’이란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행복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모습에서 우상 숭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신앙 생활, 교회 생활도 만약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라면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의무감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에는 놀라운 영적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의미의 행복한 삶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영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금 전에 소개한 통계처럼 이 시대 많은 교인이 행복감 없이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합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참된 의미의 행복을 누리며 신앙 생활, 또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히브리서 10장의 본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이 앞의 내용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앞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나오기까지 히브리서 7장부터 10장까지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7장부터 오늘 본문 바로 앞인 10장 18절까지 본문은 구약 시대에 드려진 제사에 대한 설명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내용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구약 시대에는 동물로 드려진 제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동물로 제사를 드려도 우리의 죄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는 매년 반복적으로 드려야 했다는 것이지요.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가 단 한 번에 영원히 씻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한 번에 드려진 영원한 제사가 되어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앞의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복음입니다.
자, 중요한 것은 7장 1절부터 10장 18절까지 설명된 바로 이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19절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말은, 바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한 번에 완성되어 영원히 적용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이제, 우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 이 감격적인 사실을 선포하고 나서 오늘 본문은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요약하면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먼저, 22절을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체적인 어떤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 즉 우리의 더러운 몸과 마음, 행동의 죄와 생각의 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겨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앞으로 반드시 이뤄질 것에 대한 일에 대한 믿음과 관계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구원이 완전히 아름답게 이뤄질 것에 대한 소망을 말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동시에 앞으로 완전하게 이뤄질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장차 앞으로 완전하게 이뤄질 구원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하고 감격적인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소망을 갖고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24절과 25절을 보면 본문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선포합니다.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는 말에서 “격려”는 그냥 칭찬하고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격려의 원어적인 의미는 ‘자극 혹은 도발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쿡쿡 찌르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란 말은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쿡쿡 찔러서 사랑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만들라는 것이 정확한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선행도 또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사랑과 선행은 인간들 서로서로가 나누는 사랑과 착한 일이 아닙니다. 더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께 대해’ 사랑과 선행을 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올바른 일을 하도록 교회 공동체 사람들을 서로 ‘쿡쿡 찌르라’ 곁에서 자극하거나 도발하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서로 쿡쿡 찌르기 위해, 우리는 함께 모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입니다. 특히,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라고 합니다. “그 날”은 예수님이 다시 오는 마지막 날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님이 다시 올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이 어둡고 죄가 가득하다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상이 어둡고 죄가 가득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의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두려움 없이 마음껏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앞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로 함께 모여,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죄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약한 우리가 함께 모이면 달라집니다. 함께 모여, 믿음, 소망, 사랑을 매주 회복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성한 삶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최소한 한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할 때에는 중요한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복음과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삶에 대해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냥 의무감이나 습관으로 교회에 나온다면 얼마나 시간 낭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벌받을 것이 두려워 억지로 교회에 나온다면 얼마나 숨막히는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복음과 사랑의 풍성함을 누리며 세상이 알 수 없는 행복 가운데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담임목회를 시작하며 저는 우리 토론토영락교회가 그와 같은 생생한 행복이 더욱 아름답게 흐르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주 우리가 예배로 모일 때마다 복음이 체험되는 교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온전한 삶을 살도록 서로를 돕고 격려하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하고 성숙한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모든 풍성한 경험이 우리가 모일 때마다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 체험을 더욱 강력하게 이끌 수 있을까요? 담임목사로서 제가 이번 한 해 동안 저 스스로 다짐하고 또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목회칼럼에 쓴 내용인데 이 시간 설명을 들으시고 한 해 동안 우리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의 방향으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한 해 동안 특별히 두 가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목양과 기도입니다. 새로운 담임목사에게는 당연히 모든 성도가 각자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할수록 바라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제가 담임목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새롭게 저 스스로 마음을 다잡은 목회의 기초가 있습니다. 그것이 목양과 기도였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의 기초에 목회자로서 제가 반드시 최우선순위에 둬야 할 모든 일의 출발점은 분명했습니다. 그게 바로 목양과 기도입니다.
제가 배우고 확신하는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명이 복음과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두 번째 사명이 목양입니다. 여기서 목양은 그냥 사랑과 격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제가 있습니다. 목사가 선포한 복음과 하나님 말씀대로 성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격려하고 돕는 것이 목양의 의미입니다. 이번 한 해 저는 가능한 이 일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가깝게 만나서 삶을 나누고 기도해 드리기 원합니다.
한 가지는 미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많은 인원이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제 마음과 달리 여러분 모두를 빠른 시간 안에 다 만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목양을 담당하는 우리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함께 지혜를 짜 내서 열심히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열심히 만나다 보면 여러분 모두 가깝게 만날 수 있겠지요. 좀 시간이 걸려도 여유를 갖고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언제든지 저에게 편하게 다가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양과 더불어 제가 스스로 결단하고 여러분께 특히 강조할 것이 기도입니다. 보통 목사가 기도를 강조하겠다고 하면 기도회가 새로 늘어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모임은 이미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공간과 모임을 활용해서 살아있는 기도를 체험적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담임목사로서 제가 먼저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 제목을 많이 주십시오. 제가 아침마다 저녁마다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품고 기도하겠습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체험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신 아버지를 보면서도 그랬고 아버지께서 은퇴하신 이후에 출석하고 사역한 모든 교회 담임목사님들에게서 항상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들의 뒷모습을 볼 때 참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무슨 뒷모습일까요? 기도하는 담임목사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괜히 제가 마음이 편했던 기억입니다.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저는 그 체험이 떠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다짐하게 된 것이 제가 앞모습도 많이 보여드려야겠지만,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여 드리는 일에도 게으르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기도하면 안 되겠지요. 여러분도 기도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이 모든 성도가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만들겠습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로 제가 당분간 Psalm으로 여는 하루의 삶이란 제목으로 시편 말씀을 갖고 새벽 예배를 인도하겠습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제가 새벽 예배를 인도하고 이어서 여러분의 기도 제목을 갖고 가능한 충분히 기도하겠습니다, 시편 전체를 묵상할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계획은 주중에 우리 본당 2층을 기도실로 오픈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음악과 영상을 틀어놓고 안전한 출입을 위해 환경을 준비하겠습니다. 마음껏 오셔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방법을 제안할까요? 교회에서 주중에도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운동하러 오실 수도 있지요. 그렇게 교회 오실 때 30분, 1시간 좀 더 일찍 오셔서 마음껏 기도하시면 어떨까요?
아침형이시고 출근이나 라이드할 일이 없으신 분들은 새벽에 나오셔서 저와 함께 기도하시면 됩니다. 새벽이 힘드시면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교회 오셔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찬양과 함께 기도하기 원하시면 금요 찬양 기도회에 나오시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오셔서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 안녕하세요, 하나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 정도만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도를 즐기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서 확신 있게 권면하는 것은 단 한 마디입니다. ‘그 약속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면 됩니다!’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십시오. 우리의 단단한 영혼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담임목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 해 동안 목양과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섬김과 기도로 서로를 격려, 서로를 쿡쿡 찔러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길 부탁드립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과 사랑을 누리는 삶으로 이미 초대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을 갖고, 그 풍성한 행복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