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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세 가지 감사(하박국 3:16-18)_고영민 목사(토론토 본한인교회)

세 가지 감사 (하박국 3:16-18)

고영민 목사(토론토 본한인교회)

우리는 평소에 많은 감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감사를 구분해 보면 크게 세 가지 감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감사 if(한다면) 감사, 조건적 감사입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 때에 야곱이 하나님께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저를 보호해 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책임져 주시면, 제가 십일조도 하고,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리겠습니다. 전형적인 조건적 감사입니다. 의외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런 감사를 합니다. 제가 건강해지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재정 상태가 좋아지면, 헌신하겠습니다. 

이러면서 지금 감사하지 않고, 감사를 미래로 연기합니다. 이런 태도는 감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전체적인 태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학문중의 하나가 행복 경제학(Happiness Economics) 경제와 행복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행복 경제학의 결론은 행복과 돈은 상관 관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이 지나면 행복과 수입 증가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50년간 선진국에서 소득의 증가는 토끼처럼 뛰었지만, 행복의 증가는 거북이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수준이 되면 어떤 조건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행복을 유보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그 때에 가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요 상담가인 데일 카네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두 명의 강도가 있는데, 그 한 명은 어제로부터 오고, 다른 한 명은 내일로부터 온다.’ ‘어제에 대한 후회, 내일에 대한 염려, 바로 이 두 가지가 오늘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가장 무서운 강도다.’ 여러분, 지나간 과거에게 여러분의 행복을 빼앗기지 마세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게 행복을 빼앗기지 마세요. 행복을 미래로 연기하지 마시고 지금 행복하세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감사하세요. 현명한 사람은 오늘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내일 감사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무덤 앞에 가서 “더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을!”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감사, because(때문에) 감사, 결과적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2단계 감사를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합니다. 병이 치료되어서 감사합니다.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어서 감사합니다.” 당연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당연한 감사도 잘 안하고 삽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나병환자 10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 마을에 들어오시자, 멀리서부터 달려 와서 간절하게 외칩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을 10명의 문등병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명이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자신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감사드렸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는데, 아홉 명은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한 명만 찾아와서 감사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7) 무슨 말씀입니까? 열에 아홉은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0%는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에는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간구는 잘 하지만 감사는 잘 안 합니다. 

1860년 9월, 미국 미사간 호에서 유람선 전복사고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대형사고였습니다. 그 때에 당시의 수영선수였던 스펜서라는 사람이 17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 일은 당시에 신문에 아주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훗날 토레이 박사가 이 지역에 와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니다. 설교를 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스펜서가 와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나서, 토레이 목사는 스펜서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토레이 박사가 스펜서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17중에서 몇 사람이나 나중에 당신에게 감사했나요?” 그러자 스펜서가 대답합니다. “딱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린 소녀 한명. 이 소녀는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크리스마스가 되면, 저에게 감사 카드와 선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17명 중에서 딱 한 사람만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물에서 건져 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으로 이것 달라, 저것 달라 간구만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감사하세요. 그리고 감사를 자꾸 표현하세요. 말로 표현하세요. 글로 표현하세요. 몸으로 표현하세요. 물질을 드려서 표현하세요. 감사를 표현하면 할수록 자꾸 마음속에서 생겨납니다. 마치 우물에서 물을 자꾸 퍼내면, 물이 자꾸 자꾸 더 생기지만, 물을 퍼내지 않으면 나중에 말라 버리듯이, 마찬가지로 감사를 표현하면 할수록 감사가 점점 내 삶 속에 넘치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는 나는 항상 감사를 선물을 받은 후에 나오는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깨달았습니다. 감사는 훈련을 통해서 살아야 하는 태도라는 것을.” 

In the past I always thought of gratitude as a spontaneous response to the awareness of gifts received, but now I realize that gratitude can also be lived as a discipline.”

― Henri J.M. Nouwen –

그렇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감정이 아닙니다. 감사는 삶의 태도입니다. 불평은 훈련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감사는 자꾸 훈련해야 합니다. 감사를 훈련해서 감사의 태도로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감사,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무조건적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가 드리는 감사가 바로 세번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레미야 동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할 비극적인 운명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 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나라에 큰 환란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온 몸으로 반응합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17절부터는 전혀 다른 고백을 합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참 신기하죠! 순식간에 이렇게 바뀌는 것이. 뼈가 떨리는 고통의 소리가 찬양 소리로 바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하박국 선지자는 장차 당할 고통이 마땅히 당할 고통이라면 당해야 한다고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 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워 질 것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큰 섭리를 받아 들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을 드립니다. 더 근본적으로 고통 속에서 하박국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만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하나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나는 이것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내 힘이 다 빼앗긴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의 힘이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십니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시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십니다. 비록 고통의 진흙탕 속에 빠져 있어도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달려가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높은 곳에 우뚝 서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있는 나의 미래는 결국 희망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초월한 감사, 환경을 초월한 찬양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두 아들이 살해당하는 큰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 때에 손양원 목사님께서 가슴 아픈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9가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드립니다. 

4. 또한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하는 것도 큰복이라 하거든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 이리요.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신애를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는 올 한 해 코로나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코로나 때문에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online)이라는 새로운 목회와 선교의 도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를 ‘코로나 덕분에’로 바꾸면서 감사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 가지 감사 중에서 어떤 감사를 드리고 계십니다. If 감사, because 감사, in spite of 감사, 어떤 감사를 드리고 계십니까? 어떤 감사도 좋습니다. 더 많은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일, 나쁜 일, 기쁜 일, 힘든 일, 모든 일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합력해서 선을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넘치는 추수 감사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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