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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아합의 회개(왕상 21:27-29)_밴쿠버 한사랑교회 신용규 목사

아합의 회개(왕상 21:27-29)

밴쿠버 한사랑교회 신용규 목사

들어가는 이야기

이스라엘의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을 꼽으라면 아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이었던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서 이스라엘 땅에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숭배가 가득하게 만들었지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한 일도 아합왕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아합은 엘리야를 늘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이 저지른 악행의 정점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나봇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아합이 사는 왕궁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을 무척 갖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나봇과 딜을 시도했습니다. 자신이 더 좋은 포도원을 줄테니 그 포도원을 달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을 왕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봇이 자신의 포도원을 정말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땅을 사고 파는 것이 하나님이 금하시는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 23을 보면, 토지를 영구히 팔지 것은 토지는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비록 왕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땅을 팔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합은 마음이 상해서 앓아 누웠습니다. 아내였던 이세벨은 이 사실을 알고 나봇을 거짓으로 모함해서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이 행위를 굉장히 악하게 보셨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는 단지 10계명 “네 이웃의 집과 소유를 탐내지 말라”만 어긴 게 아니라,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그리고 최종적으로 1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명령을 다 어긴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과 아세라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들의 자손까지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이야기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의 생각으론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이 회개한 것입니다. 글쎄요. 오늘 성경의 아합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회개에 이르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심판의 메세지를 들었을 때 그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는데, 29절을 함께 보실까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앞에서 겸비함 네가 보느냐 그가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열왕기상 21 29) 놀랍지 않습니까? 

한 평생을 우상을 섬기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고, 선지자들을 박해하며 백성들의 소유를 불법으로 탈취했던 사람이 아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엘리야로부터 심판의 메세지를 듣고 금식하며 스스로 겸비하자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거두어 들이셨습니다. 대신 그의 아들의 시대에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가정을 파탄내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공직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 거룩하고 경건한 성직을 이용해서 은밀하게 자신의 명예욕과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삶은 쉽게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번영하여 자신의 악행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원수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뿌리 뽑지 않으시는 걸까요? 왜 하나님은 악한 지도자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면서 무고한 백성들의 피와 눈물을 흘리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는 오늘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가 등장하지요. 그 이야기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사람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 7) 여기에서 핵심은 무엇입니까? ‘의인’ 한 사람이 돌아오면이 아니라,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면 나머지 의인 아흔아홉보다 기뻐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천국의 논리이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이 이렇다는 겁니다. 이 땅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방식은 어떤 거에요?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성공해야죠. 나쁜 사람,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망하는 꼴을 봐야 세상이 옳게 돌아간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시고 그 죄인이 뉘우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요나서를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죠. 하나님은 요나를 당시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거죠. 하지만 요나는 이를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이방 민족인 니느웨가 멸망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나서 3 4-5입니다.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옷을 입은지라 금식하고, 굵은 베 옷을 입는다는 표현이 어디에 나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합이 했던 행동과 똑같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겸비하고 돌이킬 때 구약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결국 니느웨에 재앙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이를 굉장히 못마땅해하지요. 그렇게 분노하면서 요나서는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지자의 모습, 하나님의 오래참음과 자비를 견디지 못하는 요나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애와 긍휼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죄인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회개시켜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4 6-7을 보시면,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시며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어떤 분으로 계시하셔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입니다. 또한 인자는 천대까지 베풀고 악과 과실과 죄는 용서하신대요. 또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의 뜻은 문자 그대로 인자는 딱, 천 세대까지 베풀고 악인의 죄는 삼사 대까지 갚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 대와 삼사 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격차지요. 

이 말씀의 의미는 은혜는 최대한 베풀고, 심판은 최대한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칭찬과 보상은 최대한으로 베풀고, 징계와 벌은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분이라는 겁니다. 아합이 이스라엘 역사에게 가장 악한 왕이었고, 그의 평생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으며, 백성들을 나쁜 길로 인도하고, 무고한 백성의 포도밭을 빼앗고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금식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재앙을 그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에게 내린 축복을 생각해봅시다. 다윗이 평생에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죠. 하지만 그도 큰 실수를 몇 번 저지르긴 했습니다. 완전한 의인은 없으니까요.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여러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나중에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됩니다. 그 일을 두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하셨지요? 네가 나를 위해 성전을 짓지 못하고, 너의 아들 솔로몬이 나를 위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신 약속의 말씀이 중요한데요. 사무엘하 7 16입니다. 집과 나라가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의 왕위가 자자손손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그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나가는 이야기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합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내릴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순종하자 그에게 내릴 복을 자자손손 영원히 내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공정하지 않은 처사입니까! 하나님은 그 만큼 죄인이 돌이키는 것을 원하시며, 만일 순종하기라도 하면 그것을 기뻐하시며 넘치도록 복을 주시는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에게 어떤 파장을 불러 올까요? 악인도 용서를 받고, 실수투성이였던 다윗의 순종도 후손들에게 대대로 영향을 미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순종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상상이나 할 수 있으세요? 그분이 받으신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의 죄는 완전히 용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행하신 완전한 의와 순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보실까요? 다윗의 순종을 통해서도 자손들을 축복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그분을 믿는 우리를 얼마나 놀랍도록 축볼하실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을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스스로 겸비하며 자신의 돌아보는 자를 찾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합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신다면, 하물며 성도의 죄일까요.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부모의 헌신과 기도를 보시고 자녀들의 삶을 축복하시는 많은 경우를 봅니다. 불교처럼 부모의 공로가 자녀들에게 미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리고 반드시 일대 일로 대응하지 않기도 하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 부모의 기도와 헌신은 자녀들에게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길 원해요.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세대를 놀랍도록 축복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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