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맡기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국내 영화 평론가 중 압도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갖고 계신 분이고, 나이가 68편생으로 영화평론가 중 비교적 젊은 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분이 자신의 책 <밤은 책이다>에서 자신의 인생관이자 좌우명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이 말은 앞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라는 말을 보아서는 분명 막살겠다는 뜻은 아닐텐데, 무슨 뜻일까요? 아무래도 그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인생 전체를 우리가 플래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도 많고, 우리를 좌절시키는 일 투성이인 인생에서 어떻게하면 그나마 실패 확률을 줄일 것인가? 그것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밖에 없다는 거죠. 」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팬테믹 기간 동안 철저히 배운게 있다면 “세상은 우리가 예측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닙니까? 우리 인생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이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인생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는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하는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흘러가는대로)” 놔두겠다고 한 것입니다.
참 지혜로운 인생관입니다. 그러나, 그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과 세상은 우리가 예측한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냥 되는대로 의미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의 경영 아래서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잠언 16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모든 인생의 주관자는 사람도 아니고,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아니고,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아가되, 인생전체는 ‘되든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만 합니다. 맡기는 인생,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인생입니다.
전도서 9장 11절은 세 부류의 탁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빠른 경주자들”입니다. 그들이 1등으로 골라인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을까요?
둘째, “용사들”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용사가 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하겠습니까?
셋째, “지혜자들과 명철한 자들과 지식인들”입니다. 그들 역시 얼마나 수많은 밤을 코피 쏟아가며 잠도 못자고 공부를 했겠습니까?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잘 준비시킨 능력자들이란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루하루를 결코 허투루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들의 삶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전도서 9장 11-12절)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가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인생이란 변화무쌍한 물살은 우리가 예측하고, 대비하고, 준비한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온 인생이라 해도 느닷없이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듯, 마치 새가 덫에 걸리듯 지금껏 그토록 고생한 모든 시간과 과정을 한번에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재난과 불행의 쓰나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닥칠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의 허약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히, 그러나 인생전체는 주권자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