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커밍(Homecoming)의 길, 사람이 사람에게 Home이 되어 가는 여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홈커밍 (Homecoming)을 집으로 돌아오는 것(귀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감자와 출소자들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HFM(홀리 플레임 교도소 선교)이 말하고자 하는 ‘홈커밍(Homecoming)’은 단순히 교도소를 나와 사회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잃어버린 존엄을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맺으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홈커밍’은 또한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홈(Home)’은 한 사람 안에서 경험되기도 한다. 판단보다 환대를, 거리감보다 함께함을, 절망보다 희망을 건네며 조용히 곁을 걸어 주는 사람 안에서. 삶으로 “당신은 여전히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주는 사람 안에서.
진정한 홈커밍은 사람이 사람에게 ‘홈(Home)’이 되어 줄 때 시작된다. 그것은 두려움 대신 안전을, 고립 대신 소속감을, 포기 대신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게 하는 공동체를 함께 세워 가는 여정이다.
‘홈커밍(Homecoming Workshop)’ 워크숍을 마치고
‘홈커밍’은 흔히 출소자의 사회 복귀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그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이다. ‘홈커밍’은 돌아오는 사람의 여정인 동시에, 그를 맞이하는 공동체의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수감 경험자들에게 ‘홈’은 이미 사라졌거나 처음부터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이다. 그렇기에 사회로의 복귀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회와 이웃, 자원봉사자와 지역사회가 환대와 소속감을 준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비전 가운데 지난주 열린 홈커밍 워크숍은 교도소 안팎의 사역을 소개하고, 가석방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 테이블(The Table)에 둘러앉아 삶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그 테이블에서는 강의보다 대화가 많았고, 조언보다 경청이 깊었다. 사람들은 답을 주기보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 만남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대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맞이하며 함께 걸어가는 사람인가? “ 무엇보다 한 자원봉사자가 던진 질문은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의 기도가 되었다. “다시 살아갈 힘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살아가고 싶은 깊은 배고픔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회복은 누군가를 고치는 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곁에 머무는 사람, 먼저 듣는 사람, 함께 걷는 사람이 있을 때 변화는 삶 속에서 자라난다. 어쩌면 ‘홈커밍’은 교도소 문을 나서는 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Home’이 되어 주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홀리 플레임 교도소 선교 단체 (HFM)는 앞으로도 교도소 안과 밖을 잇는 다리가 되고자 한다. 사회로의 복귀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동체가 함께 준비될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이 가능해진다. HFM은 수감자들을 단지 돌아갈 곳으로 이끄는 사역을 꿈꾸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Home’이 되어 주는 관계를 세워 가는 공동체를 꿈꾼다. 교도소 안에서는 수감자들을 만나고, 지역사회에서는 가석방자와 가족들의 회복을 위해 함께 동행하는 공동체. 이 길이 우리가 말하는 ‘홈커밍’ (Homecoming)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홈커밍’ 여정에 함께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눅 15:24)
정선희 선교사 (Holy Flame Ministries)
가석방자 간증(펠론)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22년 동안 교도소에서 지냈습니다. 제가 생활했던 독방은 일반 가정의 욕실만 한 크기였고, 그 안에는 변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담처럼 “저는 22년 동안 욕실에서 살았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저에게 홈커밍(Homecoming)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22년 형기를 모두 마치고 교도소 문을 나섰던 그날, 세상은 너무나 넓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많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홈커밍은 단순히 교도소를 나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동체가 있었으며, 믿을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든든한 연결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도 저를 믿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출소한 뒤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도소 안 예배당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진 만남과 봉사자 감사 행사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관계가 쌓여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뮤니티 공동체와의 연결은 점점 깊어졌고, 마침내 그분들을 직접 만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자유를 얻기 위해 정말 오랫동안,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유를 얻고 나니 또 다른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까?’ 이런 걱정은 처음으로 스카이트레인을 타는 일이나 새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은 컸지만, 다시 살아가겠다는 제 마음은 그보다 더 컸습니다. 그리고 저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J(홀리 플레임)에게 전화만 하면 되었습니다. J는 언제나 전화를 받아 주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그것이 제 홈커밍의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공동체는 제가 여러분을 직접 만나기도 훨씬 전부터 저를 돕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이미 많은 축복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 모두를 직접 만나며 그 사랑과 축복을 계속해서 누리는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어둡고 긴 시간을 지나온 저에게, 다시 돌아갈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모릅니다. 판단하지 않는 공동체. 아낌없이 나누는 공동체. 친절과 사랑으로 함께해 주는 공동체. 저를 기꺼이 환영하고 가족처럼 받아들여 준 홈커밍(Homecoming). 그 홈커밍은 지금도 매일 제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놀라운 자원봉사자들과 지금도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은 제 삶과 제 가족, 그리고 제 미래에 귀한 투자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제 인생이라는 기차에 함께 올라타 주셔서, 그리고 제 홈커밍을 이렇게 아름다운 경험으로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홈커밍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홈커밍은 우리 모두입니다. 그리고 홈커밍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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