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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73편: 악인의 형통을 본 의인의 고뇌에 관하여 (아삽의 시)_크렌브룩 한인 장로교회 박경현 목사

73편: 악인의 형통을 본 의인의 고뇌에 관하여 (아삽의 시)

크렌브룩 한인 장로교회 박경현 목사, pkjames1004@gmail.com 4038071006

아삽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삽은 레위 지파 게르솜 자손 헤만의 형제 베레야의 아들로(대상 6:39,43) 다윗왕 때에 다윗이 법궤를 모셔다 놓고 레위 사람을 세워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했는데, 이 봉사의 두목으로 아삽이 임명되었다(대상 16:4-6). 그리고 아삽과 그 형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항상 섬기도록 선정되었다(대상 16:37). 그 후 다윗은 악대를 24반으로 편성할 때, 아삽은 여두둔˙헤만과 더불어 악대 총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수하에 거느리고 왕명에 따라 `신령한 노래’을 불렀고, 여두둔은 그 아들과 같이 `수금을 잡아 신령한노래’를 불러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했고, 헤만은 자기 자녀 17명과 같이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아 여호와를 찬송했다(대상 25:2-8,대하 35:15). 시편의12편의 시(시 50,73-83편)가 아삽의 작이라고 한다(대하 29:30). 아삽은 다른 지휘자들과같이 선견자라고 불리웠다(대하 29:30→35:15, 대상 25:5). 구약시대 성가대 최고지휘자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보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더 잘 되고 형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굳이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힘들게 경건하게 살기 위해 새벽기도하고 주일을 지키며 선교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유혹에 대한 해답들 찾아가는 내용이다

1,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1-3)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아삽이 아는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아삽은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신은 종일 재앙을 당하는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지도 섬기지도 않고 의인을 핍박하는 악인들이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더 번성하고 형통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근원적인 신앙의 뿌리인 하나님은 참으로 주님 나라를 위해 사는 모든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믿는데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 아삽이 왜 실족 할 뻔 했는가?(4-14)

4-5절은 보면 악인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그들의 몸이 살찌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아삽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악인들이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안락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 가는것 같이 보인다. 악인들은 불행, 약함, 질병, 노동 등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겪는 고통에서 면제 되어있는 것 같다. 심지어 그들은 건강하며 아픈 곳이 없고 일상적인 삶속에 어떠한 고난이나 재난을 겪지 않으며 자신들의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키며 또한 그들의 산업은 날로 번창하여 부귀 영화를 끝없이 누리고 있는 것 같다.

6-9절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무크)[조롱하며](NASB, NIV)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하늘을 대적하고](KJV, NASB)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악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게 자신을 뽐내며 살아간다. 이러한 교만은 좀더 적극적인 상태로 발전하여 횡포와 폭력으로 의인들을 압제하고 결국 하나님을 멸시하는 신성모독의 단계에까지 나아간다. 아삽은 이러한 악인들의 방자한 태도가 그들의 삶의 번성과 평안과 안락에 근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왜 심판하지 않으시고 방치하시는지 하나님께 항의 하는 것이다. 욥과 예레미야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욥 12:6;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자가 평안하니 21:7-10;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렘 12:1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10-11절]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교만한 악인의 번영과 함께 아삽을 더욱 낙심하게 만드는 사실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며 조롱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악인의 달콤한 유혹은 강력한 영향력이 있어 순진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타락시키며,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며 하나님을 저주하고 백성을 유혹한다. 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권세와 영화와 번영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성전 봉사로 헌신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회의감이 들게 한다. 전8:11 악한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음으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도다.

[12-14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아삽은 앞에서 말한 악인의 영향력과 권세를 하나님만 경배하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회의에 빠진다. 고난 받는 아삽은, 악인보다 못한 처지의 자신이 성가대 대장으로 대원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며 말씀대로 준행하며 셩결하게 살아온 일이 무가치한 일이 아닌가하고 의심한다.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 헌신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려는데 왜 하나님 저는 끊임없이 고난에 처해 있는 것입니까?

3,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 악인의 결말을 깨닫게 된다(16-17)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신보다 악인이 누리는 번영으로 인하여 심한 고민과 유혹에 빠져 있던 아삽은 여기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발견한다. 아삽은 배교의 유혹에 대한 뼈져린 투쟁을 겪은 후에 악인의 세속적 축복의 무가치함을 발견하고 성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지상이 아닌 천국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1서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한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5-17절]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절 내가 이를 어쩌면 알까하여 생각한 즉 심히 곤란하더니: 부조리한 세상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음을 솔찍하게 고백하고 있다. 헤아릴수 없는 초 자연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자신의 추리력인 인간의 이성의 기준으로 정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아삽은 곤란과 낙심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매우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삽은 내적인 상태에만 고착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결과를 고려하며 나아감으로 문제 해결의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그 디딤돌은 믿음사역을 중단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산속 조용한 오두막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 하면서 성소에 들어갈 때 그것을 바르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그 언약의 말씀에 압도될 때 인간 이성의 기준에 고정된 아삽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뀌게 되어 해결이 된것이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극심한 문제로 혼란 상태에 처해 있던 시인의 영적인 시력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감으로 비로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성소에 들어감은 모든예배, 찬양, 말씀묵상, 주의 종들을 통한 교훈,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모든 상황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언약의 안경을 끼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응답을 얻었다(한나의 기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영적인 시력을 얻을 수 없고 우리는 자기이성과 사고를 통해 접근했을 때는 완전히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아삽도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보여지는 현실을 보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바라보지 못했기에 현실 그대로 느끼며 괴리감에 빠진 것이다. 매일 성소에 나아가 하늘을 묵상함을 통하여 이성적인 사고과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보는 현실을 하늘의 언약의 말씀의 깔데기로 걸러서(세상의 더러운 찌꺼기, 쓰레기들) 깨끗하고 순전한것만 마음으로 깊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4, 악인은 졸지에 심판하신다(18-21)

[18-20절]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악인들은 참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악인들이 평안하고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일이다. 악인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의 재앙은 졸지에, 한 순간에 임한다. 대형사고가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작스럽게 일어나듯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한 순간에 황폐케 하시고 전멸케 하신다.아삽은 결국 악인의 형통이 축복이 아니라 심판의 일부 였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믿음으로 사는 삶이 종일 재앙을 당하는 것 같더라도 더 가치있고 영원함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전15:58 부활로 사망을 정복한 예수님으로 이김을 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요 이는 주를 위한 여러분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에 담고 바라보는 훈련을 하라

성소에 들어갈 때에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그 문제를 해결 받은 후에 잠시라도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투하며 생각한 아삽은 마음이 산란하며. 쓰라리며, 괴로우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이어 자신의 우매무지함을 깨닫고 자신을 “주의 앞에 짐승”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늘과 땅에서도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으며 자신의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라고 선포한다. 뿐만 아니라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이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니 내가 주의 모든 복음의 행사를 전파 하겠다고 작정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는 소년 다윗 앞의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이 두렵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다는 영적인 시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환경을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모세가 보낸 10명의 정탐꾼과 2명의 정탐꾼이 다르게 바라보는 것처럼, 무엇이 같은 환경을 다르게 바라보게 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언약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2명과 그저 나타난 환경 그대로 흡수되어 바라보는 그런 관점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성소에 들어가는 훈련을 통하여 환경을 지배하시고 믿음으로 해석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믿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우리네 인생은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대한 집착과 애착으로 이곳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착각하며 살아가는데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수단을(질병, 고난, 수고 등) 통하여 이 땅이 영원한 고향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인 것을 증명하시는 것이다. 적어도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노화되나 믿는 우리의 속사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만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시력이요 안경입니다. 

성경은 우리네 인생의 캄캄한 밤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나침반이요 지도요 등대와 같습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구주 예수님을 알게 한다. 성경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의의 길로 가도록 교훈하는 책이다(딤후 3:15-16). 그래서 성경은 읽는 자가 복이있고 듣는자가 복이있고 지키는 자가 복이있다고 말한다. 매일 우리의 영적인 시력을 위하여 주의 언약의 말씀의 안경을 끼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입장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롬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새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 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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