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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다윗이 ‘주’(Lord)로 부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다윗이 ‘주’(Lord)로 부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율법에 관한 서기관의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하시고 난 후에 더 이상 예수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막 12:3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자기 이해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수사학적 방법은 단순히 정보를 묻고 답변하는 방법이 아니라, 청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내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질문 방법을 ‘탐구적 질문’(Heuristic Question) 또는 ‘소크라테스식 질문’(Socratic Question)이라고 부릅니다(R. Alan Culpepper, Mark, 2007, Smyth and Helwys, p. 300; Joel Marcus, 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pp. 611).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질문을 받는 청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가장 대표적인 예를 마가복음에서 찾아보면, 마가복음 9장 12-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엘리야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더불어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세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변형되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실 때 세 명의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고 스스로 답변을 하십니다.

(막 9:12)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있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인자에 관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조롱 당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에 대하여 기록된 것처럼 그에게 원하는 것을 행하였다.” (Translated by YG Kim)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 바와 같이(막 9:11-1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서기관들의 가르침대로 엘리야가 이미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켰다면, 메시아인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비유로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스스로 답변하시면서, 자신의 고난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언된 필연적인 계획임을 강조해서 답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35-37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수사학적 삼단 논법을 통해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하십니다.

(막 12:35) 그리고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답하기 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 (36) 다윗 스스로 성령 안에서 말했다.

주께서 나의 주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나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너는 나의 오른쪽에 앉으라.

(37) 다윗 자신이 그를 주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그가 자신(다윗)의 아들이란 말인가?” 그리고 큰 무리는 그의 말을 즐겁게 듣고 있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와 다윗의 관계를 설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에게 “다윗의 자손”(막 10:48)이라고 불리셨고, 다윗 왕국의 도래에 대한 기쁨 속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막 11:1-11).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무력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정치적 메시아의 모습과 달리, 오히려 군중들이 믿고 신뢰하고 있는 성전의 제도를 부인하는 모습(막 11:15-17)과 더불어 성전 안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무능을 책망하는 모습이었습니다(막 12:1-12).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해서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질문하신 내용과 답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질문의 대전제와 소전제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탈버트(Tolbert) 교수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전제와 소전제,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Mary Ann Tolbert, Sowing the Gospel, 1989, Fortress Press, p. 255)

Suppressed major premise: Fathers do not address their sons with titles of

respect like ‘sir’ or ‘master.’

Minor premise: David declared, “The Lord said to my master, ‘Sit at my right hand, till I put your enemies under your feet’” (Mark 12:36).

Conclusion: The one David calls master cannot be his son.”

탈버트 교수가 언급하고 있듯이 예수님의 질문에는 대전제가 숨겨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대전제의 생략으로 수사학적 효율성과 청중의 심리적 반응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청중들은 생략된 대전제를 스스로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론을 통해 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 왕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를 구약 성경에서 찾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 그의 나라와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삼하 7:24-27).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사 11:1)라고 예언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니, 그가 왕이 되어 다스리며 지혜롭게 행하고,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다”(렘 23:5)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에스겔과 다른 선지자도 다윗의 혈통에서 나올 메시아적 목자와 왕을 반복해서 언급했습니다(겔 34:23-24; 37:24-25; 암 9:11).

실제로 주전 1세기 기록된 솔로몬의 시편 17:33절을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솔로몬의 시편 17:33) 그리고 그(21절의 다윗의 아들) 자신은 의로운 왕이며, 하나님에 의해 그들 위에 가르침을 받은 자이다. 그리고 그의 날들 가운데에서 그들 가운데에는 불의가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거룩하며, 그리고 그들의 왕은 주의 기름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Translated by YG Kim)

이러한 배경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pos: in what way? how?)라는 부사를 사용해서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 (막 12:35b)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신 이유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가 메시아의 신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36절에서 시편 110편 1절(BHS Ps 110:1)을 인용해서 서기관들의 제한된 정치적 메시아관에 도전하고, 동시에 자신의 신적 권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성령 안에서”(in the Holy Spirit) 본문을 말한 것이라고 언급하십니다. 따라서 이 노래는 단순한 다윗의 시가 아니라, 다윗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미리 예언한 내용입니다.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잠시 생각해 보면, 다윗은 메시아적 권위와 왕권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바른 성경)

다윗은 이 노래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yhwh: Yahweh)께서 다윗 왕조의 통치자 내 ‘주’(adon: Lord)께 말씀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의 고유 이름이고, ‘내 주’로 번역할 수 있는 ‘아도니’(adoni)는 일반적으로 피조물의 최고 상급자를 지칭하는 단수 명사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언급하는 ‘아도니’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땅에서 신적 통치를 하는 ‘메시아’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여호와께서 메시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 승리한 왕은 패배한 적의 목을 발로 밟는 관습(수 10:24)이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 은유적 표현이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입니다. 따라서 원수를 굴복시키는 주체는 ‘내 주’로서 하나님의 대리인 메시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언급하시는 시점인 “때까지”(ad: until)라는 전치사는 이 사건이 메시아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결정적인 승리의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이루시는 동안 메시아로서의 왕은 하나님 곁에 앉아 권세에 참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해서 메시아가 단순히 다윗의 혈육적 후손이 아니라, 다윗조차 ‘주’(kyrios: Lord)라고 불렀던 다윗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논증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주께서 나의 주에게 말씀하셨다”(막 12:36b)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로서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말씀하신 내용은 “내가 너의 원수들을 나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너는 나의 오른쪽에 앉으라”(막 12:35c-d)입니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나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모든 대적 곧 인간의 대적자뿐만 아니라 죄와 죽음 그리고 사탄의 세력을 포함한 모든 악의 세력을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향해 “너는 나의 오른쪽에 앉으라”라고 선포하십니다. 메시아가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권능에 직접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막 12:35b) 질문에 대한 결론으로 37절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다윗 자신이 그(메시아)를 주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그가 자신(다윗)의 아들이란 말인가?”(막 12:37a)입니다. 예수님의 반어법적 질문은 다윗이 스스로 그(메시아)를 ‘주’(Lord)라고 지칭했다면, ‘어떻게 메시아가 동시에 다윗의 ‘아들’(huios: son)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혈통적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메시아는 동시에 다윗이 ‘나의 주’라고 고백해야 하는 우월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단순히 지상에서 다윗의 왕조를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릴 신적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로서 메시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지혜 앞에 할 말을 잃고 침묵했지만(막 12:34), 메시아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큰 무리’는 즐겁게 들었습니다(막 12:37b).

마가복음 12:35-3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이라는 인간적 정체성을 뛰어넘어, 다윗조차 ‘주’(Lord)라고 고백해야 하는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통치하실 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수사학적 관점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방법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마가복음 9장 12-13절을 예로 설명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질문하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관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1. 탈버트 교수가 언급했듯이 예수님께서 대전제를 생략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 당시의 메시아관을 구약 성경을 근거로 설명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메시아관을 다시 정립하기 위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에서 ‘여호와’와 ‘주’(Lord)의 관계를 설명해 보십시오.
  1. 시편 110편 1절에서 여호와께서 메시아에게 말씀하신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의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해서 다윗과 메시아의 관계를 설명하신 이유를 말해 보십시오.
  1. 본문 37절 상반절에서 “다윗 자신이 그를 주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그가 자신(다윗)의 아들이란 말인가?”의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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