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천국 (1)
시카고 출신 찰스 가브리엘은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는 아들과 함께 뉴욕항에 갑니다. 군함의 문이 열리자 아들 찰리는 아버지와 포옹하면서 “아빠, 여기서 다시 못 만나면, 문이 밖에서 열리지 않는 곳에서 만나요”라고 작별인사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극렬한 프랑스로 떠납니다. 아들과 고통스러운 이별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가브리엘은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아들을 생각하며 찬송 시를 씁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길 다 간 후에/ 주의 품 안에 내가 안기어 영원토록 살리로다/ 나의 가는 길 멀고 험하며 산은 높고 골은 깊어/ 곤한 나의 몸 쉴 곳 없어도 복된 날이 맑아 오리/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 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전쟁이 전 세계로 퍼져 가던 그 당시 성도들은 이 찬양을 부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언제 희생될 줄 모르는 이 땅의 불안정한 삶에 가치를 두지 못했습니다.
1900년 초 미국 남부에 살았던 어느 노예가 만들었다는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는 흑인 성가대의 단골 찬양이었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 억압받고 천시받던 사람들에게 지상의 삶은 단지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으며, 힘겨운 날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은 그들 마음 속에 있는 하늘나라였습니다. 성도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미래 천국을 집착하는 현상은 현실이 녹녹치 않고 천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결여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이런 순간은 고대나 현시대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는 사이비 이단이 일어나 가능한 성도들을 쉽게 유혹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무엇일까요?
“나라”를 의미하는 희랍어 “바실레이아”는 하늘을 뜻하는 “우라노스”와 붙여 사용되어 “천국”으로 번역됩니다. “바실레이아”는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주의 나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또는 “그의 나라”란 형태로도 언급됩니다. “바실레이아”는 왕이 통치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통치자 왕을 “바실루스”라 부릅니다. 한 나라는 왕, 즉 “바실루스”가 주권을 소유한 상태에서 통치하며, 지배하고, 권세로 다스리는 역동적 행위가 포함됩니다.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에 (LXX) “바실레이아”는 이스라엘국가로, 그리고 “바실루스”는 그 나라를 통치하는 왕들로 사용됩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이 구절들은 “나라”는 왕의 통치를 받는다는 개념을 시사합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있습니다. “천국”이란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 계신다는 현재성이 강한 낱말입니다. “천국”은 왕이신 주님께서 지금 백성들의 삶에 거주하시며 통치하고 계시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개념은 단지 권력 행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신 백성들을 향한 왕의 사랑, 긍휼, 지혜, 능력과 보호를 포함합니다. 훈터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일들 가운데 효과적으로 나타내시는 그분의 통치시며, 그분이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바와 같이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천국은 곧 하나님의 모든 것입니다.
성경에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두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미 임한 천국과 장차 올 천국입니다. 현재 이루어진 천국과 미래에 완성될 천국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두 천국을 전문적인 용어 “Already, but not yet”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미 천국이 임했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이미 이뤄졌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임하였다”는 낱말은 “이미 도착했다,” “이미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미 압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말 못하게 하고, 정상적인 삶을 파괴하는 마귀를 예수님께서 내 쫓으신 일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통치하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악의 질서를 이끄는 사탄의 세력을 무력화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임한 천국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삶의 전 영역에 병들고 망가진 부분들을 회복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십니다.
미래의 천국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가까이 왔다”는 말은 완전히 온 것은 아니지만 근접하다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천국은 미래에 이루어질 위대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완성될 천국의 드라마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미래 천국에 입국하는 자격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고 찬양을 부른 사람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내일의 천국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 개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미래의 천국에 집착하면 사명의 길을 가치 없게 여길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을 가는 동안 십자가의 고난이 있을지라도 천국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은 승리합니다. 역으로 물질적 풍요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은 미래의 천국 준비를 게을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은혜만을 즐기다가 문이 닫힌 후에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외쳤던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