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빛나는 이유
이사야 60:1-3, 요한복음 1:9-14
라이프교회 서규환 목사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던 저는 자라면서 ‘moonlight’ 즉 달빛이라는 것을 거의 인식해 보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도로를 밝혀주는 가로등과 사람들의 눈길을 유혹하는 도시의 번쩍이는 불빛들로 인해 달빛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배 밭과 산등성이를 밀어내고 빼곡히 들어선 대치동의 고층아파트에 둘러싸여 그저 조각난 하늘만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 살면서 밤하늘에서 달빛에 감탄하고 별빛의 영롱함을 느낀다는 것은 저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로 살던 시절 어느 날 밤 캄캄한 밤에 한 시골 마을을 찾아가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 앞에는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에 들어가려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흔들다리를 건너서 가야만 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앞서 가는 안내인을 따라 불안한 마음으로 흔들다리를 건너며 조심조심 발을 내 딛고 있던 그 때 구름에 가려있던 달이 나타나자 디뎌야하는 다리의 나무 판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건너 동네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을 때 즈음에는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구름을 벗어난 밝은 달빛을 받으며 구릉 아래 자그마한 동리가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이제 다 왔다는 안도의 날숨을 내쉬며 눈에 들어왔던 그 아름다움은 제 마음에 있는 보석과 같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 날 그 달 빛이 얼마나 환하고 고맙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1. 빛과 어둠
성경 속에 나타나는 세상의 시작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 속에 비친 빛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이 아름다운 빛 아래 창조된 인간이었지만 죄로 인해 그 말씀을 거역하고 빛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참 빛을 잃어버리고 어두움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등진 인간은 영적인 어두움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셔 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난 두 눈 멀쩡히 뜨고 다니는데 무슨 소리야?” 또는 “나 만큼만 바르게 살아보라 그래! 이 정도 착하게 살아가면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혹시 누구라도 어두움을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서 “어둠아 비춰라” 외치며 흑암을 만드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성 어거스틴은 ‘악은 선의 부재’라고 말합니다. 선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곳, 그 마음의 자리가 바로 악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둠은 빛의 부재’입니다. 빛이 차단된 곳, 빛을 벗어난 곳 바로 그곳에 흑암이 있습니다.
시 107장 10-11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2.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등지고 죄악의 길로 떠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바 된 우리를 구하시려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께서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우리는 그 빛을 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을 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빛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합니다. 보지 못하니까 믿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아예 빛을 싫어합니다. 왜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는 것을 그렇게 까지 싫어하고 예수님이나 하나님 이야기만 해도 진저리를 치며 피하는 것일까요?
요 3장 19-21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도둑은 빛 아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자신을 어둠 속에 숨기고 싶어 합니다. 밝은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 139장 11-12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눅 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3. 참 빛이신 주님
사실 사람은 빛 아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빛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촛불도 있고 호롱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초가 다 타버리거나 기름이 다하면 곧 꺼져버리고 맙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밤에 정전을 경험하신 적 다들 있으시지요? 그 외에도 세상 여기저기에는 우리를 현혹시키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세상의 빛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아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학식을 빛으로 보고 따라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도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꺼져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사탄도 자신을 빛으로 가장하여 사람들은 유인하기도 합니다. (고후 11:14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종교나 이단에 빠지기도 합니다. 참 빛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9, 12)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계속해서 이것을 증거 합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여러분 이 말씀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왜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서는’ 이라는 단서를 붙이셨을까요?
요 12장 35-36, 46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또 이 본문 35절과 36절에서 계속해서 ‘아직, 잠시 동안’ 이라는 한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실까요?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이 영원하지 않음과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더 깊게 깃드는 때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오늘의 본문 말씀 이사야서 60장에서처럼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하려고 열심을 내고 애를 씁니다. 귀한 사명이고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착각을 할 때도 종종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빛이 아닌데 마치 자신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양 참 빛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4. 달이 빛나는 이유
오늘 말씀을 달빛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지만 우리는 참 빛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달이 빛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사실 달 자체에는 아무런 빛도 없습니다. 밤 하늘에 달이 빛나는 이유는 달 자체에서 빛이 나오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받아 달이 그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빛을 달빛과 같이 생각할 때 두 가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자기의 열심을 가지고 더 빛을 내려고 표면을 열심히 가꾸고 매끈하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열심을 내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나 자신을 가꾸고 선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햇빛을 받지 못하면 달은 그냥 어둠 속에 잠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이 우리 삶 가운데 비춰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깜깜하여 아무 것도 분별할 수 없는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떠오르는 모습은 자신의 흉한 모습으로 인해서 슬픔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모습입니다. 달의 표면을 자세히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울퉁불퉁 참 못 생겼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남들은 다 나보다 더 잘 난 것 같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뛰어난 것 같고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퉁불퉁 못생긴 달에게 강한 태양의 밝은 빛이 비춰지면 온 동네를 환하게 비추는 달빛이 되어 길을 찾는 나그네의 등불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둡고 초라한 우리의 인생에 해가 뜨고, 그리스도의 참 빛이 비취면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면 우리도 자신의 능력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노출시키고 그 말씀의 한 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5. 해를 품은 달
제가 꿈꾸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해를 품은 달’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세상의 참 빛이신 주님을 가슴에 품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달빛과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빛이 아닙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빛 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빛 아래 서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빛 아래 우리를 노출시킬 수 있을까요? 그 분의 말씀 가운데 서는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빛 되신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멋진 모습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교만도 아니요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한없이 움츠러드는 열등감도 아닌, 해를 품은 달의 모습으로 어둠이 더욱 깊어가는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 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것 같습니다.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는 이때에 오직 여호와께서 우리 위에 임하시면 우리는 해를 품은 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60:1-3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길의 빛이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생명의 빛을 소유하실 뿐만 아니라 일어나 빛을 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죄로 인한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를 빛으로 부르신 주님. 당신의 빛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시키는 주의 도구가 되게 하셔서 이 빛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주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