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시 127:1-2)
이기형목사(캘거리 하늘가족교회)
5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영리하고 똑똑한 꼬마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엄마에게 “엄마, 서점에 가요!”라고 졸라댔습니다. “응? 서점은 뭐하게?” 물었지만 이유는 말하지 않고 계속 졸라대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서점엘 갔지요.
아이는 어린이 코너에 가서 뭔가를 찾더니 ‘어린이 양육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책의 제목을 확인한 엄마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얘, 도대체 니가 그 책으로 뭘하려구?” 그러자 그 꼬마가 진지하게 대답했답니다. “응, 내가 올바로 양육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요!”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세상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가 아닌가요? 출산율은 떨어져도 육아 시장 규모와 사교육비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합니다. 키즈 산업이 60조를 넘어선다는데요. 골드 키즈 예로부터 불러왔던 금쪽이를 항한 아낌없는 지원은 가정을 넘어 지자체와 범국가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365일이 어린이 날이라지만, 한국은 엊그제 5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 이어서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 날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누가 정해 놓지 않았는데도, 이 시기가 되면 부모를 생각하고 자녀를 돌아보고 가정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가정의 달에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쓰고 힘써 세워가는 이 가정은 과연 어떻게 세워져야 할까요? 또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수고가 헛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시편 127편 말씀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1. 공든 탑이 무너지랴?
우리가 잘 아는 속담이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이 말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 쌓은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표현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이걸 사람에게 적용해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공들여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웁니다. “불면 꺼질까 쥐면 터질까” 하는 노심초사의 마음으로 키웁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우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 보면, 우리 자신이 그 결과 아닙니까? 우리도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은 인생입니까?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 하나 소개해 봅니다. 아들이란? 낳을땐 1촌, 대학가면 4촌, 군에서 제대하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이런 이야기에 웃을 수 만은 없는 현실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탑이 바벨탑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위용이 집대성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기술이 들어갔겠습니까? 그렇게 공들여 쌓았지만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 모든 공사가 중단되고 폐허로 남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성과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 불가피한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도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공든 탑도 무너집니다.
본문의 1절과 2절에서 “헛되다”는 말이 몇 번 나옵니까?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그렇게 공들였는데도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헛되다고 단정합니다.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없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여기 솔로몬이 헛되다고 설파하는 까닭은 헛되지 말라는 경고와,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을 제시하는 지혜입니다. 왜 헛될 수 밖에 없는지 솔로몬은 단순한 한 문장으로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께서 하지 아니하시면”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하지 않으시면 정말 헛될까요?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여기서 말하는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가정, 공동체, 삶의 터전, 나아가 우리의 인생 전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합니다.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말 많은 헌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럼 그렇게 노력하면 든든하게 세워질까요? 지금 그렇게 세워져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확신할지 모르겠습니다. 과정이 미래를 확증하진 못합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시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인가요? 재료나 크기나 그 과정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거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어쩌면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서도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을 수 있습니다. 짓는 과정에 무너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의 차이는 언제 생깁니까? 집을 완성하고 나서 그 집에서 살아갈 때입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폭풍이 몰아칠 때, 반석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지만(마 7:25) 모래위에 지은 집은 처참하게 무너져 휩쓸리고 말 것입니다(마 7:27). 차라리 짓는 과정에서 무너지면 다시 지을 수 있는데, 집이 완성되고 살다가 무너지면 생명의 위협도 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비유에서 반석위에 지은 집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은 가정을 의미합니다. 여기 시편의 말씀도 그 맥락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헛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헛수고입니다. 어디에 집을 지었는지 그 기초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집이 최고의 건축가의 손에서 최고의 자재를 가지고 지었다해도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면 반드시 헛된 겁니다. 이건 저주가 아닙니다. 언젠가 마지막에 헛되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혜입니다.
2)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잡으면 다음으로 그것을 지키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 안전은 성 그러니까 공동체로 확대됩니다. 오늘날 안전은 국가든 개인이든 최고의 이슈입니다. 약육강식의 밀림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니 스스로 안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동맹이든 혈맹이든 세상에 믿을 구석 없습니다.
사람들은 파수꾼을 세웁니다. 첨단 보안 장치를 설치하고 보디가드를 고용하여 안전을 보장받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안전할까요? 며칠 전 전세계 최고의 경호를 받는 미국의 대통령을 향한 세 번째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수라 다행입니다만, 이란은 전쟁의 불안 가운데 최고의 경호를 하였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최고 지도층 인사들이 한꺼번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열 사람이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받겠습니까? 은행 계좌인가? 금고 안 골드바, 주식이나 코인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런거 없어도 지금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큰소리 칠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 지금 안전한 까닭은 털릴만한 금은보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운이라 하든지 재수라 하든지 우연이라 하든지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만, 앞으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있습니다. 언제라도 바람 한번에도 날아갈 수 있는게 연약한 인생이고 우리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요행에 기대기 보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보호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든든한 방패,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시편 28:7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7)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지켜 주시면 절대 안전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설파하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심으로 평강과 안전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3) 여호와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2절 말씀을 보시는데요, 1절 말씀에는 조건절이 나와 있지만, 2절 말씀은 조건절을 생략하고 결과절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조건절을 생략한 이유는 이미 두 번이나 강조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전제가 있고, 2절의 세 번째 연은 결론처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은 헛되다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뭐가 헛되는 겁니까?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면서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그 일상이 무위도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와 ‘늦게’라는 부사가 알려주듯이 정말 성실하게 힘쓰고 고생하며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수고의 떡이라는 표현처럼 과도하게 일하면서 고생의 댓가로 얻은 양식입니다. 그건 헛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데, 그렇게 고생했으면 정말 좋은날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이렇게 허무한 까닭은 1절의 조건절과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세 번이나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헛되다는 말씀을 듣고 반감을 가지거나 분노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고작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실하게 공들여 살아온 인생을 허무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너무하시는거 아닌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복주시는건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을 찾지 않았다고 성실하게 수고한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건 횡포 아닌가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지 않는다고 재앙을 내리고 허무하게 쓸어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이 허무하게 된 근원을 창세기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도 그 열매를 다 거두지 못합니다. 결국은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무엇을 이루고 남겼든지 그건 다 먼지와도 같은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술입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지팔지꼰입니다. 지업자득, 자승자박인 셈이지요. 하나님은 에덴을 만들고 풍성하고 행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만, 인간은 유혹을 받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 그 복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겁니다.
그 인생을 하나님은 저버리지 않으시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참된 평강과 안식을 주십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인간은 허무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다가 침몰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복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을 맥락없이 읽으면, 지금 예배 시간에 주무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이라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전 5:12) 노동자와 부자를 비교합니다. 노동자는 단잠을 자지만, 부자는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노동자가 가진게 많든 적든 달게 잘 수 있는 것은 가진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댓가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진 것을 의지하는 부자는 그렇게 많은 부요를 가졌어도 그 부요가 안식과 평안을 주지 못하기에 잠못 이루고 뒤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고작 잠인가? 싶을지 모르겠는데요. 잠못 이루는 사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피로 회복제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염려가 많은 세상에서도 다리 뻗고 누워 잘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4. 결론 –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수고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 자체는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인정받는 진실일 수 있지만, 오늘 지혜자 솔로몬은 헛되다고 가르쳐 줍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수고하고 애쓴다해도 필연적으로 헛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져 줍니다.
헛되다는 경고는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지혜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여 공을 들여도 공든 탑도 무너진다는데, 공든 탑도 무너진다는 가르침은 무너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 주시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시며, 여호와와 함께 할 때 단잠 잘 수 있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을 세워 가시는데 얼마나 수고가 많으신지요. 지금의 수고와 헌신은 너무나 귀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노력이나 가진 소유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가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정이 될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가정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과 가정이 하나님 안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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