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갑옷 (Our Arm) 베드로전서(1 Peter) 4:1-3
토론토 충현교회 김영선 목사
베드로전서(1Peter)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Therefore, since Christ suffered in his body, arm yourselves also with the same attitude, because he who has suffered in his body is done with sin.)”
베드로 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 네로에 의해 핍박이 거세지던 AD 64년 직전, 즉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그리스도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편지다.
우리의 갑옷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정신적으로 입는 옷을 말한다.
이같이 앞으로 삶이 점점 나아질 것이란 소망이 있다면 조금만 견디면 되겠지만, 그 반대로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이 직면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소망이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의 갑옷’삼으라고 답한다. 함께 은혜의 시간 되길 바랍니다.
첫째, 주님께서 받은 고난 생각(1절)
1절, “(그러므로)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우리는 고난에 처하면 제일 먼저 ‘왜 내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고난을 통해 신앙이 성숙해지고 더 단단해질 거야 라는 마음을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그러므로)는 3.22절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른 것처럼, 나도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주님이 받은 고난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와 같은 마음의 갑옷을 입으라고 매우 단순하고 강력하게 묘사한다. 헨리 나우웬의 책, ‘희망의 씨앗’에서, 명상하던 한 노인이 급류에 떠내려가는 전갈을 구해주려고 붙잡으니 도리어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갈은 찌르는 것이 그의 본능이므로 게으치 않고, 그 전갈을 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이다. 이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 환란 날에 나 자신이 보호 받을 수 있는 갑옷이다.
그러나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 있다.
15절,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는다는 의미다. 롬 6.3절-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즉 세례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이다. 주님의 고난을 나의 갑옷으로 삼게되면, 진리 안에서 부유케 되며, 내 마음에 어둠이 떠나고 주의 빛으로 충만할 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어떤 고난을 받는지요? 주의 나라와 공동체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한 고난이라면 매우 값진 것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 좇아 사는 삶 (2절)
2절, “그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 몇시지? 라고 묻는다. 왜냐하면 때를 알아야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 후로는, 남은 때를, 지나간 때가 족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1절-죄가 그쳤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 대표단수로서 누구든지 죄가 그친 자들이란 의미다. 따라서 이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성도에게 계속 일어나야 할 연속적인 사건이어야 한다.
‘밀러드 풀러’는, 20대 후반에 변호사 그리고 사업가로 성공한다. 그는 호수를 낀 큰 저택, 최고급 자동차, 자가용 비행기까지 가진 아무 걱정이 없던 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아내는 그에게, ‘조금도 남을 위해 봉사할 줄 모르는 당신의 무의미한 삶 이제는 당신과 갈라설 때가 되었어요’ 라는 한통의 편지를 써 놓고 집을 나간다. 그때 ‘밀러드 풀러’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그는 시민 운동가(선교사)로 변신하여, 1976년에 무주택자를 찾아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를 설립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은 무엇인지 돌아보며, 나에게 주어진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셋째, 멈추어야 할 이방인의 뜻 (3절)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당시 로마 사람들의 삶의 특징이다.
2절과 3절에서 대조를 이룬다. 지나간 때와, 남은 때, 그리고 이방인의 뜻, 정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이제 남은 때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이미 구원을 얻었으니, 이방인의 뜻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마치 노아의 방주에 올라 탔다면 방주 안의 삶이 답답할지라도 그 안에 머물러야 생명이 있다. 만일 방주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죽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의 고난,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멈춰야 할 6가지 죄는,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연락 우상숭배다. 이런 죄는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이방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때로 족하다. 요 8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죽이려 하던 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니, 모두 돌을 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때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한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지나간 때가 족하다. 따라서 이방인의 뜻을 멈추기 위해서는 지나간 삶을 회개하며, 악을 끼쳤던 과거의 삶을 후회하고, 거룩한 일에 힘써야 한다. 죄는 또다른 죄를 만들기 때문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종말신앙이란 마지막 때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살아내야 하는 삶을 말한다.
예수를 믿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 쉽지 않다. 중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 죄를 끊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엡 6장에서,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우리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악을 선으로 갚는 것, 죄를 막아주는 것,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뚫어주는 것, 때로 양보하고 져주는 갑옷이다. 이 마음으로 “우리의 갑옷” 삼아 한 주간 승리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