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살기(창 13:1~18)
아보츠포드비전교회 황길모 목사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대한민국, 캐나다, 미국과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서로의 관계이며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의 다스리심과 그분의 사랑의 돌봄이 미치는 우리 전 삶의 영역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이 가나안 땅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그 삶이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영역 속에서 영적 전쟁을 치루어내며 승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하나님의 뜻이 통하고 있습니까? 삶의 방식을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있었을 때, 아브라함은 먼제 제의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롯에게 터전에 대한 우선권을 주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보장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지역은 한쪽은 풍요로움이 있는 들이었고, 한쪽은 척박한 산지였습니다.
롯이 풍요로운 곳을 택할 것은 뻔히 보이는데 아브람은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준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결단은 롯과의 싸움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자기 안에서의 영적싸움을 통해 자신이 가진 기득권과 권리를 포기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양보가 자신과 가족들의 삶에 어떤 불편과 어려움을 가져올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있는 족장으로서, 롯의 연장자로서의 기득권과 권리를 포기하고 롯에게 먼저 땅을 양보한 것입니다.
말씀을 단순히 보면 롯을 위해 양보한 것 같지만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 세상이 우리를 다스리는 원리와 믿음의 사람의 삶의 원리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곧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영적 전쟁은 나의 밖에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세상의 원리 즉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돌보심, 공급하심에 대해 의심케 하는 우리의 불신앙과의 싸움입니다. 인생의 불확실함에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내 안의 욕심과의 싸움입니다.
우리 내면의 싸움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나의 불신과 조급함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고, 그 분을 향한 신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롯에 대한 양보는 바로 이 아브람 내면의 영적전쟁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아브람이 그 내면의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런 결단과 포기가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지난 주 아브람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우리가 다르지 않음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벗어나게 되고 다시금 회복되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어떤 소망도 없이 실패와 절망감을 느끼며 좌절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생각하셔서 아브람으로서는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사래를 하나님 당신께서만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아브람을 건져주셨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겪은 사건과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람의 믿음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을 때는 믿음의 결단이었고, 고백이었지만 그 고백과 결단이 아브람의 삶이 된 것은 애굽의 실패와 절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굽을 나와서 네게브를 거쳐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자신이 바라보고 나갔던 환경과 상황, 그 가운데 나타낸 인간적 노력이 자신을 살리고 애굽을 나오게 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게 소중한 것과 우리 인생의 안전함과 미래에 대한 보장도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돌보심이라는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람은 롯과의 화목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의 본분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상황과 여건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롯은 삼촌의 말을 듣고 먼지 풀풀 날리면서 떠나갔지만, 아브람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14절로 17절 말씀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감동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람에게 아직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는데, 포기와 양보를 통해 그의 안에 새로운 가치를 선택해 가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는 애굽에서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한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눈으로 보이는 모든 곳과 발로 밟는 모든 곳을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 말씀하시면, 조금이라도 더 보고, 더 밞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돌아다녀야 할텐데,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르레 곳 전에 예배했던 장소를 찾아 그곳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람은 이제 땅의 많고 적음이, 물질의 많고 적음이 자신의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통치자가 되어주시고 공급자가 되어 주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기도하고 매달리지만 아브람은 하나님 그분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영적전쟁을 치르며, 그분의 공급하심을 믿어 자신의 권리 조차도 포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그분의 신뢰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을 지켜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으며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영적전쟁을 치러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세상이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더 이상 이 땅의 가치에 연연해 하지 않고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겨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한 공급자가 되어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만 있으면 됩니다. 하는 아브람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