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복되도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와 그 주변 사역과(막 1:16-8:26), 벳세다에서 출발하여서 여리고까지의 길 위에서의 참된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막 8:27-10:52)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미 마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최종 목적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였고(막 10:32), 11장에서 여행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심으로(막 1:16-20) 시작된 갈릴리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드러내셨고, 길 위에서의 세 번의 수난 예고(Passion Prediction)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의미는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성취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0장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행하신 3년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면, 11장 이후에 기록된 내용은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인 칠일 동안 일어난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막 14:1)이라는 시간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종려 주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일과(막 11:1-11),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깨끗이 하신 일(막 11:12-19), 화요일에 성전 파괴와 인자의 재림에 관한 긴 담론을 말씀하신 일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3장). 마가복음 14-16:8절까지의 말씀은 수요일에서 부활 주일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14-15장)과 부활의 사건(막 16:1-8)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가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1-11절은 마가복음 전체 구조에서 수난 이야기(Passion Narrative)의 시작점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벳바게(Bethphage)와 베다니(Bethany)를 거쳐 올리브 산 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막 11:1)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 쪽 올리브 산 근처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그(예수)가 그의 제자들 중 두 명을 보내십니다. (2)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즉시 그곳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아직 앉아본 적이 없는 매여 있는 어린 나귀를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풀어라 그리고 데리고 와라 (3) 그리고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것을 하느냐?”라고 말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리고 즉시 그것을 다시 여기로 보낼 것입니다”라고 말하라. (4) 그리고 그들이 가서 길가 쪽 문 밖에 매여 있는 어린 나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5) 그리고 거기에 서 있던 몇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어린 나귀를 풀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6) 그리고 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들에게(제자들 중 두명에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7) 그러자 그들이 어린 나귀를 예수께 끌고 와서, 자신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니, 그(예수)가 그 위에 앉으셨습니다. (8)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옷들을 길 위에 펼쳤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들판에서 자란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꺾어[길 위에 펼쳤습니다.] (9)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호산나, 복되도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복되도다. 우리의 조상 다윗의 나라를 가져오는 이여!
호산나, 가장 높은 곳에서”
(11)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과 성전에 들어가셨고, 모든 것들을 둘러보신 후에, 시간이 이미 저녁이 되었으므로 열둘과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바디매오를 치료하신 후 벳바게와 베다니를 거쳐 ‘올리브 산’(Mount of Olives) 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단순한 여행의 경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메시아적 사명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스가랴 14:1-9절에 등장하는 ‘올리브 산’은 메시아의 도래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심판의 날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올리브 산’은 유대교 종말론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와 종말론적 심판의 날에 관한 예언을 하면서, 여호와께서 ‘올리브 산’에 서실 때 ‘올리브 산’이 갈라지는 모습을 예언합니다(슥 14:4).
(슥 14:4)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실 것이고, 올리브 산은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옮겨지고, 다른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질 것이다. (바른 성경)
이 예언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올리브 산에 서실 때에 그 산이 갈라져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 탈출의 통로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이 지각 변동은 동쪽으로 골짜기를 열고, 기드론 골짜기(Kidron valley)를 막아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평탄한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 쪽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아들로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기대를 실현할 분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 중 두 명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어 아직 아무도 앉아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풀어서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1:2). 그리고 만일 누군가 이러한 두 명의 제자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리고 즉시 그것을 다시 여기로 보낼 것입니다”(막 11:3)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어린 나귀’(polos: foal)의 등장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군중들과 독자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올리브 산’의 이미지가 스가랴 14:4-5절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듯이, 어린 나귀의 등장도 스가랴서 9:9절의 예언의 성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 ‘나귀’는 왕이나 귀족들을 위한 왕실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즉위식에서 다윗은 자신의 노새를 솔로몬에게 주어서 타게 합니다(왕상 1:33, 38).
예수님께서는 로마의 개선식과 같은 군사적 위엄을 갖춘 행렬이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탄 것은 세상의 권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왕이 아닌, 평화와 섬김을 가져오는 메시아의 성품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행위였습니다. 스가랴 9:9절에는 메시아가 오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여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여라. 예루살렘의 딸아, 크게 외쳐라. 보아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시니,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며, 그분은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실 것이니,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이다. (바른 성경)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아직 앉아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막 11:2), 그 이유는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되지 않은 어린 나귀가 메시아로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하다는 유대적 믿음과 관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데리고 오라는 거룩한 임무를 부탁하셨을 때 자신을 ‘주’(kyrios: Master)로 지칭하십니다(막 11:3). ‘큐리오스’라는 용어는 예수님의 왕적이고 메시아적 권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35-3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며 다윗의 자손(Son of David)인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주’(kyrios)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메시아의 지위가 다윗의 혈통적 후손 이상이며, 하나님과 메시아가 통치권을 공유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 스스로 ‘큐리오스’라는 칭호를 통해 메시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다윗의 ‘주’라는 사실을 통하여 메시아적 지위를 공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Triumphal Entry)은 제자들이 나귀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어린 나귀의 등에 얹어 왕의 즉위식에서 볼 수 있는 존경을 표현했고, 예수님께서는 그 위에 앉으셨습니다(막 11:7). 예수님께서 나귀 위에 앉자, 많은 사람들이 길에 자신들의 겉옷을 펼쳤고, 다른 사람들은 들판에서 꺾어온 무성한 가지들을 펼쳤습니다(막 11:8).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길가에 펼치는 모습은 최고의 존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들판에서 자란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꺾어 길 위에 펼치는 행위는 풀로 장막을 짓는 것을 기념하는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과 연관되어 메시아적 기대와 축제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앞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은 시편 118:25- 26절을 인용해서 “호산나, 복되도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호산나’(hosanna)라고 외쳤을 때 그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호산나’는 시편 118:25절에 기록되어 있는 ‘호시아나’(hosiah na)를 헬라어 음가로 읽은 표현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시편 118:26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라는 표현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은 “다윗의 나라를 가져오는”(막 11:10) 자로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회복될 메시아의 나라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왕적이고 공개적인 환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상외로 조용한 결말로 끝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들을 둘러 보신 후에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시고, 마가복음 11:15-19절의 성전 정화 사건을 배경으로만 제공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녁이 되었을 때 다시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정치적, 군사적 승리를 가져오는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과, 길 위에서의 참된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마가복음 11-16:8절까지의 기록을 통하여 마가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벳바게와 베다니를 거쳐 ‘올리브 산’(Mount of Olives) 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가랴 14:1-9절의 말씀을 읽어 보고, ‘올리브 산’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누어 보십시오.
- 고대 근동의 시대에 나귀는 어떠한 동물입니까?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읽어 보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신 모습의 상징적 의미를 나누어 보십시오.
- 예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주’(kyrios: Master)라고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예루살렘 입성에서 사람들이 길에 자신들의 겉옷을 펼치고, 들판에서 자란 잎이 무성한 가지들을 꺾어 길 위에 펼치는 행위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 ‘호산나’(hosanna)의 의미를 시편 118:26절을 근거해서 설명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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