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6> 결단으로서의 용서와 과정으로서의 용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용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고자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결단했다고 하더라도, 혹은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않고자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내기로 작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용서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용서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결단으로서의 용서를 살펴보면 (1) 상대방에게 빚을 받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 (2) 상대방의 부족함을 수용하기로 작정하는 것 (3) 상대방에게 가서 상대방의 잘못을 밝히고 사과 받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상대방의 잘못으로 내가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가서 상대방의 흠이나 잘못을 들추어내지 않고 나의 마음에 생긴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흘려 버리기로 작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창시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그의 저서 <치유를 위한 선택>에서 “용서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 증오의 행위를 멈추는 일을 말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분노의 문제는 용서하겠다는 결심만으로는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인지적 작용을 통해 의지적으로 어떤 일을 결심할 수 있지만 내면의 정서가 그 의지적 결정을 따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상처와 분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면 우리의 정서는 오랜 습관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하기로 결단했다고 해서 우리 속에 생겼던 상처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용서는 상처를 반창고로 붙여서 보이지 않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 우리는 우리에게 생겼던 상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상처에 직면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습니다. 상처에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상처가 생겼는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이해는 우리 속에 생겼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자는 용서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분노 및 그와 관련된 부정적 감정들이 점차 사라지는/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종종 상처에서 분노로 곧바로 달려갔던 원래의 단계를 숙고하게 해 주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줄 수 있습니다.
한편, 용서의 과정은 일직성 상의 과정이 아니라 나선형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기로 결단했을 때 우리의 결단은 그저 상대방을 용서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속에 생겼던 분노를 숙고하는 과정과 상대방을 끌어안고자 하는 의지적 노력을 거치는 동안 상대방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면서 우리의 용서는 점점 더 풍성한 의미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때로는 원래 느꼈던 부정적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고 그때마다 우리는 용서하기로 했던 결단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처음 상처가 생겼던 사건을 보는 관점과 상대방과 우리 자신 사이에서 인간으로서의 공통점들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면서 점차로 우리의 감정이 부드러워지고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용서는 상대방으로 인해 생긴 고통을 감내하기로 작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마음 속에서 용서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해내고 피해자 스스로 상처를 싸매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느꼈던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혹은 사람 대신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는 일은 그 감정들을 밖으로 발산시켜서 그 감정들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시편에는 다윗이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로한 내용들이 여러 편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시편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는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피해자는 때로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간은 비록 상대방을 끌어안고자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해를 가했던 상대방에게 일일이 따지지 않기로 작정하고 분노와 증오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놓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슬픔과 고통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줄 수 있고 가해자에게 복수하거나 스스로 응징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의 최종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과 선과 악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이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게 해 주고 자신에게 해를 끼쳤던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고 더 나아가 축복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가해자를 축복한다는 말은 악을 행한 사람이 복 받기를 바란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가해자에게 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불의한 일이나 제도에 대해 의분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불의한 일이나 제도가 시정되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동안 그 불의한 일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내심은 용서의 한 부분이며 용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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