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에팡겔리아.
유대인의 지식과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 “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하인에게 시장에서 비싸고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하인은 혀를 사왔습니다. 며칠 후 랍비는 그 하인에게 “오늘은 좀 값싼 것을 사오게”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하인은 이번에도 역시 혀를 사왔습니다. “자넨 며칠전에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하니까 혀를 사오더니, 오늘은 싼 것을 사오라 했는데도 혀를 사왔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랍비는 어리둥절하여 묻습니다. 하인은 “좋기로 하면 혀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나쁘기로 하면 그 이상 더 나쁠 수가 없는 것이 혀입니다”라고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사용하는 대상에 따라 보물처럼 가치가 있기도 하지만, 버려지는 폐기물 취급 받기도 합니다.
“약속”으로 번역되는 고대 히랍어 “에팡겔리아”는 그리스 로마 사회 전반에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가장 쉽게는 “공개적인 발표”의 뜻으로 공동 사회의 모임을 알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에팡겔리아”는 쌍방이 서로 협의하여 만들거나 상호 동의로 이뤄진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공약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견해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 공표하는 약속이었습니다. “에팡겔리아”는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백을 의미했습니다. 자기 속에 느껴지는 사랑의 황홀한 감정과 매력을 고백하는 것이 “에팡겔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고백했던 내용들이 실제적인 상황을 직면했을 때는 공허한 말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의약품의 특성을 선전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만병 통치약이라고 광고하지만, 아직 모든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되지 못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에팡겔리아”를 애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직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당선되면 실천하겠다고 많은 “에팡겔리아,” 즉 공약을 외칩니다. 후보자가 외쳤던 공약은 당선되지 않을 경우 모두 무효가 됩니다. 사실 이 약속들은 성취하려는 정직한 의도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미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때때로 소피스트들 (Sophists)이 제안했던 내용들과 연관되었습니다. BC 5세기 그리스에서 일어났던 지식인 집단들인 소피스트는 문하생들에게 미덕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들의 가르침은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며, 나쁜 습성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특수 교육이라고 공언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에팡겔리아”는 단지 선전이며 돈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라이벌보다 더 좋은 커리큘럼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사실은 서로 경쟁할 뿐이었습니다. 당시 플라톤 (Plato)과 이소크라테스 (Isocrates)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소피스트들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지식인들은 현실성 없는 공허한 약속만 늘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에팡겔리아”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내용의 연장이었고, 세계 모든 민족이 믿음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축복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 축복을 주기 위한 선택된 대리자였습니다. 신약에서는 구약에 약속된 모든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약속과 소망의 달성자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더 소중한 것을 가져 오시며 그들이 꿈꾸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이 약속들은 수혜자들에게 가장 적합할 때 이뤄집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재산을 관리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했을 때 육신의 아버지가 재산을 물려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수혜자들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필요한 모든 훈련을 하시며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현존하시며, 우리의 생각을 밝고 즐겁게 하실 뿐만 아니라 가장 적합한 곳으로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인격체입니다. 둘째, 성령과 함께 죄용서를 약속하셨습니다. 용서란 우리에게 내려질 형벌의 사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셋째, 영원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인간 속으로 들어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와 살 것을 선택한다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생명과 영원히 동행하는 것입니다. 넷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자녀는 천국의 규율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은총이 삶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곧 인류의 끝이며,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완성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공급되는 이 약속의 본질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약속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사람의 약속은 헛던 지식에 기반을 둘 수 있고 또한 상황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진리이며 보증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또한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에팡겔리아”는 반드시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의 배후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의 삶에는 그분의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그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 삶에 완전히 이뤄지도록 성경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