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5> 하나님의 용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보다 용서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에덴 동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위해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사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죄를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아담은 하와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했고(창 3:12) 하와는 뱀이 자기를 꾀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변명했습니다(창 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비록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겪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숨었을 때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그들은 자신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나서야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던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첫 아들을 얻었을 때 그들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형상을 닮은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Forgiveness in Context>라는 책의 저자인 Fraser Watts는 그의 책에서 무조건적인 용서는 회개를 불러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을 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죄를 고백하는 존재입니다. 범죄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오기 때문에 죄를 지은 인간은 형벌을 피하기 위해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용서가 보장되어 있을 때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사람이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더라도 먼저 용서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서로를 용서해야 할 근거가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용서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의 잘못 하나하나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행한 우리를 인격적으로 용납해 주시는 용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낱낱이 고백할 때 용서해주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한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일일이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많은 경우에 죄를 지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의 잘못된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용서를 넘어서서 우리의 존재를 용납하시는 사랑입니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체질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시 103:14). 그는 우리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누가복음 15:11-32에 묘사된 아버지의 사랑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굶주림에 지쳐 돌아오는 아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고 그를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집에 맞아 들이고 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 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용서는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의 많고 적음이나 크고 작음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베풀어지는 용서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는 죄의 용서를 위해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점에서도 무조건적입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자비로우시고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효력은 조건적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용서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그 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지만 그 분과의 관계의 회복,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용서의 온전한 성취는 각 개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궁극적 목적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과의 관계 회복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용서는 자기희생적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신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사는 인간을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의 대가를 담당하셨습니다. 피해자인 하나님께서 가해자인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받기로 작정하셨고 실제로 그 고통을 감당하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용서는 자기희생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으로 생긴 손해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희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고 권면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가하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적개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쌍히 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가 어떤 것인지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흘려 보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동시에 용서의 삶을 살라고 하신 명령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인간으로부터 흘러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용서를 흘려 보내는 통로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진경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칼럼: 패밀리얼라이브] 용서 이야기<1> 용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https://i0.wp.com/toronto.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alive.jpg?resize=324%2C160&ss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