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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이방인의 땅에서 베풀어진 잔치

이방인의 땅에서 베풀어진 잔치

제자들의 두 번째 짧은 배 여행(막 6:45-8:10)은 갈릴리 바다에서 시작되어서 갈릴리 바다 북서쪽 게네사렛 지역을 거쳐 두로와 시돈 그리고 10개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는 데가볼리 지역 중앙을 관통하여서 갈리리 바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여행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제자들 중에 몇몇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사건으로 시작된 정결과 부정에 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결과 부정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막 7:14-23) 나신 후에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기록하고 있는 특이한 점은 예수님께서 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시는 사건과(막 7:24-30) 마가가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듣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남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는 사건(막 7:31-37) 가운데에서 제자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주변에서 바라보는 관찰자 시점(observer perspective)을 통하여 제자들을 뒤로 배치하고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역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자들 또한 영적으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가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에 다시 등장시켜 그들의 영적 무지함을 보여 줍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 지역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세었을 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막 6:30-44) 경험하였지만 그들은 이 기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이방인 땅에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막 8:1) 그 무렵에 다시 많은 무리가 있었고, [그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예수)가 제자들을 소환하여서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2) “나는 저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미 삼일 동안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먹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만일 내가 그들을 굶주린 채로 그들의 집으로 보낸다면, 그들은 길에서 쓰러짐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먼 곳에서 왔다.” (4)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그(예수)에게 대답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에서 이 사람들을 빵으로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까?” (5)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몇 개의 빵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일곱[개가 있습니다.]” (6) 그리고 그(예수)가 무리에게 명령하여서 땅에 비스듬히 앉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빵 일곱개를 취하여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빵을] 떼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주었고, 그들이 [빵을]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7) 그리고 그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예수)가 그것들을 축복하신 후에 이것들도 또한 [무리] 앞에 갖다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 그리고 그들이 먹고 배부르게 되었고, 남은 조각들이 일곱 광주리였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은 대략 사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사복음서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마가(막 8:1-9)와 마태(마 15:32-29)만 기록하고 있고, 누가와 요한은 이 사건을 배제하고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9:10b-17; 요 6:1-15). 그 이유는 각각의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성향(theological tendency)과 공동체의 상황을 반영해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다른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와 마태와 다르게 누가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직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음으로 인하여 학자들은 이 사건이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Robert M. Fowler, Loaves and Fishes, Chico: Scholars Press, 1981, 89-90).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저자들의 신학적 성향과 공동체의 상황이 반영되지 못한 의견입니다.

누가는 마가복음 6:45-8:26절까의 내용을 생략하면서 자신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중복(doublet)을 피하는 편집자적 성향을 가지고 선택적 구조를 통한 자신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Raymond 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New York: Doubleday, 1997, 242).

또한 사도 요한도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배경을 유월절 시기로 명시하여서(요 6:4) 자신의 신학적 상징성을 부각시킵니다. 특별히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의 실제 독자가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회당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점을 반영해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는 주제와 연결시킵니다(요 6:32-40). 이처럼 각각의 복음서 저자들은 동일한 전승 자료를 다르게 수용하거나 생략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성향과 독자층의 필요에 맞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남자를 고쳐 주신 사건과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상호본문적 연결(intertextual connection)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실현된 새 창조(new creation)의 모습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의 시작에서 마가는 ‘그 무렵에’(막 8: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이방인 땅에서 행하신 시간적, 지리적 배경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시대에 임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신학적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마가복음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마가복음 1:9절에서 ‘그 무렵에’로 시작되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은 단순히 세례 요한이 죄 용서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막 1:4)하는 시점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통하여 메시아의 비밀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선포되는 장면입니다(막 1:11). 또한 마가복음 8:1절과 더불어 마가복음 13:17절과 24절에서도 종말론적 사건이 나타나는 시점으로 사용이 됩니다.

또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로 무리를 먹이신 사건이 유대인 지역에서 행해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시’(palin: again)라는 부사를 사용합니다(마 8:1). 이렇게 예수님께서 종말론적인 시간에 동일한 사건을 두 번 행하신 것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아도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은 두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출 14:5-31)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배고파 원망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출 16:3) 아침에는 만나를 제공해 주셨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제공해 주셨습니다(출 16:13-15).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음식으로 인하여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십니다(민 11:4-35). 이러한 반복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두 가지 급식(給食) 기적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열왕기상 17:8-16절에 기록되어 있는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은 가뭄과 기근 속에서도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4:42-44절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사람이 햇곡식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자루에 담긴 채소를 가져왔을 때 엘리사가 자신의 종에게 주어서 백명이 먹게 한 사건도 예수님께서 유대인 땅과 이방인 땅에서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배경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빵과 물고기로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두 번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엘리사와 같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제자들이 무리의 배고픔을 먼저 걱정한 것과(막 6:35-36) 다르게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무리를 불쌍히 여겨서 삼일 동안 굶주린 무리를 걱정하십니다(막 8:2-4). 또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는 무리가 목자가 없는 양들과 같아서 불쌍히 여기신 것과(막 6:34) 다르게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는 예수님께서 무리의 배고픔을 직접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막 8:2).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영적인 상황과 육체적인 상황을 불쌍히 여기셨을 때 기적이 나타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무리가 배고픈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들 중 일부는 먼 곳에서 온 자들도 있었기에 길에서 쓰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막 8:3).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지금 마을에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eremos: desert)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황무한 땅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게 하신 기적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를 깨닫고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마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막 6:52; 7:17-18).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질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제자들의 잘못된 이해로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요청하여 빵 일곱 개를 취하여서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제자들에게 주어서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고, 물고기도 몇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셔서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과 삼일 동안 함께 했던 무리들은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막 8:8).

우리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생각해 본 것처럼, 마가는 일곱 ‘광주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마가복음 6:43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구니’라는 헬라어 명사 ‘코피노스’(kopinos: basket)를 사용하지 않고, 보다 큰 광주리를 의미하는 ‘스푸리스’(spyris: hamper)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그 남은 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스푸리스’는 다메섹에서 사울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였을 때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다메섹의 성 밖으로 사울을 피신 시킬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행 9:25).

결과적으로 마가는 예수님의 기적 이후에 남은 음식을 담은 그릇의 명칭도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광주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유대인 지역 뿐만 아니라 이방인 땅에서 선포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사복음서 가운데에서 마가와 마태와 다르게 누가와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마가복음 8:1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 무렵에’라는 표현은 단지 시간적, 지리적 배경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성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가가 ‘그 무렵에’라는 표현을 통해 강조하는 신학적 성향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과 엘리야와 엘리사가 베푼 급식 기적을 설명해 보십시오.
  1.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은 기적과 비교해서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 먹은 기적의 차이점을 찾아보세요.
  1.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게 하신 사건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로 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1.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통해 마가가 사용하는 ‘코피노스’와 ‘스푸리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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