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이야기] 잠언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14)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잠언의 교훈과 비슷한 내용이 애굽의 <아메네모페 교훈서>에도 나온다. 예컨대 잠언 15:25의 “여호와는…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라는 가르침은 <아메네모페 교훈서> 6장의 “과부의 지계를 옮기지 말라.”와 유사성이 있다.
그럼 이 두 본문 사이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이 두 본문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학자들마다 그 주장들이 모두 다르고 명확하게 규명하기도 어렵지만, 필자는 이 두 본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땅의 경계표는 모두 그 역사적 근원이 요셉의 애굽 토지법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가설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요셉이 흉년기에 애굽 토지법을 세울 때, 제사장의 토지를 제외하고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의 소유로 만들고(창 47:20, 22) 애굽의 각 가족에게 토지 사용권을 평등하게 분배하면서 당연히 각 가족별로 땅의 경계표를 세웠을 것이다. 애굽에 땅의 경계표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아메네모페 교훈서>에 의해 증명된다.
② 요셉이 세운 애굽 토지법은 애굽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구약 오경을 기록한 모세 당대까지도 수백 년 동안 면면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창 47: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모세는 애굽에서 땅의 경계표를 보았을 것이고 그것이 상징하는 본질적 의미가 바로 토지의 평등한 사용권 곧 토지평등권이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모세가 땅의 경계표를 한 번도 직접 본 일이 없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말할 리는 없다. 그럼 모세가 어디에서 땅의 경계표를 보았을까? 바로 애굽에서 보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곧 땅의 경계표와 그 의미가 요셉으로부터 모세에게로 이어졌을 것이다.
③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출애굽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땅을 지파별, 가족별로 평등하게 분배하고(민 26:53-54; 33:54),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명하였는데(신 19:14; 27:17), 이때 그는 애굽에서 본 땅의 경계표를 참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경계표는 모세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알았을 것이다. 만약 몰랐다면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명할 때 땅의 경계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을 텐데, 신명기의 해당 두 본문에서는 모두 땅의 경계표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어 있다. 이것은 모세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땅의 경계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광야 40년 방랑 후에 살아남아 모압 평지에서 신명기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나이 50-60세 정도의 중년노년층들은 십대의 나이였을 때 애굽에서 땅의 경계표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가르침이 모세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④ 모세가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하고 명한 지 수백 년이 흐른 후에 솔로몬은 잠언에서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교훈한다. 곧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하는 가르침이 모세로부터 여러 대에 걸쳐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 솔로몬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울 때 토지평등권을 상징한 땅의 경계표는 긴 시간이 흘러 아메네모페가 살던 시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아메네모페 교훈서>에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기게 되었을 것이다. 곧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하는 가르침이 요셉으로부터 애굽 사람들을 거쳐 아메네모페에게로 이어졌을 것이다.
요컨대 요셉의 애굽 토지법에 의해 각 가족의 토지평등권을 상징하는 땅의 경계표가 애굽에 세워졌고, 이 땅의 경계표는 그 후 이스라엘과 애굽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먼저 이스라엘에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쳐 솔로몬에게로 전수되었을 것이다(요셉→모세→이스라엘 사람들→솔로몬). 다음으로 애굽에서는 긴 세월 동안 애굽 사람들을 통해 아메네모페에게로 전수되었을 것이다(요셉→애굽 사람들→아메네모페).
그럼 이 가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첫째, 이스라엘은 오늘날 교회이므로, 한국 교회는 땅의 경계표 관련 가르침에 담긴 토지평등권 정신을 자발적으로 실천해서 희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애굽은 오늘날 세속 사회이므로, 한국 사회는 땅의 경계표 관련 가르침에 담긴 토지평등권 정신을 제도적으로 실현해서 희년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 셋째, 요셉이 오늘날 세속 사회(애굽)에서 먼저 토지평등권을 실현했고 그것이 나중에 교회(이스라엘)에 선한 영향을 미친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세상이 먼저 토지평등권을 실현하고 그것이 나중에 교회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희년 정신을 먼저 교회가 실천하고 그 선한 영향으로 그 다음에 세상이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교회→세상). 그러나 역사적 순서가 꼭 그렇게만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교회가 깨어있지 못하고 오히려 탐욕에 물들어 있는 반면 세상은 희년 개혁을 간절히 염원한다면, 세상이 먼저 희년 개혁을 이루어내고 그 다음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아 희년 개혁을 수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세상→교회). 그러나 이런 경로는 한국 교회에게 심히 부끄러운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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