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대하기
임함남 목사 — 함께 기적을 만들어 가는 토론토 베다니 침례교회 담임목사
교회를 개척하고 전염병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기화 되어 버린 코로나로 인해 실제 교회에서 예배를 못 드리고 온라인 예배를 실시한지 어느 덧 1년이 넘어가 버렸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현재 목회자와 성도들은 전쟁을 겪지않은 세대들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처럼 엄청난 재앙 또한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코로나를 처음에는 쉽고 가볍게 생각 했다가 점점 쉽지 않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또 고통 받는 세계적 재앙이 될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변이 바이러스를 통해 더 많은 삶의 위협이 되어지는 것은 정말 걱정해야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 백신은 1년안에 변종으로 인해 무기력화 된다고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만만치 않아 더욱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과연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께 특별함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야 만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분이십니다. 특별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 역시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 특별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인도와 기적이 있었듯이 지금 위험한 광야와 같은 세상 속에서, 죽어 가는 전염병 속에서 높이 들린 놋뱀의 특별한 은혜의 기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빛나듯이,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는 빛이 나야 하고 그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이 나야 하고 빛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적이 교회와 믿는 자 안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공급 되는 산소와 내리는 비, 햇빛은 이방 민족 어느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에 의해 인위적으로 베풀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기적은 특별하기 만 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의 법칙을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으로 뛰어넘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선민의 교만과 자만하는 힘이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들이 세상에서 스스로 특별함을 드러내고 교만하고 자만 하는 것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절에 무엇인가가 영웅의 역할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앞을 다투며 나타나고 지배 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들도 가담하여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분별력을 잃고 거짓을 진실로 알고 전하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텍스트로 어려웠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배우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면 상상 이상으로 힘들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이었다고 해도 분명히 이방민족을 따르고, 우상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더욱 깊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몰아 가셨고 이방 민족의 위협에 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길을 따를 수 밖에 없도록 벽을 치시며 길을 만드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8-9)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준 길로 걸어 가는 것입니다.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일으키는 방법 역시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생각하느라 고민 할 필요도 없었고, 길을 찾으려고 고생 할 필요도 없었고 단순하게 그냥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로 나아가라 하면 바다와 강으로 나가가면 되는 것이었고, 산을 넘으라 하시면 그냥 산에 발을 딛고 올라서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움직이라 하시면 가고, 머물라고 하시면 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 최첨단의 불기둥이 있었고, 구름 기둥이 있었습니다. 배고프면 어미 새 앞에 입 벌린 아기 새처럼 크게 입을 벌리면 되었고, 목이 마르면 메마른 돌을 두드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들을 광야로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준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두려워 했습니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소문으로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하고 거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하나님의 기적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들어가게 하실 때, 그렇게 멀고 힘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 홍해와 적들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죽음의 길로 바라 보았습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이나 갈라진 홍해 바다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염려와 원망이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고생이 그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배고픔을 해결 해 주었던 광야에 내리는 만나의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욕심으로 고기를 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엄청난 기적들은 그들의 상황 속에서 잊혀졌고 기적에 대한 기대감 마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자 그들은 우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긴다면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
우리가 하나님과 필요에 의해 세상을 섬기게 된다면 이 경고는 바로 우리에게 적용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육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 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는 동등 되거나 더 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 볼 수도 없고 당장 안정된 집과 누릴 삶의 환경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 충분한 변명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게 점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웁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압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아닌 텍스트로 배웠고 텍스트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모릅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변명이 되고 점점 익숙해져 갑니다. 힘들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이제 우리에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려움 속에서 당연히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발견 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몰아 가신 것이 그들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 듯이, 코로나로 교회를 죽이고 성도를 어렵게 하기 위함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버둥 칠 필요도 없고, 신앙 생활에 게을러지는 기회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전 세계가 동일하게 겪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버림의 기회, 새로워 지는 기회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이 때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가? 는 너무 쉽고 분명하게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게 더 기도하고, 더 찬양하고 그리고 더 예배하고 전도 하는 것입니다. 아주 명확한 답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불편해 하고 하며 이전의 모습을 그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식으로 예배하든지 예배 행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한 다면 그곳이 광야 천막이든, 포로 생활하던 다니엘 같이 비록 혼자 드리는 기도이던, 감옥에 갇힌 바울의 몸이든 상관없이 예배하고 전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억지로 벗어나려고 갈등하고 방법을 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적응 하는 상황도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방향과 자세가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은 기적을 바라는 상황입니다.
광야에 베푸실 기적을 미리 준비 하시고 그 장소로 인도 하셨듯이, 필요한 곳에 기적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기적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는 자에게, 그리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기적의 종류와 가능 여부를 판단 할 필요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 만큼, 능력 만큼 하나님의 크기로 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한 기적을 간구 했듯이 우리도 기적을 기도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많은 기적을 체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종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의 경험이 아니라 말씀을 통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기적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떠나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코로나로 교회가 어려워 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 빈 건물을 지키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오십니다. 다행 스러운 것은 하나님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에 구애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만 제대로 준비되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그리스도인은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행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온라인을 준비하셨습니다. 개인적 바람은 코로나 상황에 임시적인 모임 공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동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 할 때 멀리 이방 땅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셨 듯이 우리의 예배 장소가 기적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낭비 하는 사람이 있고, 고난을 기회로 삼아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으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광야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일 뿐 만 아니라 성장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많은 불가능이 우리 위에 있고 우리는 쉽게 다시 이집트 종살이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면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더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광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7,18)
위 말씀에 기록된 대로 그들이 믿음으로 먼저 가진 것은 안전에 대한 기대감이 이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믿음 앞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기대감이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그것에 기대하며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희생의 순고함 보다 기적을 베푸 시도록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 희생 앞서 기적을 보이셨던 구약의 수 많은 이야기들, 기대하며 예수님 앞에 나오는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기적들, 모두가 다 믿음으로 기대를 가졌던 자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들이었습니다. 그 기적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운 헌신과 희생이 가능 했던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신명기 7:13)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꿈꾸게 하시고 기대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 때 부르는 찬양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기대하도록 만들어 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마다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피해 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기적을 소망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크리스챤의 문화와 형식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기복신앙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코로나 기간이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어려운 것은 많은 숙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책임, 개인의 삶, 예배의 삶, 그리고 복음을 나르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 하지 않고는 우리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기대하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