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교계뉴스캐나다김기석 목사의 캐나다 방문과 VIEW 강좌를 마치며_최종원 교수 

김기석 목사의 캐나다 방문과 VIEW 강좌를 마치며_최종원 교수 

김기석 목사의 캐나다 방문과 VIEW 강좌를 마치며 

캐나다에서, 때로 한국에 가서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사실은 제가 청파교회 온라인 교인이예요.”라는 커밍아웃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크고 작은 모든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을 때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교회가 청파감리교회였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허투루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정갈한 예배의식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 중심에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성서학당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팬데믹 시기와 묘하게 겹쳐 출발한 CBS의 ‘잘잘법’과 청파교회 온라인 예배는 김기석 목사님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산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복음 선포라는 명목으로 텅 빈 언어들이 난무하던 한국 교회 강단에 김 목사님의 설교는 충격이었다. 특히, 경계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에게, 교리라는 이름으로 옥죄어 온 죄의식 속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혐오와 배제의 아이콘이 된 한국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그의 설교와 강연은 숨을 틔워주는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김기석 목사님의 영향력은 그 수준을 넘는다. 사람들은 김기석이라는 한 목회자의 설교와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경험을 넘어서, 그의 언어를 매개로 그와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을 그의 언어에 동기화했다. 그의 말과 글은 성서의 언어와 예수의 지향이 평화와 포용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 세상에 순간을 살아가는 나그네라는 겸허한 본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렇게 김기석이라는 한 인간을 접한 사람들이 맺은 그와의 인연과 사연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저 방송 매체에서 접했던 유명한 목회자를 아는 수준이 아니라, 그의 메시지와 정서를 통해 희망을 갈구하고, 그대로 살아내려는 몸부림으로 연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아마도 그게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수많은 온라인 교인이 청파교회에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주와 그 지난 주 예배 설교에서 연달아 두 개의 폭탄을 던졌다. 하나는 건강 상의 이유로 담임 목회직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청파교회에서 2개의 형제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선포였다. 대략 전해 들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은퇴 선언에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 폭탄을 던진 후 바로 밴쿠버로 날아오셨고, 김목사님 내외와 우리 부부는 함께 록키 여행을 하고, VIEW에서 한 주간 집중 강의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부터 고대했던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된 뜻깊은 순간이다. 3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의 만남을 통해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이 여일한 분임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함, 정중함, 겸손함은 몸짓과 언어로 드러났다. 밴쿠버와 록키 산골짝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김 목사님을 통해 경험한 아주 구체적이고, 진실하고, 행복한 인연을 보고 듣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다. 과연 지금 어느 한국 교회 목회자가 얼굴 단 한번 본적 없는 이국 땅의 한인들과 이런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을까? 

감히 얘기하건데, ‘김기석’은 한국 교회의 맥락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곁에서 매일 반복되는 이런 인연을 목격하면서, 김기석 현상이 실체가 있음을 보았다. 한국 교회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있다면, 김기석이라는 인물을 그저 유명한 한 목회자로 보는데 그치기보다, 그의 존재와 메시지가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 ‘김기석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이 김기석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지 궁금증이 깊어간다.  

그의 은퇴 선언은 아쉽지만, 어쩌면 이제 그는 한 교회를 떠나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선언했던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길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

(최종원,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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