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7 > 요셉의 용서
창세기 후반부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길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의 첫 소생으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라는 과정에서 형들의 시기를 받았는데 그 일에 더해 그가 꾸었던 특별한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미움까지 사게 되었습니다. 결국 형들은 그를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았고 상인들은 그를 애굽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 후 요셉은 보디발의 신임을 받아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게 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요셉은 충격과 슬픔과 억울함 등 여러 감정이 섞인 분노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보복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찾아와 용서를 비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였습니다. (창 50:19-21) 이 말로 미루어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형들을 언제 용서하게 되었을까요?
지난 글에서 필자는 용서하기로 결단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용서가 실현되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어쩌면 요셉은 처음부터 형들을 용서하기로 결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자신이 당한 일로 인해 생긴 억울한 감정이나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 자기가 처한 현재의 환경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기근을 피해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보게 되었을 때 과거의 일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형들을 다시 대하게 되었을 때 요셉에게는 과거의 아픔과 반가움, 궁금함 등 여러 감정과 생각이 뒤섞여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합니다. 처음에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지 않고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문책과 요구를 했는데 형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잘못한 일들을 후회하면서 반성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은 감정이 북받쳐 그 자리를 떠나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들이 베냐민과 다시 애굽에 왔을 때 요셉은 베냐민을 보자 다시 감정이 북받쳐서 자리를 피하여 울었지만 아직 자신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냐민을 자기 옆에 남길 생각으로 청지기를 시켜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도록 하여 베냐민만 끌고 오려 했지만 형들이 모두 함께 되돌아와서 형 유다가 자신이 대신하여 남겠으니 아버지의 생명과도 같은 베냐민을 되돌려 보내줄 것을 간청하자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알리게 됩니다.
그 때 요셉은 형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4-5)라고 말하며 그들을 위로합니다. 이 때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이 형들을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을 했던 사람에게 굳이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써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용서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서로 자신들이 요셉에게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았고, 베냐민만 남겨 두려 할 때 형제들 모두가 함께 돌아와서 자신들 중 하나가 남더라도 베냐민을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아버지와 막내 베냐민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요셉은 형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을 향해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연민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형들에게 굳이 “용서한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형들을 위로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죄책감에 빠져 있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어쩌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자신과 형들의 과거를 되새겨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을 뿐 아니라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형들 앞에서 잘난 체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차별대우를 받던 형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헤아려 보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자신의 미성숙함을 반성하고 형들에 대한 연민이 싹트도록 했을 것이고 어쩌면 언제라도 형들을 만나면 형들을 용서한다는 말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형들이 자기 앞에 섰을 때는 여전히 형들이 자기에 대해, 혹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선뜻 자신을 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를 편애했던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셉은 자신이 요셉이라는 사실만 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형들에게 어떤 원망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은 과거의 사건을 들추어 이야기하기 보다는 형들에게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도록 위로하고 형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용서가 결단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줍니다. 용서하는 것이 심히 어려운 경우에는 용서하기로 마음에 결단하는 일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용서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미성숙함을 반성하고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싹틀 때 이미 그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선택이며 결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선택과 결단도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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