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3), “선의 승리”
소돔과 고모라의 한복판은 금빛 장식으로 흔들리고 길거리를 누비는 상인들은 이익을 두고 거칠게 언성을 높입니다. 저녁이 되자 도시는 온통 네온사인으로 화려합니다. 짙은 분홍색 전등이 켜진 환락가에는 젊은이들로 들썩거립니다.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조롱하거나 약탈을 서슴치 않습니다. 힘이 약한 이들은 버려진 도시의 구석진 곳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쾌락과 욕망과 폭력과 약탈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악하고 타락된 것을 발견한 하나님께서 두 도시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알립니다. 아브라함이 호소합니다. “주여, 착한 사람들도 악한 사람들과 함께 멸망시키겠습니까? 제발 착한 사람을 악한 사람들과 함께 멸망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는 온 땅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니 옳은 판단을 내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을 참작하신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지만 전체가 악했습니다. 결국 두 성을 심판합니다. 하늘로부터 마치 비를 내리듯 유황과 불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주께서 악인들을 소멸시키셨습니다.
애국자 마카베오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자기 민족 이스라엘과 자신들의 신앙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전쟁했습니다. 주전 164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여 봉헌합니다. 그렇지만 주변에 남아 있던 적들과 전쟁을 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잃습니다. 놀랍게도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착용해서는 안 되는 우상의 신성한 표들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죽은 원인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모든 것을 드러내시는 의로우신 심판자이신 주님의 방식을 찬양합니다. 이 사건을 교훈 삼아 마카베오는 백성들에게 죄를 범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자들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심판하다”로 번역되는 희랍어 “디카이오크리시아”는 “의”를 뜻하는 “디카이오”와 “심판”을 뜻하는 “크리시스”의 합성어입니다. 이 단어는 언제나 악인과 죄인을 심판하실 때 사용됩니다. 입다는 침입자 암몬 족속에게 보내는 최후 통첩을 마무리 하면서,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라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이 단어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또한 “하나님이여 일어나 세상을 심판하소서”라고, 불의와 죄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칭합니다.
불의와 의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행동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은밀한 것까지 그 대상이 됩니다. 이 원리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밝힙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는 자신이 양심에 부끄럼 없이 충성을 다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그분의 정의로운 성품의 표현입니다. 그분의 성품인 정의는 사랑과 지혜와 전능하심과 영원하심과 같은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정의가 증거되어야 하는 필요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심판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받아 마땅한 것을 응보하는 일은 심판자의 과업의 본질입니다.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보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당연한 과업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쫓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선을 행하는 각 사람 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응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아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태도와 은밀히 하는 행위와 그리고 외적인 활동에 따라 응보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응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오늘 심판이 없다고 내일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디카이오크리시아는 종말론적 의미가 강합니다. 성경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향하여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응보적 심판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무서움을 함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정의 성품을 신실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무런 악의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사악한 자들이 평안하며 번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활동인 심판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응보적 심판은 인간의 책임과 정의가 마침내 모든 잘못을 이기고 승리하리라는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적 심판은 정의의 하나님과 선한 삶이 승리하는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현재 발생되고 있는 선과 악 사이의 충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은 최종적으로 처리되고 결국 선이 승리합니다. 정의의 하나님께서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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