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 3장 1~11절
밴쿠버새벽교회 김동희 목사
사무엘은 한나가 간절히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한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셨고, 한나는 그 약속에 따라 아들 사무엘을 성전에 맡겼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성전에서 지내게 되었고, 제사장이었던 엘리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성전 안에서 잠을 자려고 누었는데 어디에선가 갑자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사무엘은 그 소리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엘리는 부르지 않았으니 돌아가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엘은 또 엘리에게 달려갔고, 엘리는 다시 부른 적이 없다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 달려갔을 때, 엘리는 이 소리가 하나님이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은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어서, 그 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그 목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엘리는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리이니,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시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돌아가서 엘리 제사장이 시키는 대로 하나님께 응답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사가 되어 놀라운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이야기가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시나요? 아니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시나요?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며,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꼭 이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성도님을 지금도 부르고 계시고, 우리는 모두 그 부르심을 눈치채고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에 보면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무엘상 3장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말씀은 사무엘의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았던 시대라고 선포합니다. 왜 말씀이 희귀했을까요?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셔도 그 말씀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귀가 닫혀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적으로 무뎌진 제사장 엘리의 모습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엘리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슬픔 가운데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한나를 보고, 오히려 그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기에게 달려온 사무엘을 보고 두 번이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엘리는 끝내 한나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였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 듣는 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가 얼마나 영적으로 무뎌 있고, 무감각해졌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시대가 바로 사무엘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때때로 비슷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무뎌지면, 하나님 외에 다른 일들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있어도, 우리는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찾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삶입니다. 위대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책 고백록 앞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편안하지 않나이다”
우리는 창조되기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결코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으며, 결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에,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르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라는 저술가는 일차적 부르심과 이차적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구별하였습니다. 일차적 부르심이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와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이차적 부르심이란 우리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 안에서 가정, 직장, 교회, 삶의 자리 곳곳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과업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삶 가운데 이루어가는 부르심이 이차적 부르심입니다. 우리에겐 일차적 부르심과 이차적 부르심이 모두 중요한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차적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무엇보다 원하시고 계십니다.
정리하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누리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 근본적인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일어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과 설교를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고, 평안이 되고, 믿음이 될 때,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함께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찬양입니다. 예배입니다. 이 기도와 찬양과 예배의 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찬양 가운데 우리를 감동케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구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깊이 경험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사모하고 귀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엇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성도 간의 신앙의 교제를 통해, 또는 목회자의 사랑의 권면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사람, 엘리를 통하여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도움으로 사무엘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십니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매우 귀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대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교제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상황과 형편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다가, 육아를 하다가, 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상황이 펼쳐질 때, 그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적인 눈을 떠서, 모든 순간, 모든 일들 가운데 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이끄시고, 도우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놀랍게도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인생에 우연이 없고, 내 인생에 그냥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모든 일이 합력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필요에 따라 기적을 베푸십니다. 병이 고쳐지는 기적이 일어나고요,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는 경험도 일어나고요,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기준으로 바르게 분별함을 전제한다면, 이러한 기적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통해, 또 공동체와 목회자를 통해, 일상에서 상황과 형편을 통해, 그리고 기적과 이적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실상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며 부르실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구원하였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의 주님이고, 내가 너의 왕이다.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너는 나를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라. 그리고 이 모든 메시지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부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그 부르심이 있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그 부르심의 핵심이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부르심을 듣고, 그 부르심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고, 마음에 기쁨과 감격과 평안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동시에 그 부르심이 우리의 마음을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붙잡는다면, 우리는 그 부르심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내 인생 이제껏 하나님 없이 내 힘, 내 능력, 내 뜻대로 살아왔던 삶을 내려놓고, 이제는 하나님께 내 삶을 내어 드리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셨습니까? 아직 부르심을 듣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싶다고 간구하며 나아갑시다. 부르심을 들었지만, 이제 그 부르심이 내 안에서 희미해졌다면, 그 부르심을 더욱 분명하고 선명하게 깊게 듣고 싶다고 간구하며 나아갑시다. 놀랍게도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가 더욱 가까이 주님께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날마다 듣는 삶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양과 같은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부르심이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오늘 사무엘이 말한 것과 같은 고백을 우리도 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 저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제가 주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일이어야 합니다. 이제껏 주님 없이 살아왔던 삶에서, 이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는 일입니다. 당장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의 교제가 시작된 일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는 일, 매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 선택할 때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생각해 보는 일, 가정, 일터, 사업장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는 일, 나의 연약함과 죄악됨을 회개하는 일, 그리고 예배를 귀히 여기고 지켜 나가는 일, 모든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일, 그렇게 하나님과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우리의 삶으로 초대하고, 그렇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이제 놀라운 일이 펼쳐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놀라운 역전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상처가 누군가를 살리는 치유제가 됩니다.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전을 이루는 아름다운 조각이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통로가 되고, 우리의 무너짐이 하나님의 역사의 기반이 됩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매일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천국의 삶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 가운데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내어 쫓을 뿐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세상을 살리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창조하셨는지를 깨닫고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계획을 품으시고 우리의 이름을 지금 부르시는 것입니다.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말씀 가운데, 기도 가운데, 찬양 가운데, 예배 가운데, 어떠한 자리, 어떠한 상황에서든, 어떠한 대화 가운데에서든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이 느껴진다면, 용기를 내어 그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그리고 이미 부르심에 응답했거든, 더욱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 귀한 모든 성도님이 이 부르심에 충분히 응답하고, 온전히 응답하여,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과 같은 하나님의 선물을 온 인생 가운데 온전히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단상] 예수님 안에 거하라!(요 15: 4-9) 정경조 목사(밴쿠버 예수비전교회)](https://i0.wp.com/toronto.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churchmain.jpg?resize=324%2C160&ss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