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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들목칼럼] “The Prodigal, 사랑을 허비하다.” (탕부 다윗, 탕부 하나님)

“The Prodigal, 사랑을 허비하다.” (탕부 다윗, 탕부 하나님)

시선의 차이
아들 압살롬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었지만, 아버지 다윗은 그 아들에게 사랑을 허비합니다. 서로 칼 끝을 겨누고 있는 그 장소가 아버지 다윗에게는 가장 큰 슬픔의 자리였지만, 아들 압살롬에게는 가장 짙은 욕망의 자리였을 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좌에만 시선이 가 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안전에만 시선이 가 있습니다.

압살롬을 부탁해!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18:5).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압살롬과의 전쟁터에 나서는 지휘관들에게 한 말입니다. 압살롬을 수행하여 소풍 나가는 길이 아닙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 전쟁터로 나가는 군사들에게 “압살롬을 부탁해.” 이 말이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니들은 죽어도 되지만, 내 아들만큼은 절대로 건들면 안된다.” 야속하게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은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일 수도 없습니다.

“원래 착한 앤데, 얘가 아직 철이 안들어서 그래요.”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는 다윗의 부탁에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들 특유의 핑계가 담겨 있습니다. “얘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바탕 심성은 너무 좋은 앤데, 아직 철이 안들어 잠깐 실수 한 것 뿐” 이라는 자식을 위한 핑계입니다. 압살롬이 정말 원래는 착한 앤데, 아직 철이 안들어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복수심에 불타 형 암몬을 죽였고, 자기 뜻대로 안풀리니 열받아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욕보였고, 급기야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눈 전쟁터에 선봉장으로 나서 있는 이가 압살롬입니다. 철이 안들어 실수한게 아니라, 그냥 아주 나쁜놈입니다. ‘압살할 놈’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나쁜 놈을 위해서도 핑계를 대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의 우선순위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전령 둘 모두에게 다윗은 오직 한 가지만 묻습니다. “압살롬은 잘 있느냐?”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기 왕국을 회복하는 일은 왕 다윗에겐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아들의 안전 문제 앞에선 아버지 다윗에겐 그저 하찮은 일일 뿐입니다.

태생적으로 다른 언어
압살롬의 죽음을 알게 된 다윗은 절규하며 울부짖습니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다윗의 절규에는 자기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자책이 담겨 있었습니다.
“네 누이 다말이 욕보였을 때, 이 아비가 조금만 공정하게 그 일을 처리했었다면…”, “네가 3년 만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조금만 더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더라면…” 네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깊은 슬픔과 회한 속에 아버지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한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항상 자기 탓을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내가 다 잘 못 키워서 그런거라고, 내가 충분히 아이의 미래를 받쳐주지 못해서라고, 그렇게 부모는 항상 자기 탓을 합니다. 그런데 자식은 잘못되면 항상 부모 탓을 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키웠냐고, 그 때 엄마 왜 날 안말렸냐고, 그 때 아버지가 반대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라고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언어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다릅니다.

“너 대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다윗은 아들이 되살아 올수만 있다면 그를 대신하여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인간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 대신 죽으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영원히 살리셨습니다. 아, 나의 하나님은 사랑을 허비하시는 탕부 하나님(Prodigal God)이십니다.

아빠 가시고기, 탕부 하나님
암컷 가시고기는 알을 낳으면 그냥 사라진다 합니다. 홀로 남은 가시고기 아빠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물 속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기 새끼들을 지켜냅니다. 시간이 지나 부화한 새끼들이 어느정도 자라고 나면 아빠 가시고기는 돌연 돌틈에 자신의 머리를 쳐박고 죽습니다. 왜 일까요? 아직 스스로 먹이를 찾기 어려운 자기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을 식량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시고기는 아비의 헌신과 희생뿐 아니라 아비의 살을 파먹고 생존하게 됩니다.
가시 돋힌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아빠 가시고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어 섬김과 헌신의 삶을 사신 하나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시고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 영생의 식량으로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을 허비하신 탕부 하나님이십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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