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악”은 무엇인가?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악”은 무엇인가?

“악”은 무엇인가?

악과의 충돌은 인류 시작부터 직면한 문제입니다. 마틴 루터는 유혹에 관하여 연설할 때 이 문제를 새와 인간으로 비유했습니다. “새들이 여러분 머리 위로 날도록 허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누구도 유혹을 피할 수는 없지만, 건강한 신앙인은 유혹에 결코 굴복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청교도 신학의 거인으로 알려진 토마스 아담스는 유혹에 관한 루터의 문장을 다음과 바꿔 썼습니다. “도둑이 창문에서 방을 기웃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창문을 열어서 즐거움을 갖도록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헛된 생각들이 당신 안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습니까? 그들은 승객이 될 수는 있지만 체류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악한 일을 당하는 이유를 웨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화창한 한 겨울,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와 네 살 된 아들이 미시간 호숫가에서 썰매를 탑니다. 높고 가파른 언덕 위에서 아이가 상당한 속도로 내려오는 것을 아버지가 지켜봅니다. 아이가 얼음물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갔지만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얼음물에 빠진 아이는 호수 가장자리와 너무 가까이서  썰매를 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익사 직전에 구조된 아이는 수 개월 후에 회복되었습니다. 악과 경계없이 생활하는 우리는 방심하는 순간에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 작가 아브라함 제쉘은 악에 관해 이렇게 씁니다. “사람들은 악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할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무관심 그 자체다. 우리는 중립적이고 간섭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한 것으로 인해 크게 요동치 않는다. 그러나, 악에 대한 냉담함은 악 자체보다 더 교활하며, 더 전염성이 있으며, 더 위험한 것이다.” 평상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악한 것들이 외부로 모습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큰 상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생명까지 빼앗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삶 전반에 끼치는 악의 잔인성과 치명적인 결과를 상세히 드러냅니다. 바울 사도는 악과의 관계를 전쟁용어를 사용하여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명령합니다. 원문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영어 성경 NASB은 “악에게 정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라”고 번역했습니다. 악은 인류의 적입니다.

   악으로 번역되는 고대 희랍어는 “포네로스”로, 근본 의미는 “슬픔”과 “불행”입니다. 고대 문헌들은 이 낱말이 인간 삶의 전 영역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호모는 『오디세이』에서 “노예의 누추한 겉옷”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숙련이 미숙한 의사”를 지칭할 때 이 낱말을 썼고, 고대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크는 안목과 경험이 부족한 판사를 부를 때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때때로 이 낱말을 윤리적 감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또한 주인을 속이는 나쁜 종으로충성심이 없고 성실하지 못한 자를 뜻합니다. 암모니우스는 “포네로스”를 악을 행하는 행동가들로 “깡패,” “악당,” 그리고 “건달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악한 일을 만드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자들이다. “포네로스”는 항상 일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대인의 정신 속에 “포네로스”는 인격과 품행이 나쁜 사람으로, 이웃에게 해로운 짓 하기를 갈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제레미 테일러는 “포네로스”를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들은 약삭빠르게 방향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고, 악행과 비극을 기뻐하고, 이웃을 괴롭히며, 이웃에게 나쁜 업무를 맡기고, 인간 관계에서 상대에게 역정을 내고 사악하게 하며 수난을 일으키는 자들이다.” “포네로스”는 간교하게 활동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게 보이는 행동 같지만 이 단어 속에는 선한 가치와 어떤 연관성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네로스”는 악한 짐승이었습니다. 야곱은 피 묻은 아들 요셉의 옷을 보고,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고 울부짖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곳을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만지지 않은 곳으로 묘사합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 속에 악의 고안자는 사탄인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내용을 말씀합니다. 악이 개인의 삶을 공격하여 완전히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인간 삶을 향한 악의 적대적 공격은 휴전이 없습니다. 대신 심히 간교하여 방심하면 악의 무기에 누구나 무너집니다.

   『천로역정』에는 악의 세력에 굴복당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성함이 “양면”씨로, 그는 세상과 교회 양쪽을 드나드는 사람입니다. “양면”씨는 자신의 종교는 엄격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과 두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매우 사소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은 세상의 풍조를 절대 거스르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생활이 순탄할 때만 열심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앙생활은 하지만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과 성경의 가르침이 서로 충돌하게 되면,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타협할 줄 모르면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세상에서 성공할 때만 교회에 가는 이유는 신앙은 세상에서 번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대신,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면, 신앙 생활은 그만 둔다고 말합니다. “양면”씨의 이야기를 다 들은 주인공 크리스찬은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해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고, 믿음의 길이란 멸시와 조롱과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룟 유다는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얻으려고 주님을 팔았다고 말합니다. 악에게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Advertisment
- Advertisment -

최신 칼럼

인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